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12월에 미국인 여선교사 캐롤(Carroll, 한국명 갈월(葛月))이 기독교정신을 통한 근대 여성교육을 목적으로 개성에 설립하였다. 그녀가 속하여 있던 미국 남감리교 홀스턴(Holston)연회의 후원으로 개성 교외의 ‘쌍소나무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을 사들여 주일학교로 개교하면서 제1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소속된 학생수는 12명이었다.
1904년 정식 학교로 설립하면서 교명을 개성여학당이라 하였다. 1906년에는 「보통학교령」에 따라 교과목이 쇄신되었고 수업연한이 4년으로 확정되었다. 교과목은 선교부의 설립목적에 따라 수신(修身) 과목을 성경으로 대치하고, 영어·서양사·동양사·수학·생리학 등을 교수하였다. 설립 당시부터 학생들에게서 일체의 공납금을 받지 않고 학습용구·식비·용돈을 학당(學堂)에서 지원했으며,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1908년에는 미국의 홀스턴연회의 재정적 지원을 기념하여, 홀스턴을 한자음으로 가차(假借)한 호수돈여학교로 교명을 정하였으며, 1909년 5월 3년제 고등과의 인가를 받아 이후 5월 15일을 개교기념일로 정하였다. 1910년호수돈여숙으로 개칭되면서 고등과의 수업연한을 4년으로 연장하였고, 1913년에는 고등과 10명이 졸업하였다.
1916년개성에서는 처음으로 유치원을 병설하였으며, 호수돈여자보통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로 분리, 운영하였다. 1918년에는 실업부인 기예과(技藝科)를 신설하였고, 1922년에는 재학생수가 600명에 이르렀다.
1938년 교명을 호수돈고등여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41년에는 미국측의 한국주재 선교사 귀국명령에 따라 재단법인 명덕학원(明德學院)이 구성되었고, 교명도 명덕고등여학교로 변경하였다. 그 뒤 6·25전쟁 때 남하하여 대전에 기착, 1953년 115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954년에 교명을 ‘호수돈’으로 환원하고 호수돈여자중학교와 호수돈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편하고 중학교는 120명, 고등학교는 30명의 학생을 모집하였다.
1957년 5월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고, 중·고등학교 각 학년 2학급씩 총 700명이었다. 1972년 신교사를 증축하고 계속 학급을 증설하여 1975년부터 중학교 27학급, 고등학교 30학급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1976년부터는 중·고등학교를 분리, 운영하고 있다. 1999년 5월 호수돈여고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2010년 현재 30학급이 개설되어 1,227명의 재학생이 있으며, 교원 67명과 행정직원 20명 등 총 87명의 교직원이 재직 중이다.
‘남을 위해 살자’를 교훈으로 삼아,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봉사하는 여성, 정직하고 순결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품위있는 여성, 배움에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슬기로운 여성, 심신이 건강한 여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자율학교와 교과교실제 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수준별 이동수업 및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학생활동으로는 1919년 3·1운동 때에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민족주의의 맥을 이어왔으며 한국 근대화의 여성 계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과외활동으로는 매년 교내음악경연대회와 예술제를 개최하는 등 예술 분야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정구·농구·탁구에서 여러 차례 전국을 제패한 바 있다.
특히 학생들의 선교활동이 활발하여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복지기관과 군부대를 연례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의한 학급헌신예배, 학급자체예배, 불우교우돕기운동 등이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