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부는 효과적인 언론 통제를 위해 문화공보부 내에 홍보조정실의 상설기구를 설치했다. 계엄 해제 후 정부의 대언론 창구를 문화공보부로 일원화하고, 언론협조체제 구축을 통해 언론조정체제를 갖출 목적으로 이른바 ‘보도지침’을 마련했다.
제5공화국시기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에서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작성해 시달했다. 홍보조정실은 협조를 명분으로 했으나 협조요청 사항은 실제 보도지침으로 작용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와 ‘조선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는 1984년 10월 24일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10주년을 맞아’라는 성명서를 통해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판했다.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진보적인 출판단체 등은 1984년 12월 19일 재야언론운동단체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를 창립했으며, 송건우가 초대 이사장직을 맡았다.
1985년 6월 15일 기관지 월간『말』을 발간하기 시작했고,『말』지는 1986년 9월 6일 특별호에서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1985년 10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말』지의 발행인 김태홍 ‘언협’ 의장과 신홍범 실행의원, 김주언 기자가 국가보안법상의 국가기밀누설죄와 외교상 기밀누설죄, 이적표현물 소지죄 등을 적용받았으며, 어기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외신 기사들과 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모독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1심에서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났으며, 9년 3개월여 만인 1995년 12월 5일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