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는 한반도 동쪽에 있는 바다이다. 서태평양의 연해로서 우리나라와 러시아, 일본열도 및 사할린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키섬주·쓰시마섬주·울릉도·독도·오키섬·사토섬·도비시마섬 등이 육지 주변에 위치해 있다. 수심이 깊고 섬이 많지 않아 해상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다. 신라의 이사부가 을릉도에 있는 우산국을 항복시킨 바 있다. 조선 말기에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극동 지역에 진출하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포항·감포·방어진 등의 어항을 개설하여 수산업을 전개시켰으며 만주에 진출하기 위하여 나진항을 새로 건설하기도 하였다.
서태평양의 연해로서 우리나라와 러시아, 일본열도 및 사할린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동은 소야 · 타타르해협으로 오호츠크해와 이어지고, 동으로는 쓰가루해협에 의해 태평양과, 그리고 남으로는 대한해협에 의하여 남해와 연결되고 있다.
전체 윤곽은 북동에서 남서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타원형이며 남북길이는 1,700㎞, 동서 길이는 최대 1,100㎞, 면적 1,008×106㎢, 평균 깊이는 1,361m이다.
이키섬 · 쓰시마섬 · 울릉도 · 독도 · 오키섬 · 사토섬 · 도비시마섬 등 대부분의 섬이 육지 주변에 위치한다. 동해의 해저는 북위 40°선에 의하여 2개의 서로 다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부는 대체로 평탄하고 경사가 완만하며 최고 깊이는 4,049m이다. 남부는 보다 복잡하여 섬 주변의 얕은 해역 깊은 해구(海溝) · 해퇴(海堆)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해의 해저지형은 제4기초에 대단층운동으로 함몰하여 형성된 해분(海盆)으로, 일본열도 서쪽 해안을 따라 많은 해퇴와 해구가 발달한 복잡한 지형인 데 비하여, 시베리아 연해주 해안은 단조롭고 대륙붕도 협소하며 급사면으로 3,000m 깊이의 해분에 이르고 있다.
동해분지 내에는 몇 개의 해중협곡(海中峽谷)을 발견할 수 있다. 대륙사면에서 이 협곡은 2,000m 이상의 깊이에 이르지만 일본열도 말단에서는 800m 정도로 얕아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동해안은 지반이 융기한 방향과 나란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조로우며, 좋은 항구가 발달하기 어렵고 대륙붕도 해안을 따라 좁게 발달해 있다.
서남 해안과는 달리 해안에서부터 갑자기 깊어진다. 동해안의 경계는 두만강 입구에서 부산부두까지 1,723㎞의 해안선을 말하며, 직선 거리는 809㎞이다. 지절률(肢節率) 2.13으로 남해안의 8.81에 비하면 매우 단조로우며, 도서 해안 역시 220㎞로 매우 짧다.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은 경사가 급하며 토사의 운반량이 많다. 주문진에서 강릉에 이르는 해안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사빈(砂濱)이 발달되어 있다. 이곳의 모래는 주문진천 · 연곡천 · 사천 · 강릉남대천 등에서 공급된 것이다.
동해안에는 광포(廣浦) · 소동정호(小洞庭湖) · 화진포(花津浦) · 청초호(靑草湖) · 영랑호(永郎湖) 및 경포(鏡浦) 등 많은 석호가 발달되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후빙기(後氷期)의 해면 상승으로 동해안에 침수현상이 일어나 하곡(河谷)은 만입(灣入)으로 변하고 그 전면에 사주(砂洲) 또는 사취(砂嘴)가 발달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 해안단구는 동해안의 각지에 분포하며 이는 융기해안(隆起海岸)임을 입증한다.
산지가 해안에 인접한 곳도 많아 해식애(海蝕崖) 및 파식대(波蝕臺)가 암석 해안에 많이 발달해 있는데, 특히 강원도 고성의 해금강, 통천의 총석정 등은 좋은 예이다. 육계도(陸繫島)도 발달되어 있는데 영흥만의 호도반도(虎島半島), 양양의 죽도(竹島)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일본의 북서 해안 및 러시아의 극동 해안은 평지가 협소하고 활동의 중심지와는 산지로 격리되어 있다. 또한 수심이 깊고 섬이 많지 않아 황해와 남해에서 보는 바와 같은 해상활동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이미 신라의 이사부(異斯夫)가 울릉도에 있던 우산국(于山國)을 항복시킨 바 있다.
