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마산농청놀이는 예전부터 창원지방에 전래해온 민속놀이로서, 그 연원은 두레에 있을 것으로 본다.
고대의 원시공동체에서 전래된 두레가 중부 이남지방에 있었는데, 두레의 표지기가 있고 유흥으로는 농악이 있었으니, 이는 촌락 단위의 자치조직으로서 마을의 경제 · 군사 · 노동단체이며 또 경기 내지 유흥단체로서 공동체적 생산과 협동의 의의를 가진다. 이 두레기(농청기)싸움이 농청놀이의 발상이라 생각된다.
중원(中元)인 7월 백중날을 맞이하여 영암(靈岩)으로 여기는 상투바위에 농청기를 먼저 꽂고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집안이 평안하고 자손이 잘 되어가 풍년이 들고 관재구설(官災口舌:관가로부터 받는 재앙의 시비)을 막아내는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옛날 부터 전승되던 바인데, 1929년 어복골 상수도정수장 공사 후 중단되었던 것을 1981년에 복원한 것이다.
진행과정은 상투바위로 떠나기에 앞서 길이 8m, 너비 1.5m나 되는 농청기제(農廳旗祭)를 올리는데, 명태 · 밀떡 · 꼼배기를 제물로 차려, 좌상이 술을 올리고 절할 때 일동은 재배한다. 다음은 기싸움, 축원, 회향의 순서로 진행한다.
① 기싸움마당: 구강농청패와 봉정농청패가 각기 죽고통을 선두로 풍물패가 뒤따르고, 다음에 장정들이 호위하는 농청기가 서고, 들메에 좌상이 올라앉아 총지휘를 한다. 행진 중에 딴 농청패를 만나면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 상대방의 깃발을 쓰러뜨리면, 먼저 상투바위에 가서 대기를 상단에 꽂게 된다.
② 축원마당: 밀대방석을 상투바위 앞에 깔고, 아낙네들이 이고 온 음식을 차려놓고 일제히 엎드려 성신선고(聖神宣告)를 한다. “에헤이 해동조선 경상남도 창원군 봉정리……”
③ 흥취와 회향:술과 안주를 들고 나서, 양편이 함께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귀향한다. 오랜 전통을 가진 농청의 모습을 전승하고 있으며, 기싸움과 성신선고는 농민들의 순수한 생활상을 표현하는 세시적 의의를 가진다. 1983년 8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마산민속문화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