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암 ()

목차
관련 정보
처용암
처용암
민간신앙
유적
국가유산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 있는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련된 바위.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처용암(處容岩)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지정기관
울산광역시
종목
울산광역시 시도기념물(1997년 10월 09일 지정)
소재지
울산 남구 황성동 668-1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 있는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련된 바위.
내용

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울산만 가운데 있는 186평 규모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처용암에 관한 유래전설은 《삼국유사》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조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용암은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이다.

신라헌강왕이 이곳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관이 아뢰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은 즉시 영을 내려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현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나서,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 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경주)로 가서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때 처용은 바위 밑에서 나왔는데, 이를 처용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비롭고 영험이 있는 바위로 여겨져 온 처용암은 흑색 화강암 바위와 그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관목 몇 그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등이 처용암에 모여 기풍제(祈風祭)을 지낸 효험으로 왜적선 13척을 침몰시킨 바 있다고 하였다.

1985년울산문화원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가 공동주최하여 세죽마을 바닷가 처용암 입구에 〈처용가〉를 음각한 처용가비를 세웠으며, 울산광역시에서는 처용문화제를 열어 처용무를 비롯한 처용놀이 등의 행사를 하고 있다.

참고문헌

『경상남도문화재지정심의조서』(경상남도, 1978)
관련 미디어 (5)
집필자
강용권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