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95년 3월 30일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되어 2006년 3월 10일까지 존속한 정당.
설립 목적
민주자유당에서 공화계를 구성한 이들은 1992년 5월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민주계인 김영삼을 지지했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은 그해 말 치러진 제14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 후 당내 주류인 민주계가 개혁 정권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인사라 하여 김종필의 퇴진을 요구하자 공화계는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1995년 3월 30일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였다.
변천 및 현황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다수 의원을 당선시켜 50석을 획득하였다. 원내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한 자유민주연합은 1997년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로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조건은 내각제 개헌과 집권 후 공동 내각 구성이었다. 이후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됨으로써 자유민주연합은 공동 여당이 되었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자유민주연합은 김종필, 박태준, 이한동 등 3명의 국무총리를 배출하고 다수의 인사들을 내각에 입각시켰다. 또한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와 전 지역에서 후보를 단일화해 충청권은 물론 인천광역시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999년부터 내각제 개헌과 햇볕 정책, 재벌 개혁 등을 둘러싸고 새정치국민회의와의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내각제 개헌 추진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다. 더구나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양당의 연합 공천이 무산됨으로써 자유민주연합은 17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총선 직전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꾼 새정치국민회의 측이 의원 꿔주기를 하여 원내교섭단체 등록은 할 수 있었지만, 2001년 한나라당이 제출한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 결의안에 자유민주연합이 찬성하면서 양당의 연합은 붕괴하였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은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에서조차 한나라당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또한 2004년 탄핵 열풍 속에서 치러진 제17대 총선에는 4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선거가 끝난 뒤 김종필은 총재직을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김종필의 탈당으로 구심점을 잃은 자유민주연합은 부총재이자 충남지사인 심대평이 중부권 신당인 국민중심당 창당에 나서면서 붕괴 단계에 직면하였다. 결국 2006년 2월 20일 잔류파가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민주연합은 1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심지연, 『한국정당정치사 - 위기와 통합의 정치』(백산서당, 2017)
- 김종필, 『김종필 증언록: 5 · 16에서 노무현까지』(와이즈베리 미래엔, 2016)
논문
- 장수찬, 「충청 지역주의의 변화와 지역정당 해체」(『한국정당학회보』 5-1, 한국정당학회, 2006)
- 현재호, 「민주화 이후 정당 간 연합에 관한 연구: DJP연합을 중심으로」(『아세아연구』 47-1,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2004)
- 박재정, 「제16대 총선: 평가와 전망」(『정치정보연구』 3-1, 한국정치정보학회, 2000)
신문 · 잡지
- 『조선일보』(2018. 6. 23.)
- 『국민일보』(2006. 3. 14.)
인터넷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www.ne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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