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宋建鎬)는 1926년 음력 9월 27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1934년 증약사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충청남도 대덕군 동면 동명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였고, 6학년 때인 1939년 대전 욱정공립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1940년 경성 한성사립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44년에 졸업하였다.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고, 1948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편입하여 1956년에 졸업하였다.
1953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하였다. 『 조선일보』, 『 한국일보』, 『 자유신문』, 『 한국일보』 등을 거쳐 1965년에 『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되었다. 1966년에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68년에 서베를린대학 신문연구소에 머물며 『조선일보』에 기사를 송고하였다. 1969년 『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긴 이후 통일문제연구소장, 수석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자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에 광고 탄압을 가하였고, 1975년 3월에 134명의 기자가 강제 해직되자 송건호는 해직 기자들의 복직과 사태 해결을 사측에 요구하였으나 소용이 없자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사직 후 현대사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하는 동시에 민주화운동에도 관여하였다.
197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 『 씨알의소리』 편집위원을 각각 맡았다. 1980년 5월 ‘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정보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하였고, 군사재판에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2년으로 감형된 후 다시 육군형무소에서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지금의 민주언론시민연합) 초대 의장을 맡아 해직 기자들과 함께 1985년 월간지 『말』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을 펼쳤다. 특히, 1986년 9월 6일 『말』지의 ‘ 보도지침’ 특집호 발행은 전두환 정권의 언론 탄압 실상을 폭로한 것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새로운 신문’ 창간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모금 운동의 형식을 통해 창간 계획을 알렸다. 1987년 12월 한겨레신문주식회사 창립총회에서 초대 대표이사에 선임되어 『 한겨레』의 창간(1988년 5월 15일)을 이끌었다. 1993년까지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8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2001년 12월 21일 사망하였다.
저널리즘과 언론인의 사명, 분단 문제와 민족주의, 한국 현대사 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대표 저서로 『민족지성의 탐구』(창작과비평사, 1975),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한길사, 1977), 『한국현대사론』(한국신학연구소출판부, 1979), 『서재필과 이승만』(정우사, 1980), 『김구』(한길사, 1980), 『한국현대인물사론』(한길사, 1984), 『분단과 민족』(지식산업사, 1986), 『민중과 민족』(대방출판사, 1986), 『민주언론 민족언론』(두레, 1987), 『한국현대언론사』(삼민사, 1990) 등이 있다.
1986년 제1회 심산학술상(심산사상연구회), 1991년 제7회 언론상(서울언론인클럽), 1992년 제2회 한국언론상 본상(한국언론학회), 1994년 제4회 호암상 언론상(삼성복지재단), 1998년 한겨레대상(한겨레신문사), 1999년 금관문화훈장, 2000년 제4회 정일형 자유민주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