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함흥 출신. 아버지는 주종기(朱鍾冀)이다. 1924년 함흥공립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일본에 건너가 도쿄제일외국어전문학교[東京第一外國語專門學校]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1928년에 졸업하였다.
1928년 오하라사회경제연구소[大原社會經濟硏究所] 연구원으로 1937년까지 재직하였고, 귀국하여 1946년부터 1950년까지 국립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강사를 지냈다.
1951년부터 1960년까지 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 및 간사장을 역임하였고, 1953년부터 대한건설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1959년까지 재직하였다. 그 뒤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 상임위원, 중앙도시계획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대한국토계획학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에 피선되었고, 1959년부터 1961년까지 부흥산업개발계획위원회 위원장서리,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자문위원, 외자도입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1966년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67년부터 1969년까지 건설부장관, 1969년부터 11년간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국토건설종합심의회 위원과 동남아계획기구(東南亞計劃機構) 회장, 국토계획조정위원회 위원장, 세계계획연합회(世界計劃聯合會) 부회장 등을 각각 역임하였다.
1977년 국토개발연구원 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아 1984년까지 재직하였으며, 1978년 사단법인 인간개발원 회장에 피선되어 1985년까지 재직하였다.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회 위원과 사단법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문위원을 역임하였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8년간 사단법인 대한건설진흥회 회장을 지냈다. 1984년 4월 1억 원을 내놓아 국토개발상을 위한 ‘현정기금(弦汀基金)’을 창설, 운영해 왔다.
저서로는 『국토정책의 운용과 이론』(1953)·『도시계획과 지역개발계획』(1955)·『시장이론』(1959) 등 다수가 있다. 1959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62년 산업포장, 1963년 황조근정훈장, 1970년 금탑산업 훈장, 1979년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