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전중윤지제교·원나라 정동성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재능이 인정되어 전중윤(殿中尹)·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세자(世子: 뒤의 충선왕)에게 하는 경전 강의를 맡아 잘 인도하였다. 또한, 세자가 원나라에 있을 때에는 고생을 꺼리지 않았다.
1298년(충선왕 즉위년)에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해 사림원(詞林院)을 두었는데, 이때 최참(崔旵)·오한경(吳漢卿)·이진(李瑱) 등과 함께 사림원학사(詞林院學士)가 되어 인사 행정을 담당하였으며, 충선왕의 즉위교서를 지었다.
뒤이어 삼사좌사(三司左使)·사림학사 승지(詞林學士承旨)가 되었고, 다시 밀직부사(密直副使)·중경유수(中京留守: 開城府判尹)가 되었다. 그해 충렬왕(忠烈王)이 복위하자 무고(誣告)로 파직되었다가 1307년(충렬왕 33)에 판비서시사(判秘書寺事)·권수밀직부사(權授密直副使)가 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충선왕이 복위하자 연흥군(延興君)에 봉해졌으며, 1321년(충숙왕 8)에 수첨의찬성사(守僉議贊成事)가 되어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 무렵 심왕(瀋王)의 무리가 왕을 원나라에 무고하는 글에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1317년(충숙왕 4) 지공거가 되어 동지공거 백원항(白元恒)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홍의손(洪義孫)·정오(鄭䫨)·김광로(金光輅)·허백(許伯) 등을 선발하였다.
왕이 원나라에서 돌아오자 정승(政丞)이 되어 벼슬에서 물러나고 추성찬화공신(推誠贊化功臣)에 봉해졌다. 불교 신앙이 깊어서 호를 행산몽촌무구거사(杏山夢村無垢居士)라고 짓고, 항상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외우고 ‘무자(無字)’ 화두(話頭)를 탐구하였다. 박전지는 사람됨이 온화하고 자애로웠으며 강직했으나 결단성이 적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문선(東文選)』
단행본
- 김용선 편,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1)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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