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국자좨주(國子祭酒)·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278년(충렬왕 4) 사의대부(司議大夫)로 공적이 없는 권세가(權勢家)의 자제들이 관직에 많이 임명되므로 당시 낭사(郞舍)의 다른 관리들과 같이 고신(告身)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왕이 여러 차례 서명을 재촉하였으나 불응하였다. 그런데 왕은 이존비가 올리는 문서를 이와 관련 있다고 여겨 크게 화를 내었다. 이존비가 백문절을 비롯한 낭사를 도와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왕은 백문절과 낭사 관리를 파면시키고 옥에 가두었다가 오해를 풀고 이들을 놓아주었다. 뒤에 국학대사성(國學大司成)·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가 되었다.
1280년(충렬왕 6) 왕에게 시정(時政)의 일을 말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귀양간 시사(侍史) 심양(沈諹) 등을 석방하게 하였으며, 그해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지공거(知貢擧) 원부(元傅)와 함께 진사(進士)를 뽑아 이백기(李伯琪) 등 33인을 급제하게 하였다.
백문절은 문장의 표현이 풍부하고 글씨를 잘 썼다. 또한 그는 평소 나태하고 옹졸한 듯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임연이 일을 벌였을 때 비로소 지조와 절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동문선(東文選)』
단행본
- 김용선 편,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출판부,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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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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