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주한프랑스대사관, 올림픽공원 상징조형물 등을 신축한 건축가.
개설
활동사항
1952년 9월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UNESCO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한국건축가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파리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건축사무소에서 1952년 10월부터 3년 6개월간 건축 및 도시계획을 수업하고 자아발견의 가르침을 받았다.
1956년 3월 귀국하여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인 건축창작 활동을 하며, 한국의 고전을 현대감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홍익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쳤다. 1957년 4월중앙 공보관에서 제1회 김중업건축작품전람회를 개최하였고, 1971년 10월신세계백화점 화랑에서 제2회 작품전을 열고 그 동안의 작품과 프랑스 정부가 만든 영화 「건축가 김중업」을 선보였다.
서울이 당면한 도시계획·건축 등의 문제에 대한 정부시책을 과감하게 비판하였다가 1971년 11월 출국하여 프랑스에 거주하게 되었고, 1972년 3월르 코르뷔지에 재단이사로 선임되었다. 그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프로비던스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1979년 귀국하여 별세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한국문화 속의 샤머니즘적인 체험과 내면에 분출된 원초적인 힘 등 보이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주제를 가지고, 시정(詩情)이 흐르는 생략적이고 암시적인 방법으로 건축에 대한 정취를 표현하였다.
대표적 작품
1970년대 외국에 체류하며 설계한 작품으로는 「성공회회관」(1974), 「한국외환은행본점 설계경기안」(1974) 등이 있으며, 1979년 귀국 후에는 「바다호텔」(1980)·「하늘교회」(민족대성전, 1980) 등의 계획안을 발표하였고, 「KBS국제방송센터」(1988), 「올림픽공원 상징조형물」(1988) 등을 설계하였다.
상훈
참고문헌
- 『일하는 예술가들』(강석경, 열화당, 1986)
- 『김중업』-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열화당, 1984)
- 『한국현대미술사(韓國現代美術史)』-건축(建築)-(국립현대미술관,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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