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3월 28일 고려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성명을 시발로 4월 30일까지 전국 28개 대학 783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5·3사태 이후 6월 2일 전국 23개 대학 교수 265명이 대학교수 연합선언문을 발표한 직후, 소장파 교수들과 1984년 복직한 해직교수협의회 교수들을 중심으로 전국 단위의 교수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987년 6월 26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창립대회는 경찰에 의해 봉쇄되었고, 정식 창립총회는 1987년 7월 21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렸다. 전국 30개 대학 443명의 교수들이 위임장을 제출한 가운데, 28개 대학에서 80명이 모였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창립취지문에서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이 사회의 민주화와 표리 관계에 있음을 직시하고, 이 양자의 동시 병행적 달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히고,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공동 노력의 장으로서의 단체 결성 목적을 밝혔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민교협은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 조직을 이끌었고 국립대교수협의회연합과 사립대교수협의회연합 결성을 주도했다. 회원 523명으로 출발한 민교협은 각 지역별로 9개 지역회가 있고, 그 산하에 전국 87개 대학 분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