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
정의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조영래는 전태일의 죽음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에 나섰다. 11월 20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태일 추도식에는 “전태일을 죽인 박정희 정권, 기업주, 어용 노총, 지식인, 모든 사회인 등 5대 살인자”를 고발하는 시국 선언문을 초안하였다.
1971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1월에 발생한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에 장기표 · 이신범 · 심재권과 함께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1972년 9월 항소심에서 조영래는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사건)에서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수배되었고, 1980년까지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1980년 사면 복권된 후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가 되어 1983년 8월 11일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였다.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변호사 생활을 하였지만, 노동 · 여성 · 환경 관련 사건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였다.
조영래가 맡은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84년 서울 망원동 수재사건의 집단소송, 1986년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1986년 부천경찰서성고문사건, 국내 최초의 공해병 피해보상 소송 사건인 1987년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이 있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안경환, 『조영래 평전』(도서출판 강, 2006)
논문
- 임송자, 「조영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청춘을 불사르다」(『내일을 여는 역사』 73, 내일을여는역사재단, 2018)
신문
- 「인권변호사 조영래」(『동아일보』, 1990. 12. 15.)
- 「책 이야기 17: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한겨레』, 1990. 12. 15.)
- 「인권변호사 조영래 씨 한평생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큰 발자취」(『한겨레』, 1990. 12. 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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