정의
1881년 흥선대원군 추종 세력이 국왕인 고종을 폐위하고 대원군의 서장자인 이재선(李載先)을 왕으로 추대하려다 발각된 사건.
역사적 배경
변천 및 의의
쿠데타 계획의 실행이 지지부진하던 중에 모의에 참가하고 있던 광주 장교 이풍래가 1881년 8월 28일 사건 전말을 고발함으로써 29일부터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났다. 그 결과 30여명의 연루자가 검거되어 13명이 처형되고 3명이 유배되었다. 주모자였던 이재선은 ‘대역부도죄’로 사사되었다. 사건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대원군에게는 고종의 부친이라 처벌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불문에 붙여졌다.
쿠데타 계획의 실패로 대원군 세력과 유생 세력은 정치력이 약화되었고, 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하며 개혁을 추진하던 지배층 내부의 유연성도 감소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사-최근세편』(이선근, 을유문화사, 1961)
- 「한말 사회 변동과 이재선 사건-대원군파 쿠데타 이념과 조직」(조성윤, 『현상과 인식』 8-1, 한국인문사회과학회, 198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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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물건값이 뛰어오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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