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성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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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성모상
지리산 성모상
민간신앙
개념
지리산의 여성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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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지리산의 여성 산신.
내용

≪여지승람 輿地勝覽≫ 진주목 사묘조(祠廟條)에 의하면, 지리산 천왕봉(天王峰) 마루턱에 성묘사(聖廟祠)가 있고, 그 안에 성모상이 있다고 한다. 이 신을 성모라고 하는 것은 여신임을 의미하며, 이 신의 영력(靈力)이 컸다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예컨대, 성모상의 이마에 칼자국이 있는데 그것은 왜구들이 이 성모가 자기들을 돕지 않았다고 칼로 치고 간 것이라 하거나, 이 산신에 빌어 비를 그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성모의 신비성을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민간에서는 고려 태조의 어머니라고 하여 숭상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譚≫에는 원근에서 무당들이 숭배하였다고 하며, 또 16세기에 천연(天然)이라는 시승(詩僧)이 음사(淫祀)의 본거지인 성모사(聖母祠)를 부수어버렸다고 한다. 이는 이 산신이 무속적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키바(秋葉隆)는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를 인용하여 무조전설(巫祖傳說)을 주장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 미상의 ≪무녀고 巫女考≫라는 사본에 ‘신라 중엽에 함양에 법우화상(法祐和尙)이 딸을 여덟 두어 팔도에 보내어 무당을 삼았다고 하나 그 진실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조전설의 하나로 법우화상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무속고≫에서 세상에 전하기로 지리산 엄천사(嚴川寺)에 법우화상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자주 도행(道行)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산간을 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안개가 끼어 그 길을 찾아 올라가서 천왕봉 꼭대기에 올랐다. 거기서 키가 크고 힘센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자칭 성모천왕으로서 하늘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왔는데, 당신과 인연이 있어 물의 술수를 써서 중매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였다. 이에 집을 짓고 살아 여덟 딸을 낳았다. 자손들이 번성하여 무술(巫術)을 배웠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법우화상을 외치며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무업(巫業 : 직업적 무당)을 하였다. 세상에서 이를 큰무당이라고 하여 ‘지리산정에 올라 성모천왕을 맞아 신을 내린다.’는 등의 구절이 있고, 또 고려 ‘박전지(朴全之) 용엄사중수기(龍嚴寺重修記)’에 ‘성모천왕은 지리산신’이라 하였고, ‘지금 산 아래에는 백무촌(百巫村)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설은 고대 산신신앙과 불교 무속이 융화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조선무속의 현지연구』(秋葉隆, 최길성 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조선무속고」(이능화, 『계명』 19, 계명구락부,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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