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 예술·체육
  • 개념
인위적으로 산의 모습을 만들어 정원의 일부를 구성하게 한 조원술.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황의수 (민학회, 건축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서울 경복궁 경회루 일대 미디어 정보

서울 경복궁 경회루 일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인위적으로 산의 모습을 만들어 정원의 일부를 구성하게 한 조원술.

내용

조산(造山)이라고도 한다. 궁궐이나 도성 안에 큰 연못이나 하천을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처리하기 위하여 쌓은 산이지만, 땅의 기운이 허한 곳에 지기(地氣)를 보태려고 쌓은 산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원수법으로서 가산을 만든 의도는 대자연을 주거환경 안에 편입시켜 소우주를 만들려는 데 있었다. 가산을 조원수법으로 이용한 것은 일찍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대개는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이때 나온 흙으로 산을 만들고 여기에서 짐승을 기르거나 화초를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진사왕 7년(391)에 궁실을 크게 수리하면서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기한 짐승을 기르고 아름다운 화초를 심었다는 기록이나,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여러 가지 화초와 진기한 짐승들을 길렀다고 하는 기록은 바로 가산을 만들어 원유(苑囿)를 조성하였던 예이다.

고구려의 안학궁(安鶴宮)과 발해의 상경 용천부(龍泉府) 궁성 등에도 가산이 있었으며, 고려 예종 8년(1113)에는 궁궐 남쪽에 화원과 가산을 만들고 여기에 만수정(萬壽亭)을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문신인 성임(成任)의 석가산(石假山)이 알려져 있으며, 경복궁 교태전 뒷산인 아미산(峨嵋山), 경회루 연못 가운데 있는 두 섬, 소쇄원(瀟灑園)과 성락원(城樂園)의 가산 등이 그 대표적인 유적이다.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가산을 만든 경우로는 1398년에 종묘 앞쪽의 지세가 허하다고 하여서 흙으로 산을 쌓은 예가 있다. 또, 큰 연못이나 하천을 파낼 때 나오는 흙을 처리하기 위해 가산을 만든 경우로는, 청계천을 파낼 때 파낸 흙을 수구문(水口門) 근처 성벽 안쪽에 쌓아 만든 예가 있는데, 그 위치는 당시의 훈련원 북쪽이었다.

가산의 조성은 자연의 경관을 끌어들여 생활주변마저 선경(仙境)으로 만들려고 하였던 도가적(道家的) 자연관(自然觀)의 영향으로 시대가 내려오면서 더욱 일반화되어 사대부의 별서(別墅 : 별장)나 정원을 조성하는 데도 가산에 의한 조원이 많았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

  • - 『고려사』

  • - 『동문선』

  • - 『동국문헌비고』

  • - 『동사강목』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