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음력 1월 3일에 연희하는 놀이로 병자호란 때 순절한 충신 황시헌(黃是憲)의 제향과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추도무 · 군노(軍奴)놀이 · 매구굿이 마을사람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황시헌은 집생(執生)의 장자로서 병자호란 때 광주 쌍산령(雙山嶺)에서 1637년(인조 15)에 전사하고, 현종 때 공조정랑을 포증(褒贈)받고 군자정(軍資正)에 추증되었다. 그는 평민출신으로 창원부리(昌原府吏) 당시 난리를 맞아 부사 백선남(白善男)을 수행하여 호군(胡軍)을 요격하다가 순절하였다.
그 뒤 기일이 되면 자손들이 가례를 모셨고, 창원부사가 관속들과 성묘 제례하고 관기로 하여금 추모의 춤을 추게 하였으며, 마을사람들에게 음복음식을 나누어주어 놀게 하였다. 이때 군노 한 사람이 황시헌 순절시의 처참한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 오늘에 전하는 군노놀이라 한다.
군노놀이 제1과장은 제향으로, 황시헌의 위패를 세우고 부사와 관속들이 헌작하고 고축하는 제례이다. 제2과장은 추도무로서, 부녀자들이 예전에 관기들이 하던 모습대로 살풀이춤을 춘다. 제3과장은 군노놀이로, 황시헌이 순절하는 과정을 무언극으로 구성한 장면이다.
관군과 호군으로 분장하고 서로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부사가 쓰러지면서 관인을 황시헌에게 던져주니 그가 그것을 오른손으로 쥐려고 하자 적이 오른손을 벤다. 왼손으로 쥐려고 하자 왼손도 벤다. 그는 입으로 관인을 물고 부사를 안고 운명한다.
제4과장은 매구굿인데, 온 마을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노는 장면으로, 보통의 농악대와는 달리 남녀노소가 모두 평복 차림으로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가무하는 것이 특색이다. 이때 막대기를 가지고 군노놀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축원문을 외우기도 한다.
농민들의 티없는 가무이며 놀이로서, 일반적인 민속놀이가 예능을 본위로 함에 반하여 이 놀이는 충신을 기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특색을 지닌다. 따라서, 추도무와 군노놀이는 제향의 뜻에 부합되고, 굿놀이도 순수한 군중 덧뵈기춤에 그친다는 점이 특이하다. 충신을 기리는 교훈적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