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켜놓고 초가 타내려 가는 일정 부분에 금을 새겨 놓아 그 시간 안에 시를 짓게 하는 일종의 경시대회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실시한 과거종목인 명경과(明經科)와 제술과(製述科) 중, 제술과에서 부과한 시·부(賦)에 대한 작문능력은 당시 지식인이라면 필수적으로 닦아 두어야 하는 기초교양이었다.
각촉부시는 고려시대 사학(私學)의 하나였던 최공도(崔公徒)에서 널리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공도에서는 과거에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매년 여름에는 귀법사(歸法寺) 승방(僧房)을 빌려 여름공부[夏科]를 실시하였다.
이때 최공도 출신 선배 가운데 과거에 급제하고 미처 임관되지 않은 자가 와서 구경삼사(九經三史)를 주로 한 특별지도를 베풀었으며, 이들 선배들이 내방하였을 때는 시짓기 경합인 각촉부시를 행하였다. 여기에서 우수한 작품을 낸 순서에 따라 방을 붙이고 조촐한 술자리도 마련하였다.
이때 나이 어린 소년들이 좌우에 열을 지어 앉았고 술과 안주를 바쳤는데, 모두 들어가고 물러남에 예의가 바르고 연장자와 연소자간의 서열이 분명하였다. 시를 짓고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면서 해가 질 때까지 연회를 계속하였는데, 보는 사람들도 모두 한결같이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이러한 시짓기에 대한 관심은 조선시대 교학풍토(敎學風土)에도 그대로 이어져 시작(詩作)에 계속 높은 비중을 두었다. 1467년(세조 13) 경회루에서 친시(親試)를 보았는데 각촉으로 짓게 하여 4인을 뽑았으며, 1536년(중종 31)에도 역시 경회루에서 친시를 열어 각촉시로 허경(許坰) 등 4인을 선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