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치과의사 양성은 1904년 세브란스병원에 설치된 치과에서 미국인 선교사가 강의를 맡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본격적인 양성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1922년 4월 경성치과의학교가 설립되어, 수업연한 2년의 야간제에 학생 60명으로 개교하였다. 이듬해에는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하고 전임교수를 초빙하여 주간으로 개편하였다.
교사(校舍) 및 실습실은 당시의 경성의학전문학교와 총독부의원의 건물을 같이 사용하였으며, 1925년에 제1회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5년 4월 「치과의사규칙」에 의거해서 총독부의 지정학교가 되어, 졸업생에게 무시험개업의 특전이 주어졌다.
그러나 조선총독 명의로 발부받은 치과면허증은 우리나라와 만주에서는 통용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1928년 9월에 관유지를 무상으로 대여받아 독립 교사를 마련하게 되어 소공동으로 이전하였다.
같은 해 10월에 재단법인으로 등록하였으며, 1929년 1월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개편, 인가되어 수업연한도 4년으로 연장되었다. 이해 가을에는 일본 문부성지정전문학교로 인가되었다.
재학생의 구성은 한국인 4할에 일본인 6할 정도였으며, 초기에는 남녀공학이었으나 전문학교가 되면서 남학생만으로 운영하였다. 의학교로 8회, 전문학교로 17회의 졸업생 총 1,000여 명을 배출하였으며, 광복 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