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1919년 10월 9일 순천군 제현면 문창리에서 예수교의 장년부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예수교 전도사 윤찬복(尹燦福)·최복길(崔福吉)이 1919년 8월(음력)에 평양 경창리 예수교신학교 기숙사에서 대한국민회 총무 박승명(朴承明)으로부터 대한국민회의 향촌회 조직 권유를 받고, 이에 찬동하여 중견 기독교 여성 14명의 회원을 얻어, 10월 9일 조직하였다.
회장은 윤찬복이 선임되었으며 3명의 회계담당 임원을 선출하였다. 회원은 각기 4원(圓)의 회비를 납부하여 그 중 1원은 향촌회 비용으로 충당하였으며, 나머지는 군자금으로 상하이에 송부하였다.
1920년 3월 23일(음력) 경창리 예수교신학교 기숙사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임원 한영신(韓永信)의 소개를 받아 임시정부의 여성요원 차경신(車敬信)을 통하여 160원을 송부하였다.
1921년 2월 27일 일본경찰에 활동내용이 발각되어 모두 검거되었다. 검거 당시 회원의 평균연령은 45세이며, 최저 연령자는 25세, 최고는 66세였다. →대한국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