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유교리 고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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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유교리 고가
무안 유교리 고가
주생활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남해안지역의 대표적인 부농의 주택.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무안 유교리 고택(務安 柳橋里 古宅)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유산(1984년 01월 14일 지정)
소재지
전남 무안군 삼향읍 유교길 53-5 (유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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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일제강점기 남해안지역의 대표적인 부농의 주택.
내용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주택으로 추정되는데, 안채가 남아 있고, 넓은 마당 끝에 일제강점기 때 지은 창고가 있으며, 문간채와 중문채가 일부 남아 있다.

안채는 지반의 경사를 이용해 제일 높은 곳에 동향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일자형(一字形)의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전후의 퇴(退)가 있는 집이다. 안채 앞의 마당과 창고 앞 마당 사이에 2단의 화계(花階)를 만들고, 중앙 부분과 동쪽 끝부분에 계단을 설치했으며, 서쪽 끝부분에는 경사로를 만들어 수레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안채와 창고는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어 그 사이의 넓은 마당을 상하로 구분하고 있는데, 창고 앞의 마당이 훨씬 넓어 가을철 수확기에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기 쉽도록 되어 있다. 현재는 사랑채나 헛간채가 없어 그 확실한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원래 이 마을의 부호로 많은 소작인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안채의 대청은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중심부에 한 칸만 잡고 있어 좁은 편이다. 그러나 그 옆의 한 칸을 고방으로 하였고, 상부에는 다락이 있다.

서북쪽에 있는 부엌은 상당히 넓어 두 칸을 툭 터서 쓰고 있으며, 서쪽 벽으로 반 칸을 달아 조그마한 찬광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퇴는 동쪽의 한 칸을 제외한 전면에 설치되어 넓고 시원하게 처리되어 있으나, 후퇴는 중심부의 세 칸에만 설치하고 있다.

부엌과 대청 사이에 안방이 있고 동쪽 끝부분에 건넌방이 있는데, 건넌방은 상하로 나누되 윗방의 전면에 작은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앞마루 전면에 세운 기둥은 모두 원주(圓柱)로 했으나, 그 밖의 기둥은 방주(方柱)로 하였다.

안채의 구조는 일고주오량(一高柱五樑)으로 주심도리는 굴도리로, 기타는 납도리로 구성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기와를 얹은 팔작이다.

창고는 낮은 기단 위에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면의 중심부 4칸에 각각 쌍여닫이문을 내고 있는데 일본식이 가미되어 있으며, 좌우 측면과 후면의 벽을 일본식으로 판벽으로 처리하여 일제 때 지어진 집으로 추정된다.

창고 앞마당의 동쪽 중심부에 중문채가 있고, 중문채를 나서면 자연석으로 쌓은 계단이 있으며,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솟을대문이 있는데 현재는 옛 모습과는 달리 양기와를 얹어 놓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상당히 넓은 대지 위에 여러 채의 집들이 세워진 대가이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편(문화재관리국,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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