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주는 도시계획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위원 등을 역임한 도시계획학자이다. 1925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부터 부산공업고등학교 토목과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3년 독도를 최초로 측량하였다. 1968년부터 1990년까지 홍익대학교 도시계획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경주국립공원 계획, 여의도지구 개발 계획, 잠실지구 종합 개발 기본 계획, 행정 수도 입지 선정 및 행정 수도 계획 구상 등 다양한 도시계획 및 국토 개발 사업에 참여하였다. 중앙도시계획위원,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5년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호는 학산(學山)이다. 일본 고베 공업고등전문학교 토목과,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였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명예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48년부터 부산공업고등학교 토목과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3년 한국산악회가 주관한 독도 · 울릉도 학술조사단 측지반장으로 독도를 최초로 측량하였다. 1957년 경주국립공원 계획에 건축가 김중업과 함께 참여하였다. 1958년부터 한국산업은행 국제협력국[ICA] 주택사업기술실 부실장으로 근무하였고, 1962년 대한주택공사의 주택문제연구소 단지연구실 실장을 맡았다. 울산 도시계획 현장 설계[1962]를 시작으로 서울 화곡동 주거 단지 계획[1964], 동부이촌동 공무원 아파트[1965], 여의도지구 개발 계획[1970], 잠실지구 종합 개발 기본 계획[1974], 반월신도시 기본 구조 계획[1976], 서울 도시계획 기본 구상[1977], 과천 도시 기본 구조 계획[1978] 등 도시계획과 관련한 다양한 실무 작업에 참여하였다. 1978년에는 행정 수도 입지 선정 연구를, 1979년에는 행정 수도 계획 구상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967년 홍익대학교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1968년에 홍익대학교 도시계획학과를 창설하였다. 1960년대 말 주원 건설부 장관, 한양대학교 이일병 교수 등과 함께 도시계획이라는 학문을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한국토 · 도시계획학회에서 1968년부터 이사,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회장, 1982년부터 고문을 맡았다. 1970년부터 1990년까지 20년 동안 건설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위원 등을 맡아 국토종합계획의 틀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토목제도』[1957], 『한국도시개발계획론』[1985], 『도시계획』[1990], 『한국의 도시: 박병주 도시순례 스케치』[1996] 등의 저서가 있다.
1980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건설 부문, 1988년 현정 국토개발 학술상, 1990년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