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탁영집』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진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가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정여창(鄭汝昌) · 강혼(姜渾)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
다시 벼슬길에 들어서서 승정원의 주서(注書), 홍문관의 박사 · 부수찬(副修撰), 전적(典籍) · 장령(掌令) ·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다시 홍문관의 수찬을 거쳐 병조좌랑 · 이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홍문관의 부교리(副校理) · 교리 및 헌납(獻納) · 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관료 생활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가독서(賜暇讀書: 재능이 있는 문신들에게 문흥을 위해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한 제도)를 하여 학문과 문장의 깊이를 다졌다. 그리고 주로 언관(言官)에 재직하면서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의 소릉(昭陵)을 복위하라는 과감한 주장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훈구파의 불의 · 부패 및 ‘권귀화(權貴化: 권세가 있는 귀족으로 됨)’를 공격하고 사림파의 중앙 정계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1498년(연산군 4) 유자광(柳子光) · 이극돈(李克墩)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 및 소릉 복위 상소 등 일련의 사실 때문에 능지처참을 당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복관되고, 중종 때 직제학(直提學),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
17세 때까지는 부친으로부터 『소학(小學)』 · 사서(四書) ·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을 배웠으며, 이후 김종직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다.
김종직의 문인 중에는 김굉필(金宏弼) · 정여창 등과 같이 ‘수기(修己: 자기 자신을 닦으면서 수양함)’를 지향하는 계열과, 사장(詞章)을 중시하면서 ‘치인(治人: 남을 다스리는 정치)’을 지향하는 계열이 있었는데, 후자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한편, 현실 대응 자세는 매우 과감하고 진취적이었다. 예컨데 소릉 복위 상소나 조의제문을 사초에 수록한 사실 등에서 정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세조의 즉위 사실 자체와 그로 인해 배출된 공신의 존재 명분을 간접적으로 부정한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이같은 일련의 일들이 사림파의 잠정적인 세력을 잃게 한 표면적인 원인이 되었다.
저서로는 『탁영집(濯纓集)』이 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 「속두류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자계서원(紫溪書院)과 도동서원(道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탁영집(濯纓集)』
- 『점필재집(佔畢齋集)』
- 『백허정집(白虛亭集)』
- 『재사당일집(再思堂逸集)』
- 『허암유집(虛庵遺集)』
- 『이평사집(李評事集)』
- 『경현록(景賢錄)』
- 『속동문선(續東文選)』
- 『해동잡록(海東雜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조선전기 기호사림파 연구』(이병휴, 일조각, 1984)
- The Literati Purges:Political Conflict in Early Yi Korea(Wagner,E.W.,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