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군은 경상남도 중앙에 위치한 군이다. 지금의 의령읍 중심 남부와 부림면 신반리 중심 북부가 별도의 행정구역을 이루다 고려 후기에 통합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가 가장 먼저 의병을 조직한 지역이기도 하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의령9경을 선정해 알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한민국 부자1번지 의령’이란 주제로 홍보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2.8㎢, 인구는 2만 5150명으로 경상남도 시군 중 가장 인구가 적다. 행정구역은 1개 읍, 12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령군청은 의령읍 중동리에 있다.
의령군은 경상남도의 중앙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경상남도 창녕군 · 함안군, 남쪽은 경상남도 진주시, 서쪽과 북쪽은 경상남도 산청군 · 합천군과 맞닿아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금의 의령읍을 중심으로 하는 남동부 지역과 부림면의 신반리를 중심으로 하는 북서부 지역이 별도의 생활권과 행정구역을 형성해 왔으며, 고려 후기에 하나의 지역으로 통합하였다.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의령9경을 선정해 알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 대한민국 부자1번지 의령’이란 주제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82.8㎢이고, 인구는 2만 5150명으로, 경상남도 시군 중 가장 인구가 적다. 행정구역은 1개 읍[의령읍], 12개 면[가례면 · 칠곡면 · 대의면 · 화정면 · 용덕면 · 정곡면 · 지정면 · 낙서면 · 부림면 · 봉수면 · 궁류면 · 유곡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위 행정 단위로 116개 법정리, 239개 행정리가 있다. 의령군청은 의령읍 중동리에 있다. 군의 상징물로 군화(郡花)는 진달래, 군목(郡木)은 은행나무, 군조(郡鳥)는 비둘기이다.
군역이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타원형을 띠며, 전체적으로 북서쪽이 높고 남동쪽이 낮은 지형적 특징을 보인다. 서쪽과 북쪽은 서쪽에 자리한 관내 최고봉인 자굴산(闍崛山: 897m)을 시작으로 북동 방향으로 한우산(寒雨山: 835m), 산성산(山城山: 741m), 선암산[528m], 만지산(萬芝山: 607m), 국사봉(國師峰: 688m), 미타산(彌陀山: 662m) 등이 이어지면서 경상남도 합천군과의 경계를 형성한다. 반면에 동쪽에는 낙동강의 본류가, 남쪽에는 남강이 곡류하면서 각각 경상남도 창녕군 · 함안군과의 경계를 형성하며, 강을 따라 토질이 비옥한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군의 경계를 따라 낙동강과 남강이 흐르고 있어, 관내의 소하천 대부분이 이 두 강으로 흘러든다. 의령천과 화정천, 남산천, 용소천, 용덕천, 두곡천, 성황천, 백야천 등은 남류하면서 곳곳에 하안 평야부를 만들고 남강으로 흘러들며, 신반천(新反川), 유곡천(柳谷川) 등은 곳곳에 상당한 규모의 산간분지를 형성하면서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경상분지(慶尙盆地)에 해당해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층인 경상누층군에 해당하며, 산지 지역은 백악기 후기에 퇴적암층에 관입된 불국사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남부지방이지만 바다와 떨어져 있는 산간 내륙지방에 해당해 기온의 일교차와 연교차가 크며, 주변 지역에 비해 강수량이 적은 대륙성기후가 나타난다. 1991~2020년 평년값에 따르면, 연평균기온은 13.6℃이며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5.6℃,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31.8℃이다. 연평균강수량은 876.8㎜이며, 평균습도는 70%이다.