또한 고려 초기에 동북 여진의 해적들이 일본의 구주(九州) 북안과 울릉도를 약탈하였으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왜구가 동해안과 울릉도를 습격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동해에서도 일찍부터 해상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해가 전략적인 중요성을 띠는 것은 조선 말기 이래의 일이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얻는 등 극동지역에서의 진출을 꾀하다가 러일전쟁에서 패하여 그 진출이 좌절되었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동해안의 남부에 포항 · 감포 · 방어진 등의 어항을 개설하여 수산업을 전개시켰으며 두만강 하류를 통하여 만주에 진출하기 위하여 나진항을 새로 건설하기도 하였다.
과거 러시아는 동해를 통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하려 하였으며,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등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동해는 황해와 남해에 비하여 파랑(波浪)의 영향이 강하다.
동해안에서 어항이 위치하는 장소는 파고(波高)가 높은 파랑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곳이다. 파고가 높은 파랑은 북동 또는 동쪽에서 오는 경우가 많으며, 어항은 완만한 만입지의 내부에 남향 또는 동남향으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어항에는 최대 파고에 대응하는 규모의 방파제를 축조하여 파랑의 피해를 막고 있다.
동해는 수심이 깊으므로 어업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어장으로서 이용가치는 적었지만 이용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옥저 사람이 고구려에 조부(租賦)로서 맥포(貊布)와 함께 어염(魚鹽) 및 해중 식물을 바쳤다는 것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그 당시에 어업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후한서』에도 동예 사람들이 반어피(斑魚皮)를 한나라에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반어피라는 것은 해표(海豹)의 가죽을 말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표를 상대로 한 어업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아, 다른 어류를 대상으로 한 고기잡이 기술도 상당히 발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잡힌 어종은 청어와 명태였는데 함경도 지방에서는 명태를 잡을 때 자망 · 거망(정치망의 일종) · 연승과 같은 망어구 및 낚시 어구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강원도 지방에서도 휘리망(揮罹網)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지인망(地引網)과 같이 발달된 어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고기는 살오징어 · 꽁치 · 방어 · 삼치 · 고등어 등 온대성 어류이다. 이 어종들은 봄부터 여름철에 걸쳐 동해안 앞바다를 따라 난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때때로 북한 연안의 인접 수역까지 회유한다.
이때 방어 · 삼치 · 고등어 등은 정치망으로, 꽁치는 유자망으로, 살오징어는 낚시로 잡으나 최근에는 자망으로도 많이 잡는다.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에 이 고기떼들은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여 다음해 4, 5월까지는 북부 수역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온대성 어종 가운데 오징어의 낚시 어업은 울릉도와 묵호 주변 수역에서 6월경부터 7, 8월경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9월 이후 오징어 낚시 어장은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까지 이동한다. 어종별 어획량 중에서는 오징어가 가장 많다.
꽁치는 3월에서 7월까지 북상 기간 중에 주로 잡히지만 10월에서 12월에 걸친 남하기에도 잡힌다. 온대성 어종의 한 종류로서 최대 생산량을 보였던 정어리는 영일만 부근에서 12월부터 3월 사이에 매우 많이 잡혔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급격히 감소하였다가 최근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류성 어종으로는 명태와 대구가 잡히는데 명태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연안 수역에서 자망과 연승 및 저인망으로 잡으며, 그 주요 어장은 원산만이다. 가장 왕성한 시기는 11, 12월로 그 기간에 산란하며, 부유란의 대부분은 강원도 연안으로 흘러들어와 부화, 성장한다. 대구는 동해안에서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연안에서도 잡힌다.
동해의 저인망 어장은 광대한 수역에 비하여 대륙붕이 좁아서 비교적 한정되어 있고, 명태 · 대구 · 도루묵 · 넙치 · 게 · 새우 · 광어 등이 잡힌다.
6 · 25 이후에 새우트롤이 성행하였으나 최근에는 자원의 감소로 잡어를 주로 잡고 있다. 이 밖에 전복 · 참고둥 · 백합 · 참조개 등의 조개류와 한천 · 미역 · 다시마 등의 해조류도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