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포(藍浦). 자는 약헌(若軒). 호는 이재(彝齋). 아버지는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백문절(白文節)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참봉 이세주(李世柱)의 딸이며, 안향(安珦)의 문인이다.
1284년(충렬왕 10) 문과에 급제, 충선왕 때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를 겸했고, 뒤에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졌다.
1298년 원(元)이 사신을 보내어 세자를 왕으로 삼고, 8월에 왕을 불러가자 충선왕을 따라 원의 연경(燕京)에서 10년 간 머물러 있었다. 그 동안 주로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연구했고, 귀국할 때 정주(程朱)의 성리서적과 주자의 『가례(家禮)』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 후진 양성에 힘써서,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이곡(李穀)·이인복(李仁復)·백문보(白文寶) 등 많은 문인을 배출했으며, 도학과 예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지만,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체계를 파악해 크게 일가를 이룬 이는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
안향과 백이정의 학통은 이제현에게 전승되었고, 이제현의 학통은 이색(李穡)에게, 이색의 학통은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에게 이어졌다.
선조 때 김제남(金悌男)·최기남(崔起南) 등이 송경(宋京)에 서원을 세워 안향·권보(權溥)와 함께 배향하기로 경기사림(京畿士林)과 논의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인해 이루지 못했지만, 남포의 신안원(新安院), 충주의 도통사(道統祠), 진주의 도통사(道通祠), 남해의 난곡사(蘭谷祠)에서 향사하고 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면 평리 양각산(羊角山)에 있으며, 신도비 등이 남아 있다.
유고로는 「연거시(燕居詩)」·「영당요(詠唐堯)」·「한벽루(寒碧樓)」·「여홍애집구(與洪厓集句)」 등의 시구가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