의령군은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역으로, 두 하천과 그 지류 주변으로 고인돌[지석묘]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다수 발굴되어 오래전부터 상당한 인구가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으로 의령읍 서동리와 동동리를 비롯하여 대의면 마쌍리, 정곡면 석곡리, 가례면 가례리 등지에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명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가야시대와 삼국시대에는 전체적으로 함안의 아라가야(阿羅伽倻)나 창녕의 비사벌(比斯伐) 영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가야[고령], 비사벌[창녕], 아라가야[함안], 소가야[고성] 등 주변 가야 세력들 사이에 놓인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이 지역은 범가야 문화권의 고식 도질토기(古式 陶質土器) 양식을 공유하면서도, 인근 집단들의 정치적 · 문화적 영향을 함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의령군의 남부와 북부는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부터 남강 수계와 낙동강 수계로 구분되어 서남부 집단과 동북부 집단이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였으며, 고려 후기까지 행정구역도 별도로 형성되었다. 남강 수계에 해당하는 서남부 지역은 현재의 의령읍을 중심지로 하였으며, 낙동강 본류로 유입되는 신반천과 유곡천 일대의 동북부 지역은 지금의 부림면 중심지인 신반리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별도의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의령읍을 중심으로 한 서남부는 통일신라 때인 685년(신문왕 5)에 장함현(樟含縣)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의령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함안군의 영현이 되었다. 반면에 신반리를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방은 신이현(辛尒縣) 또는 천천현(泉川縣)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 후기에 의상현(宜桑縣)으로 개칭되어 강양군(江陽郡)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지역]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전기인 1018년(현종 9) 의령현은 진주목의 영현으로 편입되었으며, 고려 후기인 1390년(공양왕 2)에는 수령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한편, 신반 지방의 의상현은 고려 전기에 신번현(新繁縣)으로 개칭된 뒤, 1018년 강양군에서 승격한 합주(陜州)의 영현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1390년 의령현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신번현 역시 의령현의 영현으로 이속되었다. 이 조치를 계기로 의령현은 현재 의령군의 행정구역과 대체로 일치하는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조선 전기인 1413년(태종 13)에 감무 제도가 폐지되면서 의령현에는 현감이 파견되었고, 이후로는 큰 변화 없이 행정구역이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기존의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진주부 소속의 의령군이 되었으며, 이듬해에 경상남도 의령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현재의 궁류면 일부에 해당하는 궁소면이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이속되었으며, 기존 26개였던 면이 14개로 통폐합되었다. 1922년에는 군청 소재지인 풍덕면이 군의 이름을 따라 의령면으로 개칭되었고, 1935년에는 화양면을 의령면과 화정면에 나누어 편입시키면서 13개 면으로 변경되었다. 1979년 의령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행정구역이 지금과 같은 1개 읍, 12개 면이 되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의령군의 인구는 2만 5150명이며, 등록 외국인을 포함하면 총 2만 6117명이다. 인구밀도는 54.09명/㎢으로, 경상남도 내 18개 시군 중 인구수가 가장 적다. 내국인 가구수는 1만 4905가구로 가구당 인구는 1.69명이며, 성별로는 남성이 1만 2546명, 여성이 1만 2604명으로 여성 인구가 조금 더 많다. 외국인 주민은 967명으로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3.84%이다. 읍면별로는 주민등록 인구 기준 의령읍이 9,033명으로 군 전체 인구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부림면 2,623명, 지정면 1,760명, 가례면 1,582명의 순이지만 의령읍과 차이가 많이 난다.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은 낙서면과 봉수면으로 각각 1,0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684명과 936명이며, 대의면과 유곡면, 칠곡면 등 나머지 면 지역의 인구 역시 1,000~1,500명 정도에 그친다. 의령읍의 인구 역시 군내에서는 가장 많지만, 「지방자치법」에서 규정한 일반적인 읍 승격의 인구 기준인 2만 명 규모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군내에 다른 중심지가 없어 예외적으로 읍으로 승격한 경우에 해당한다.
