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검은 칼과 칼집이 한 조로서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조금 짧은 목제 손잡이의 외면은 가죽끈으로 교차시켜 감았고 그 아래 검환(劍環)은 화형(花形)으로 투각장식(透刻裝飾)되었다. 검신(劍身)의 끝은 한쪽을 뾰족하게 마름한 원호형(圓弧形)이며, 칼등이 위로 조금 휜 형태이다.
칼집의 윗부분 일부가 부식되어 탈락되었고, 그 아래 간격을 두고 2개의 구리테〔銅製環〕를 돌렸는데, 그 상부에는 각각 여의두형(如意頭形)의 고리가 붙어 끈을 묶었던 것으로 보인다. 칼집 맨 하단부에는 반원형의 구리장식이 부착되었고, 그 앞뒷면은 화형문으로 선각장식(線刻裝飾)되었다.
벼루는 장방형의 오석연(烏石硯)으로, 타원형의 연당(硯堂)을 만들고 연지(硯池)는 초승달 모양으로 홈을 팠다. 연당 주위를 둥글게 돌아가며 1단으로 돌출시켜 연순(硯脣)을 만들고, 그 외면에는 빽빽하게 포도와 덩굴문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높낮이의 차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조각되어서 입체감이 한층 돋보인다.
거북형의 작은 연적 또한 오석으로서, 거북의 네 발은 굽혀 안쪽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귀두는 짧으며, 몸 뒤쪽 꼬리가 몸 안으로 말려 들어간 듯 표현되었다. 등의 거북무늬는 8각으로, 윗부분 두 곳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벼루와 연적은 곽재우가 22세 때 그의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것이라 전해진다.
마구는 곽재우가 타고 다니던 말안장이라 전해지며, 부식상태가 심하여 보존처리되었다. 사자철인은 철제로 만들어진 작은 인장으로, 윗부분 손잡이에 사자상이 조각되었다.
소형의 팔각대접 또한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것이라 전해지는데, 8각의 면마다 풍경과 화초무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넉 줄의 갓끈은 각각 26연(聯) ·72연 ·179연 ·46연으로 연결되었고, 금파(金波 : 금바탕에 파란을 올린 것)와 대나무, 호박 등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