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광산전문학교는 1939년 경성부 동숭동에 설립되었던 관립 전문학교이다. 전쟁에 필요한 광물자원을 원활히 보급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경성고등공업학교 광산과를 분리, 독립하여 경성광산전문학교를 설립하였다. 채광학과와 야금학과, 광산기계학과 등 3개 학과를 설치하였으며,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졸업생들은 전원 국영 광산의 간부로 우선 채용되었기 때문에, 취직이 어려웠던 전시체제 아래에서 최고의 입시 경쟁률을 보였다.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이 공포됨에 따라 경성광산전문학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흡수되었다.
경성광산전문학교는 1939년 일본인 광업가의 기부금 300만원과 조선총독부 예산 50만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채광학과와 야금학과, 광산기계학과 등 3개 학과를 설치하였으며,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교원은 교장 1명, 교수 16명, 생도주사 1명, 조교수 8명이었고, 학년별 정원은 채광학과가 50명, 야금학과가 15명, 광산기계학과 35명이었다.
경성공업전문학교 광산과 학생들이 경성광산전문학교로 이관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2명이 1940년 3월에 제1회 졸업생으로 배출되었다. 이관된 나머지 학생들[채광부 2명, 야금부 4명]은 1941년 3월에 경성광산전문학교의 졸업생이 되었다. 8·15광복 이후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이 공포됨에 따라 경성광산전문학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