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법학전문학교는 1922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법관 양성 전문학교이다. 1911년에 설치된 경성전수학교가 「전문학교규칙」에 따라 전문학교급으로 운영되다가, 1922년 교명을 경성법학전문학교로 바꾸면서 공식적인 전문학교가 되었다. 경성전수학교와 달리 일본인 학생의 입학도 허용하였다. 1944년 경성고등상업학교와 통합하여 경성경제전문학교가 되었고, 8·15광복 직후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서울법정학교로 분리되었다.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계열로 흡수되어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이 되었다.
1922년에 설립된 경성법학전문학교의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입학 자격을 “16세 이상으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자 또는 이에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자”로 한 것은 이전의 경성전수학교와 같았다. 그러나 경성전수학교가 교육 대상을 ‘조선인 남자’로 한정하였음에 비해,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국어를 상용하는 자’로 하여 일본인 학생의 입학도 허용하였다. 1927년과 1929년의 입학자 현황을 보면, 모집 인원은 70명으로 변동이 없으며, 지원자는 1927년에 일본인 55명, 조선인 153명이었고, 1929년에 일본인 52명, 조선인 178명이었다. 각 연도의 입학 경쟁률은 2.9:1과 3.2:1 정도였으며, 조선인 지원자가 일본인의 약 3배 정도 많았다.
1923년 3월에 제1회 졸업생 34명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경성전수학교에 입학한 자였으며 이런 상황은 1925년도 졸업생까지 이어졌다. 1926년에는 총 45명[본과생 30명 중 조선인 19명, 특과생 15명]이 졸업하였다. 그해 졸업생의 진로를 보면, 관공서에 취직한 경우가 34명[일본인 9명, 조선인 11명, 특과생 14명], 은행과 회사, 상점 등에 취직한 경우가 7명[조선인 5명]이었고, 제국대학으로는 조선인 2명이 진학하였다. 이처럼 졸업생 대부분이 관공서로 진출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각 지방법원의 서기과 서기나 서기과 통역으로 채용될 수 있는 기회, 즉 특전이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1945년 9월 40명, 1946년 9월 46명까지를 합해 일본인 포함 총 1,04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경성부 광화문동에 있던 경성법학전문학교는 1938년에 현재의 청량중학교 자리로 신축 이전하였다. 1944년 4월에는 교육예산의 동결에 따라 경성고등상업학교와 통합되어 경성경제전문학교가 되었고, 8·15광복 직후에는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서울법정학교로 분리되었다.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계열로 흡수되어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이 되었으며, 서울법정학교는 한국전쟁 직전에 북한으로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법률대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