의령군의 인구는 1960년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총조사 기준으로 1966년 의령군의 인구는 10만 4773명으로 10만 명을 상회하였지만, 1970년 9만 3345명으로 10만 명 이하로 내려왔으며, 1980년에는 6만 4175명으로 10년간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감소하는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하였다. 이후 1990년 4만 8987명, 2000년 3만 1291명, 2010년 2만 5249명으로 인구 감소는 계속되었으나, 그 폭은 다소 완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로는 전체 읍면에서 인구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인구가 많은 의령읍의 감소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면 지역의 인구 감소는 더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 읍으로 승격하기 이전인 의령면 인구는 1만 4436명이었으며 1990년에는 1만 1667명, 2010년에는 8,024명을 기록하였고, 2020년에는 9,002명으로 다시 증가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의령읍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 부림면의 경우 1970년 1만 1317명에서 1990년 6,020명, 2010년 3,166명으로 매 20년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인구가 가장 적은 낙서면은 1970년 4,479명에서 1990년 2,075명, 2010년에는 803명으로 40년간 82.1%가 감소하였으며, 낙서면 다음으로 인구가 적은 봉수면은 1970년 6,088명에서 1990년 2,433명, 2010년 977명으로 같은 기간 84.0%가 감소하였다. 이러한 인구변화로 인하여 군 전체 인구에서 의령읍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세기 중반 이후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의령군은 보물 3점, 천연기념물 5점, 국가등록문화유산 2점 등 국가지정문화유산 10점과 시도지정문화유산 67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국가무형유산인 한지장(韓紙匠)의 전승자 중 한 명으로 신현세 장인이 지정되어 있다.
보물 3점 중 2점은 불교 유산에 해당하는 의령읍 보천사(寶泉寺) 터의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宜寧 寶泉寺址 三層石塔)과 의령 보천사지 승탑(宜寧 寶泉寺址 僧塔)이다. 수암사(水巖寺)로 불리기도 한 보천사는 통일신라 전기인 경덕왕(景德王: ?~765) 때 창건된 사찰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정확한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층석탑과 승탑 모두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다.
나머지 보물 1점은 곽재우 유물 일괄(郭再祐 遺物 一括)로, 임진왜란 때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이 사용한 장검, 마구 및 포도연(葡萄硯), 사자철인(獅子鐵印), 화초문백자팔각대접(花草紋白磁八角) 등 6점을 포함한다. 이 유물은 원래 곽재우 장군과 휘하 장수 17명의 위패가 봉안된 의령읍의 충익사(忠翼祠)에서 보관 · 관리하였으나, 2012년 의령읍 중동리에 개관한 의병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5점 중 1점은 의령읍의 ‘의령 서동리 백악기 빗방울자국(宜寧 西洞里 白堊紀 빗방울자국)’이다.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에 가뭄으로 노출된 지층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생긴 자국이 굳어져 암석화된 것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긴 하지만 매우 희귀한 지질학적 유산으로 평가된다.
다른 4점은 관내에 있는 고목(古木)으로 유곡면의 ‘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宜寧 世干里 銀杏나무)’와 ‘ 의령 세간리 현고수(느티나무)(宜寧 世干里 懸鼓樹(느티나무))’, 정곡면의 ‘ 의령 성황리 소나무(宜寧 城隍里 소나무)’, ‘ 의령 백곡리 감나무(宜寧 白谷里 감나무)’이다. 이 중 의령 세간리 현고수는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을 시키면서 이 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쳤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한지장은 전통 한지를 제작하는 장인을 말하며, 2025년 기준 전국에 네 명의 전승자가 지정되어 있다. 이 중의 한 명인 신현세 장인은 2021년부터 전승자로 활동하고 있다. 의령 한지는 부림면 신반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는데, 신반은 통일신라시대부터 한지를 생산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우리나라 한지의 발상지이자 과거 최대 생산지로 꼽힌다. 특히 신반리의 신반오일장은 종이 시장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때 약 200가구에 이르는 주민이 한지 생산을 생업으로 삼기도 했으나, 현재는 10여 개의 가내공장에서 전통 수공업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지역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7년 의령읍에 설립된 의신학교(宜新學校)와 이듬해인 1908년(융희 2년)에 개교한 부림면의 창남학교(刱南學校)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1912년에 사립학교 말살 정책으로 두 학교 모두 문을 닫았다. 한편, 1910년에 설립된 의령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의령읍내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41년에는 의령읍내공립초등학교로, 1949년에는 의령국민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96년 현재의 명칭인 의령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중등학교로는 의령중학교와 의령고등학교의 전신인 의령농업전수학교가 1945년에 처음으로 개교하였고, 1951년 의령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고등학교 과정은 1952년 의령농업고등학교로 분리되어 개설된 후, 1973년 의령종합고등학교를 거쳐 1999년 의령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2025년 3월 1일 기준 의령군에는 초등학교 14개[분교 포함], 중학교 5개, 고등학교 3개가 있으며,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특수학교로 의령은광학교가 있다. 초등학교는 인구가 가장 많은 의령읍에 2개가 있으며 그 외 면들에 각 1개씩 분포하고 있는데, 궁류면과 봉수면에는 각각 본교가 아닌 남산초등학교 궁류분교와 부림초등학교 봉수분교가 있다.
