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충청북도 충주 출생. 어현중(魚玄仲)의 무남독녀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16세에 결혼하여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죽어 청상과부가 되었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개성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1910년에 북부교회 교인이 되었다.
1912년 개성 미리흠여학교(美理欽女學校) 기예과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전도사로 외딴섬의 전도와 독립정신계몽을 자원하였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수백장이 북부교회 목사 강조원(姜助遠)에게 전달되었으나 그가 소심하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자, 어윤희가 보따리장사를 가장하고 대낮에 집집마다 독립선언서를 돌렸다.
이것을 본 호수돈여학교 사감 신관빈(申觀彬), 장님전도부인 심명철(沈明哲) 등이 합류하였다. 그 결과 개성의 만세시위운동은 여성들에 의하여 선도되었다. 만세시위 주모자로 잡혀 2년간 옥고를 치르는 가운데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고자 재감자들과 긴밀히 연락하여 일제히 옥중만세를 불렀다.
출감한 뒤에도 독립운동자들에게 비밀리에 여비를 마련하여주었으며, 육혈포탄환 등을 감추어 전달하기도 하였다. 노년에 개성에 유린보육원(有隣保育院)을 설립하여 고아사업을 하였으며, 6·25 때 부산으로 피난하여 1952년 서강교회 장로로 10년간 시무하였으며, 1953년 나이팅게일기장, 1959년 인권옹호공로표창을 받았다.
그뒤 서울 마포에 서강유린보육원을 설립, 운영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