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세워진 경복궁 남쪽의 궁궐건물. 궁문(宮門).
개설
역사적 변천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2006년 들어, 경복궁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철거·해체되었다. 이후 광화문 이전 공사가 개시되어 2010년 8월 완공되었다.
내용
1층 기둥높이는 7척이고, 기둥 간격은 앞면은 가운데가 27척, 양옆이 25척씩이고, 옆면은 10척씩이다. 1층의 기둥 사이는 개방하였고, 2층에는 판문을 달아 열고 닫게 하였다.
내부살미는 조선 말기에 흔히 쓰던 운궁(雲宮: 살미 내부의 중첩된 부분)을 사용하였고, 내목도리(內目道里) 아래에 장화반(長花盤: 창방과 장여 사이에 길게 놓인 화반)을 놓았으며 공포 사이에는 포벽을 마련하였다.
가구수법은 아래층 대들보가 고주(高柱)에서 합보 형식을 하고 대들보와 위층 마루 사이에 공간을 두었다. 아래위층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고 지붕의 각 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들을 배치하였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궁궐지(宮闕志)』
- 「북궐도형(北闕圖型)」
- 『한국의 고궁건축』(신영훈 외, 열화당, 1988)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서울특별시사』고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3)
- 「다시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홍순민, 『역사비평』36, 1997)
-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유종열, 『일본연구』16, 197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