다만 13학급에 266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의령읍의 의령초등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학년당 1학급 규모로, 전체 학생 수가 50명 이하인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12개 면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낙서면의 낙서초등학교는 3개 학급에 4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지정면의 지정초등학교 역시 4(1)개 학급에 재학생은 8명이다.
중학교는 공립 2개와 사립 3개가 의령읍을 비롯한 각기 다른 면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지역에 10개의 중학교가 있었지만,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1994년 부림면의 신반여자중학교, 1995년 낙서면의 낙서중학교, 1999년 칠곡면의 의춘중학교가 차례로 폐교되며 각각 의령중학교와 신반중학교로 통합되었다. 또한 화정면의 구(舊) 화정중학교와 궁류면의 구 의동중학교는 1999년부터 각각 의령중학교 화정분교와 신반중학교 의동분교로 축소되어 운영되었으나, 2008년 모두 폐교하였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의령고등학교와 의령여자고등학교가 있으며, 특성화고등학교로 신반정보고등학교가 있다. 관내에는 4년제 대학이나 2년제 전문대학은 없으며, 2000년에 마산대학 의령캠퍼스[전문대학]가 개교하였으나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다.
문화시설로는 공공도서관인 경상남도교육청 의령도서관이 운영 중이며, 보유 장서는 약 8만 권이다. 박물관으로는 2012년에 개관한 의병박물관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 곽재우 유물 일괄’을 비롯해 곽재우 장군과 의병 관련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공연장은 1993년 의령읍에 준공된 의령군민문화회관이 대표적이며, 354석 규모의 공연장과 80석 규모의 소회의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화관의 경우 일반 상업영화관은 없지만, 2023년 군 차원에서 군민의 문화생활 향상을 위해 의령읍에 2개 상영관 규모의 작은영화관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주요 문화 행사로는 지역의 대표 축제로 ‘의령 홍의장군 축제’가 군민의 날 행사를 겸하여 매해 개최된다. 의령 홍의장군 축제는 1972년부터 의병 장군 곽재우와 휘하의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의병 창의일인 4월 22일에 맞춰 열리는 축제로, 2019년까지는 ‘의병제전’이라는 명칭으로 열렸다. 주요 행사로 추모 제향과 혼불 안치식, 의병 출정 퍼레이드, 읍면 전통문화 경연대회, 의령예술문화마당 등이 있다.
의령군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의령큰줄땡기기(宜寧큰줄땡기기)가 있다. 줄쌈이라고도 부르는 줄당기기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벼농사를 주로 하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널리 행하는 놀이로, 풍년을 기원하는 일종의 농경 의식으로 해석된다.
