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학전문학교는 1916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의학전문학교이다. 1916년 4월 1일 칙령 제80호로 「조선총독부전문학교관제」가 발포되었고, 같은 해 조선총독부령 제27호로 「경성의학전문학교규칙」이 공포되어 설립되었다. 질병 진료에 관한 지식 기능을 구비한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8·15광복 후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안수경과 김해지, 김영흥 등이 1918년 졸업증서를 받아, 국내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의사들이 되었다.
1916년 4월 1일 칙령 제80호로 「조선총독부전문학교관제」가 발포되어 경성전수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와 함께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설치가 확정되었다. 같은 해 조선총독부령 제27호로 「경성의학전문학교규칙」이 공포되어, 경성부에 관립 의학전문학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교 남동쪽에 위치하였으며, 전신은 조선총독부 의학강습소이다.
1927년과 1929년의 입학생 상황을 보면, 1927년의 모집 정원은 80명이었는데, 지원자는 일본인 412명, 조선인 166명이었다. 1929년에는 90명을 모집하였는데 지원자는 일본인이 689명, 조선인이 220명[남자 219명, 여자1명]이었다. 연도별 모집 정원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입학 경쟁은 1927년은 7:1, 1929년은 12:1로 매우 치열하였다. 조선인 지원자는 일본인의 1/3 정도로 일본인의 지원율이 높은 편이었다. 한편, 1927년도 졸업생은 본과 53명[일본인 45명, 조선인 8명], 특과생[조선인] 26명으로 총 79명이었는데, 진로가 파악된 73명 가운데 조선인 본과 및 특과 졸업생 34명 모두가 관공서에 취직하였다. 경성의학전문학교는 8·15광복 후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남녀공학 조항이 있지는 않았지만, 미국인 여의사 로제타 홀[Rosetta S. Hall]의 부탁으로 조선인 여성 졸업생이 나오게 되었다. 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에서 청강생으로 공부하고 있던 조선 여성 안수경과 김해지, 김영흥 등이 1918년 3월 제2회 졸업생 47명과 함께 졸업증서를 받았다. 이들은 조선 여성으로 국내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의사들이 되었다.
<표> 경성의학전문학교 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