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구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준공한 조선총독부의 행정 시설이다. 일제는 1910년 조선총독부 설치 후 기존의 통감부 건물을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다가, 경복궁 자리에 신청사를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26년 준공된 이 건물은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 근정전을 가로막고, 군림하는 일본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의해 건물 해체가 시작되어 1996년 12월 완전히 철거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준공한 조선총독부의 행정 시설.
건립경위
조선총독부 신청사는 1916년에 착공하여 1926년 준공되었다. 건물 위치는 경복궁 근정문(勤政門)의 남쪽, 광화문(光化門)의 북쪽 사이였다. 일제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궁성의 정문인 광화문을 동측 후편으로 이전하였고, 홍례문과 그 회랑 그리고 금천(禁川)에 가설하였던 영제교(永濟橋)를 철거하였다. 건물은 건평 6,980㎡[약 2,115평], 총면적 3만 1693㎡[약 9,604평]의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당시 동양 최대의 근대식 건물이었으며 최고의 기술진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건물 건축을 위하여 막대한 재정지출이 있었고, 건물 건립 전후로 경복궁 7,500여 칸 중 4,000여 칸이 훼손되었으며, 연인원 200만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변천
8·15광복 이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제기되어 왔으며,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 이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철거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민족정기의 회복을 위해 건물 철거를 추진한 정부의 결정을 두고 찬반론이 분분하였다. 그러나 결국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경축식에서 중앙 돔의 해체를 시작으로 건물 철거가 진행되어, 1996년 12월 완전히 철거되었다. 독립기념관은 1998년부터 철거된 중앙 돔과 건축 부재로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을 개원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형태와 특징
또한 조선총독부 건물은 ‘대(大)’ 자형인 북한산과 ‘본(本)’ 자형인 경성부청[서울특별시청]과 함께 공중에서 보면 대일본(大日本)을 형상화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건물들은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관통하면서 서울의 중심축이 자연스럽게 흐트러지도록 3.5도 비뚤어지게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단행본
- 『구 조선총독부 건물 실측 및 철거 보고서』 2(국립중앙박물관, 1997)
논문
- 김동하, 「조선총독부의 경복궁 청사 건립 과정」(『서울과 역사』 111, 서울역사편찬원, 2022)
- 정희선,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청사의 변천과 그 의미」(숙명여자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17)
- 장기인, 「조선총독부 청사」(『대한건축학회지』 35-2, 대한건축학회, 1991)
인터넷 자료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50년 만에 청산된 식민지의 역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oseonChong.do#:~:text=%EC%A1%B0%EC%84%A0%EC%B4%9D%EB%8F%85%EB%B6%80%EB%9E%80%20191)
-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의 공사와 건축계획의 특징](https://theme.archives.go.kr/next/place/generalOutline.do?fla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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