의령큰줄땡기기는 1800년(정조 24)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한다. 온 마을 주민이 참여해 마을 단위로 승부를 겨루는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줄당기기 시합뿐 아니라, 시합에 사용할 줄을 만드는 과정에도 전체 읍면 주민이 수개월에 걸쳐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지역 화합의 장으로 평가된다. 시합에 사용하는 큰 줄은 길이가 보통 100m 이상이 되는데, 2005년 사용했던 큰 줄은 길이 251m, 둘레 약 5m, 무게 54.5톤에 달해 세계 최대의 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2015년에는 영산 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등 다른 지역의 줄당기기 놀이 5건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의령 신반대광대’는 5일장이었던 신반장을 근거지로 활동한 전문 유랑예인 집단인 신반대광대패가 연행하던 놀이로, 죽방울 받기와 솟대타기 등의 곡예와 함께 오광대 탈놀이를 공연하였다. 의령 신반대광대의 오광대 과장은 오방신장 과장, 중 과장, 양반 과장, 영노 과장, 할미 · 영감 과장으로 구성되며, 다른 지역 오광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둥이 과장과 사자무 과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신반대광대는 시대 변화에 따라 1920년경 사라졌으나, 2010년대 후반 의령문화원 등의 지원으로 복원되었으며, 2019년 경상남도민속예술축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의령 지역의 특징적인 민요로는 ‘의령집돌금 농악’ 농악을 들 수 있다. 이는 남부지방에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집터를 지켜 준다는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지내고 복을 비는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 ‘ 지신밟기’라 부르는 것을 의령 지역에서는 ‘집돌금’이라 한다. 집돌금 농악은 이러한 지신밟기 행사에서 연행되는 음악으로, 마을 농악대가 정초에 동제당에서 당산굿을 올린 뒤 정월 대보름까지 집집마다 방문해 축원을 베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전승되는 집돌금 농악은 처음에는 화정면 명주마을에서 마을 제당과 가가호호를 돌며 축원을 하던 마을 농악이었다. 1970년대부터는 읍치 지역까지 연행 범위를 넓히며 명성을 얻었고, 이 과정에서 다른 마을들도 ‘명주집돌금’을 받아들여 ‘의령집돌금 농악’이라는 고을 농악으로 확대 · 정착되었다. 2012년부터는 의령문화원 산하에 ‘의령집돌금 농악보존회’가 조직되어 보존에 힘쓰는 동시에, 외부 경연대회와 축제에도 참여해 그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의령 지역에는 다양한 지명유래 설화가 전해진다. 유곡면 덕천리에 있는 옥녀봉(玉女峰: 340.9m)은 옥녀가 이곳에서 놀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옥녀봉 주변 지명 역시 옥녀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마두(馬頭)는 옥녀가 타고 간 말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옥녀가 시집갈 때 농을 가지고 가서 근처에 농덤[농바위]이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또한 유곡면과 봉수면을 잇는 고개인 ‘직금재(織錦재)’는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옥녀와 함께 놀다가 올라갔으며, 옥녀가 이곳에서 비단을 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외에도 의령읍의 정암루 인근 남강에 있는 ‘솥바위’는 솥 모양으로 생긴 바위섬으로, 물 위로 드러난 부분은 솥 모양을 하고 있고 물 아래에는 솥 다리 세 개가 달린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솥바위 반경 20리[8㎞] 안에서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역 주민들은 인근에서 국내 주요 기업 창업주들이 태어난 사실을 이 이야기와 연결 짓기도 한다.
2021년 시장가격 기준으로 의령군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9,749억 원으로, 경상남도 전체의 0.8%를 차지한다. 이는 도내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며, 유일하게 1조 원을 넘기지 못한 지역이기도 하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전체의 22.2%로 가장 높고, 공공 행정 · 국방 · 사회보장행정이 21%, 농림어업이 20.2%로 뒤를 잇는다. 특히 농림어업의 비중은 산청군, 합천군에 이어 도내에서 세 번째로 높다.
전체 경지면적은 55.74㎢이며, 이 중 논이 32.23㎢, 밭이 23.51㎢를 차지한다. 2022년 기준 농가 수는 3,621가구, 농가인구는 7,039명이다. 주요 재배 작물은 쌀 · 보리 · 밀 등의 곡류와 콩 · 감자 · 고구마 등이며, 참깨 같은 특용작물과 양파 · 오이 · 배추 등의 채소류도 많이 생산된다.
