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은 1187년 중국 남송의 학자 주희의 감수 하에 제자 유자징이 편찬한 동몽용 수신 교재이다. 내용은 크게 내편과 외편으로 구분된다. 『소학』은 고려 말에 유입되어, 조선시대에는 『소학』 선강의 원칙에 따라 정책적으로 크게 장려되었다. 『소학』은 유교의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배움의 내용을 강조하는 수신서로서, 성리학에 뜻을 둔 유생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읽혀져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관을 널리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내편(內篇) 4권, 외편(外篇) 2권 등 총 6권이다.
중국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는 고대 동몽(童蒙)[8세∼15세]교육의 전통이 사라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소학』의 편찬을 지시하였고, 주희의 감수를 거친 후 1187년(남송 순희 14)에 완성하였다.
『소학(小學)』은 주희의 소학대학계제설(小學大學階梯說)에 따라 편찬된 책으로 동몽에게 기본적인 윤리교육을 시행하여 한편으로는 풍속을 순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교육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윤리교육의 핵심은 ‘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로 표현된 바람직한 행동의 습관화 그리고 ‘애친경장융사친우지도(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로 요약되는 바람직한 태도의 형성에 있다.
『소학』의 편제는 내편 4권과 외편 2권으로 구성되는데, 내편은 입교(立敎) · 명륜(明倫) · 경신(敬身) · 계고(稽古)으로 구성되고, 외편은 가언(嘉言) · 선행(善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입교 · 명륜 · 경신이 기본 축을 이룬다. 입교는 교육의 중요성과 의미에 관한 내용으로 일종의 서론이라 할 수 있고, 명륜은 오륜(五倫)을 밝힌 부분으로 본론에 해당하며, 경신은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수렴할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결론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축을 바탕으로 계고에서는 성현의 삶과 공부의 모범을 제시하고, 가언과 선행에서는 중국 학자의 말과 행실을 수록하였다.
『소학』은 고려 말 성리학의 전래와 함께 도입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필수적인 교재로 중시하였다. 여기에는 태종 대 권근(權近)이 『소학』을 먼저 읽은 다음 다른 책을 공부해야 한다는 소학선강(小學先講)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후 김굉필(金宏弼)은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자칭할 정도로 이 책을 중시하였고, 그의 영향으로 『소학』은 비단 동몽교재로서만이 아니라 사림(士林)의 의식교육과 민중교화를 위한 교재로서도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연산군 대에 강응정(姜應貞) 등이 소학계(小學契)를 결성하고, 중종 대에 김안국(金安國)이 『소학언해』를 발간하여 보급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 정묘 ·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문란해진 풍속을 가다듬기 위해 『소학』 교육을 전면적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세자의 진강(進講)을 비롯하여, 한성 지역의 동몽에게 시행하는 동몽예강(童蒙禮講), 사부학당과 지방의 과시에서 시행하는 소학강(小學講), 생원진사시에서 시행하는 조흘강(照訖講) 및 학례강(學禮講) 등에서 모두 『소학』을 고강(考講)하게 함으로써, 교육과 선발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소학』 교육을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학』의 주석서와 언해서를 편찬 · 보급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소학 보급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1744년(영조 20)의 『소학제가집주선정전훈의(小學諸家集註宣政殿訓義)』 및 『소학언해(小學諺解)』 발간, 1758년(영조 34)의 『종덕신편(種德新編)』 및 『종덕신편언해(種德新編諺解)』의 간행, 1766년(영조 42) 『어제소학지남(御製小學指南)』의 찬술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이것은 조선 후기에 『소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고종 대에는 박재형(朴在馨)이 『소학』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우리나라 유현(儒賢)의 도학 · 가언 · 선행 및 충신 · 효자 · 열부의 고사를 첨가하여 『해동소학(海東小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소학』은 유교의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배움의 내용을 강조하는 수신서로서, 성리학에 뜻을 둔 유생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널리 읽혀져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충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유교 윤리관을 널리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