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삼국사기』 권32 제사(祭祀)조에 24개 소사(小祠) 중 ‘우화(于火)’라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에도 소사로 되어 있다.
본사는 신라시대부터 소사로서 춘추 중월(仲月)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제례를 도백(道伯: 지방장관)이 초헌관으로 지내왔으며, 현재는 양산군수가 초헌관으로 음력 2월 하정일(下丁日)에 모시고 있다.
이 신사는 우불산록에 사우(祠宇:사당)와 재사(齋舍:방)가 있으며, 사우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지붕의 양 옆면이 막 잘려진 지붕) 목조와가(木造瓦家)로, 제당에는 우불산신위와 제상을 놓고 있다.
《양산군지》에 의하면, 인조 22년(1644)에 사우와 재사를 창건한 후 수차 중수하였으며, 현 건물은 1918년 재건하고 1974년에 중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제례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에 지내왔으나, 지금은 2월 하정일에만 지낸다. 당일 정오에서 약 1시간 동안 양산군수를 초헌관으로 하고, 웅상면과 울주군 웅촌면 유림을 중심으로 약 100∼150명이 향사를 모시고 있다.
제관은 초헌관 · 아헌관 · 종헌관 · 집례, 대축 · 진설 · 알자(謁者) · 찬인(贊引) · 사촉(司燭) · 봉향 · 봉로 · 사준 · 봉작(奉爵) · 전작 · 학생이고, 제복은 백색도포에 유건을 쓰고 행전을 친다. 단 학생은 흰 두루마기를 입는다. 제관 선정은 우불단장(壇長) · 총무유사 · 재무유사 및 감사가 모여 상론하여 결정한다.
제기는 변(籩) · 두(豆) · 보(簠) · 궤(簋) · 조(俎) 등이며, 이 밖의 제구는 제상 · 향안 · 향로 · 축점(祝坫) · 촛대 · 작(爵) · 주준(酒樽) 등이다. 제물은 예전에 좌팔변, 우팔두, 2보, 2궤, 2조 및 폐비(幣篚)를 진설하였으나, 지금은 4변, 4두, 1보, 1궤, 1조로 반감되고, 전폐례(奠幣禮:제례에 헌관이 삼상 향하고 신주 앞에 폐백을 드리던 예)는 폐지되었다. 한편 제물에 있어서는 예와 차이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양(梁)은 조[粟]로, 녹포(鹿脯)는 우포로, 녹해(鹿醢)는 소의 간 · 처녑으로 대신하고 있다. 행례는 홀기(笏記:의식의 절차를 적은 글)에 의하여 진행된다.
이 신사는 소사로서의 역사성과 임란 때 사신(祠神)의 도움으로 왜적을 전멸시켰다는 신성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제향이 전승되고 있는 경상남도 유일의 소사임이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