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성모는 천왕(天王) · 천왕할매 · 마고(麻姑)할매 · 마야부인(摩耶夫人) 등의 속칭을 가지고 있는 지리산 수호여신이다. 원래 이 신상은 1970년대 초까지 천왕봉에 있었으나, 그 뒤 행방불명되었던 것을 천왕사 주지 혜범(慧凡)이 수년간 노력한 끝에 1978년 꿈의 계시(啓示)로 찾아다가 절에 봉안하고, 음력 3월 7일과 10월 3일에 신도들과 함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옥석(玉石)으로 만든 성모좌상의 크기는 높이 74cm, 얼굴높이 37cm, 얼굴너비 29cm, 앉은자리에서 목까지의 높이 38cm, 어깨너비 46cm, 몸너비 43cm이다. 형태는 귀와 손가락 끝은 없고 코는 옥석으로 만들어 붙였다. 천왕봉에 있을 때는 코를 시멘트로 만들어 붙였었다. 성모의 귀는, 고려 말에 왜구 아지발도가 떼어가다가 토혈즉사했다는 속설이 지금까지도 전한다.
조소(造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에 관한 내력이 무조전설(巫祖傳說)에도 나오지만 현존문헌에도 남아 전한다. 『동문선(東文選)』 권68 박전지(朴全之)의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의하면, “…… 옛적에 개국조사(開國祖師) 도선(道詵)이 지리산 주인 성모천왕에게 은밀히 부탁하기를 ……”이라는 대목이 있다.
또 조선 초기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1472)에 보면 천왕봉 상에 있는 성왕묘(聖王廟)에 들어가 성모상께 날씨가 개이기를 비는 고사를 지내고, 성모상 앞에서 유숙하며 성모상 목의 상처가 고려 말 왜적이 칼로 쳤기 때문임을 확인하고 있다. 또 성모를 마야부인이니, 고려태조의 비(妃)라고 함은 망설이며,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토속적인 지리산 여신 성모가 옳다는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김일손(金馹孫)의 『탁영집(濯纓集)』 권5 「두류기행록」(1489)에도 “천왕봉 돌담 안에 1칸 판자집이 있고, 그 안에 석부인 상이 있으니 이른바 천왕이다.”라고 적고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본다면, 이 성모상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적어도 조선 초기 이전에는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