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울산만 가운데 있는 186평 규모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처용암에 관한 유래전설은 《삼국유사》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조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용암은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이다.
신라헌강왕이 이곳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관이 아뢰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은 즉시 영을 내려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현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나서,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 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경주)로 가서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때 처용은 바위 밑에서 나왔는데, 이를 처용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비롭고 영험이 있는 바위로 여겨져 온 처용암은 흑색 화강암 바위와 그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관목 몇 그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등이 처용암에 모여 기풍제(祈風祭)을 지낸 효험으로 왜적선 13척을 침몰시킨 바 있다고 하였다.
1985년울산문화원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가 공동주최하여 세죽마을 바닷가 처용암 입구에 〈처용가〉를 음각한 처용가비를 세웠으며, 울산광역시에서는 처용문화제를 열어 처용무를 비롯한 처용놀이 등의 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