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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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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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대한유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중소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실업가. 정치인.
이칭
해암(海巖)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0년
사망 연도
1990년
본관
김해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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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대한유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중소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실업가. 정치인.
내용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해암(海巖). 경상남도 창원 출생. 아버지는 김응조(金應祚), 어머니는 정경연(鄭景連)이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성공하였다.

1947년 삼진중학교(三鎭中學校)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으며, 1950년 제2대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55년 대한유리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되었다. 1960년 제5대국회의원에 재선되어 민의원 상공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생산성본부 회장도 역임하였다.

1966년 이후 경제인구락부 회장을 지냈고, 1966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에 선임되어 봉직하였다.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2년간 중 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발전과 중소기업인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71년 이후 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 한국개발금융주식회사 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 새한장학회 이사, 경제계획심의회 위원, 정수직업훈련원 이사,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을 역임하였고, 1975년 중소기업진흥재단 이사장, 1977년 기계공업전문업체협의회 회장, 한국인간개발원 이사를 역임하였다.

1978년 제5차중소기업국제회의 전체회의 의장으로 피선 되어 활약하였으며, 1979년 국제연합한국협회 이사, 건전생활중앙협의회 집행위원장 등을 각각 역임하였다. 1980년 장기신용은행 감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 헌법개정심의회 위원, 경제계획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2대헌정위원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6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80년 세계중소기업유공지도자상인 월프드상을 받았고, 198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한국재계인사록』(전국경제인련합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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