제조업 부문에서는 종사자 수 10인 이상의 사업체가 2021년 기준 40개이며, 의령읍에 가장 많은 18개 업체가 있고, 봉수면에 10개 업체가 있다. 반면 화정면, 용덕면, 낙서면, 궁류면, 유곡면에는 10인 이상 제조업체가 없으며, 칠곡면과 대의면, 정곡면에는 1개 업체씩만 분포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의령읍의 구룡농공단지 · 동동농공단지, 정곡면의 정곡농공단지, 부림면의 부림농공단지, 봉수면의 봉수농공단지 등 총 5개의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12만 1,758㎡에 이른다. 이들 농공단지에는 총 77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종사자는 1,184명, 총생산액은 5,900억 원이다. 또한 2019년부터는 부림면에 35만 2,094㎡ 규모의 부림일반산업단지가 조성 중으로, 향후 산업 및 농공단지 면적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2021년 기준 의령군의 도로 총연장은 379.2㎞이며, 포장률은 78.9%이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국도 20호선이 군의 중앙을 U자 형태로 가로지르며, 북동쪽으로는 창녕군, 북서쪽으로는 산청군과 연결된다. 국도 20호선과 이어지는 국도 33호선은 북쪽으로 합천군과 통한다. 이 밖에도 지방도 1011호선, 지방도 1041호선, 지방도 1013호선과 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 등이 주로 남북 방향으로 군을 통과하며, 군내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고속국도와 철도는 관내를 통과하지 않으며, 모두 남쪽의 함안군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의령읍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은 남해고속도로의 군북나들목이며, 가장 가까운 철도역은 경전선의 군북역이다. 한편, 2026년 개통을 목표로 건설 중인 함양울산고속도로가 군 북부의 봉수면 · 부림면 · 낙서면 일대를 지나며 ‘의령나들목’도 설치될 예정이어서, 향후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고속도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령군청에서는 2024년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의령9경을 선정해 홍보하고 있는데 탑바위, 봉황대,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정암루[솥바위], 벽계관광지, 충익사(忠翼祠), 자굴산, 수도사(修道寺)가 선정되어 있다.
의령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이 조직된 지역이라는 지역의 역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관련된 대표적인 관광지로 의령읍에 곽재우 장군과 17인의 휘하 장수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익사와 의병탑, 그리고 의병 관련 유물을 전시한 의병박물관이 있다. 의령읍의 남강 변에 있는 정암루(鼎岩樓) 역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잠복 끝에 왜적을 몰살시킨 승전지로 유명하다.
또한 유곡면에서는 2005년 곽재우 장군의 생가를 복원하고 인근을 곽재우장군문화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여기에 더해 군을 홍보하기 위한 마스코트로 곽재우 장군을 형상화한 ‘홍의장군’을 도입하였으며, 대표 축제의 명칭 역시 ‘의병제전’에서 2023년부터 ‘의령 홍의장군 축제’로 변경하여 일원화하였다.
최근에는 솥바위 반경 20리[8㎞] 안에서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솥바위 전설」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와 관정장학재단을 설립한 ‘관정 이종환 회장 생가’가 있다는 점 등을 연계하여 ‘대한민국 부자1번지 의령’이라는 콘셉트로 장소 마케팅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22년부터 가을 축제로 ‘의령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는데, 주요 행사로 부와 성공의 가치를 찾는 토크 콘서트 ‘리치톡톡’, 부자 주제관 운영, 부자 스타트업 마켓, 어린이 직업체험전, 의령 농특산물 축제 등을 진행한다. 또한 의령9경으로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를 선정하여 홍보하고 있으며, 의령읍과 정동면 등의 도로에 명예도로명으로 ‘호암이병철대로’, ‘삼성이건희대로’, ‘관정이종환대로’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관내 최고봉인 자굴산에는 2022년 숙박시설과 야영장, 어린이 물놀이 시설, 숲놀이터 등을 갖춘 자굴산자연휴양림이 개장해 숙박 · 체험형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의령읍 전통시장 일대를 중심으로, 쌀로 빚은 찰떡을 청미래덩굴잎[망개잎]으로 싼 의령 망개떡과 의령 메밀소바[메밀국수]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의령 망개떡은 2021년 지리적표시 농산물 제74호로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