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87년 7월 15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경정(京町)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심명철(沈明哲)이다. 1900년 열병을 앓고 시력을 잃어 시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기예과(技藝科)를 졸업하고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개성에는 1919년 2월 28일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으나, 배포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채 북부예배당 지하에 은닉되었다. 다음날인 3월 1일 아침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의 교사로 있던 권애라(權愛羅)가 북부예배당에 숨겨진 독립선언서를 꺼내 전도사 어윤희(魚允姬)와 배포 방법을 논의하였다. 오후 2시경 어윤희는 신관빈(申寬彬)과 함께 만월정(滿月町) · 북본정(北本町) · 동본정(東本町) 일대의 행인 수십 명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독립선언서 배포 이후 개성의 첫 만세시위는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하였다. 준비에 참여한 학생은 학생회장인 이경신(李瓊茞)을 비롯하여 유정희(柳貞熙), 조화벽(趙和璧), 김낸시, 이봉근(李鳳根), 조숙경(趙淑卿), 김신렬(金信烈), 최옥순(崔玉順) 등 모두 17명이었다. 그리고 3월 2일 어윤희는 호수돈여학교 기도실에서 권애라, 장점심, 이향화, 박마리아, 김낸시, 권명범, 이영지, 류정희, 조화벽, 김정숙 등과 만세시위를 모의하였다. 다음날인 3월 3일 오후 2시, 호수돈여학교 학생 35명이 찬송가와 독립가를 부르며 거리에서 만세시위에 나섰다. 시위대의 수는 일반 군중들이 가세하면서 1,000여 명까지 늘었다. 심영식은 이날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오후 2시경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 약 100명이 교정에서 시위를 시작해 북본정을 거쳐 남대문까지 행진하였다. 일반 군중이 합류하면서 500~75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헌병 분대와 수비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학생 4명 등 12명이 체포되었다. 심영식은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20년에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가출옥하였다. 투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아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하였다.
출옥 후 인천에 거주하였으며,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1926년 구세군 인천 영문에 입대하여 1983년 사망하기까지 재무를 담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