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은 1927년 12월 20일 경상남도 통영군 장목면 외포리(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옥포대첩리)에서 김홍조와 박부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거산(巨山)이고, ‘YS’라는 별칭이 있다. 장목보통소학교를 졸업하고 통영중학교와 경남중 · 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손명순과 결혼하여 3남 3녀를 두었다.
김영삼은 한국전쟁 시기 국회 부의장인 장택상(張澤相)의 인사 담당 비서관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고향인 거제에서 여당인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자유당이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하자 탈당하였고,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해 청년부장 겸 경남도당 부위원장을 지냈다. 파벌로는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총선에서 부산 서구에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4 · 19혁명 후 실시된 7 · 29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장면(張勉) 정부 출범 후 민주당 구파가 신민당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곧 5 · 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정치활동을 금지당하였고, 1963년 3월에는 군정 연장 반대 시위를 벌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63년 11월 제6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고, 민정당이 민주당과 통합해 민중당을 결성하자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1967년 새롭게 창당된 신민당에서도 원내총무로 활동하였으며, 1969년 6월 박정희의 3선 개헌을 강력히 비판해 초산(硝酸)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다.
1970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은 ‘ 사십대기수론’을 주장하며 신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김대중에게 밀려 패배하였다. 1972년 10월 박정희가 유신(維新)을 선포하자 미국을 방문 중이던 김영삼은 곧 귀국하여 가택에 연금되었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후 본격적으로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하였으며, 1974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에 선출되었다. ‘유신철폐운동’을 벌이던 김영삼은 1979년 8월에 발생한 와이에이치무역여공사건(YH무역사건)을 계기로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부마민주항쟁(釜馬民主抗爭)이 일어났고, 그해 10월 박정희의 암살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1980년 신군부 등장 후 또다시 가택연금을 당한 김영삼은 연금에서 풀려난 후 야당 인사들과 민주산악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84년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1985년 신한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신한민주당은 제12대 총선에서 야당 돌풍을 일으켜 제1야당이 되었다. 하지만 총재인 이민우가 전두환 정권의 내각제 개헌 수용 가능성을 밝히자 김대중과 함께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김영삼은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김대중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2위로 낙선하였다. 이후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김영삼은 새 정부를 ‘문민정부’라 명명하고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등 개혁 정책을 실시해 높은 지지를 받았다. 또한, 지방자치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였으며, 제5공화국 청산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전두환 ·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였다. ‘세계화’ 정책을 추진해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에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회원국으로 활동하였으며,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임기 초반 순조로웠던 남북관계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일어난 조문파동(弔問波動)으로 악화되었고, 1997년 1월에는 한보사태(韓寶事態)가 터졌다. 한보사태는 기업들의 연이은 부도로 이어져 결국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 김영삼은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한 가운데 1998년 2월 25일 임기를 마쳤다. 2015년 11월 22일 패혈증과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동아출판사, 1964), 『정치는 길고 정권은 짧다』(사상계출판부, 1967), 『40대 기수론』(신진문화사, 1971), 『나와 내 조국의 진실』(일월서각, 1982),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백산서당, 2000), 『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조선일보사, 2001) 등의 저서가 있다.
1993년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1993년 해리먼 민주주의상, 1995년 마틴 루터 킹 비폭력 인권평화상, 1995년 세계지도자상, 1996년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 등을 수상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졌으며,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0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가 설립되었고,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