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이며, 한반도 신석기 주민이 사용한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란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을 북방 유라시아의 캄케라믹(Kammkeramik)과 연결한 즐목문토기(櫛目文土器)를 한글로 표기한 것이며, 즐문토기(櫛文土器)와 함께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즐문토기, 즐목문토기, 유문토기(有文土器), 기하문토기(幾何文土器), 새김무늬토기 등으로도 불린다. 빗살무늬토기는 좁은 의미로 기면에 빗 같은 시문구로 찍거나 그어서 만든 점, 선, 원 등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한 토기만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압날문, 자돌문[자돌무늬], 압인문[누른무늬], 융기문, 지두문, 두립문, 적색토기 등을 포함한 신석기시대 모든 토기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를 총칭하는 의미로 즐문토기와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특정 시기와 지역[중서부 지역 등]에서 침선문을 주요 문양으로 시문한 토기에 한정하는 경우도 있다.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1916년 조사한 평안도와 황해도, 경기도 일대의 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을 보고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후지다 료사쿠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문화적 계통을 북방유라시아 신석기 토기와 연결시킨 북방계통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북방계통론은 8 · 15광복 이후 북한 및 남한 학계의 신석기 토기의 인식론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지만,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유적의 발굴과 연구로 부정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삼국시대 토기와 달리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어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 성형법[수날법, 권상법, 윤적법 등] 중 주로 도넛 모양의 점토띠를 쌓아 올린 윤적법을 사용하였다.
토기 소성(燒成)은 특별한 구조물 없이 야외의 노천요(露天窯)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평양 표대 유적과 김천 지좌리, 진주 평거동 유적에서 일정한 구조물을 갖춘 가마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보다 발전된 가마 시설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600~700℃ 정도의 온도에서 산화염 상태로 소성되는데, 이로 인해 대부분의 토기는 적갈색이나 갈색을 띤다.
빗살무늬토기는 명칭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기면에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면서 타문화권의 신석기 토기와 차별화되는 특징을 가진다. 문양은 시문기법과 함께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형식이 출현하고 성행, 소멸한다. 특히 토기의 시 · 공간적 특색은 신석기 사회의 성격과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시문기법을 기준으로 자돌(刺突)문, 압인(押引)문, 압날(押捺)문, 회전압날문, 침선(沈線)문, 조압(爪押)문, 지두(指頭)문, 융기(隆起)문 등으로 구분되지만, 시문 결과에 따라 구현된 문양 형태는 단사선문, 격자(格子)문, 집선(集線)문, 횡주(橫走) · 종주(縱走)어골문, 점열(点列)문, 유충(幼蟲)문, 파상(波狀)문, 능격(菱格)문, 조우(鳥羽)문, 타래문, 중호(重弧)문, 죽관(竹管)문, 두립(豆粒)문, 적색마연점열문 등이 있다.
이들 문양은 단독으로 혹은 상호 복합되면서 다채로운 문양대를 구성한다. 시문구는 보통 나무나 뼈를 가공하여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며, 드물지만 패각을 이용하는 것도 있다. 특히 죽변, 안도, 제주 삼화지구 유적에서 출토된 압날점열문토기는 톱니형의 도구를 회전시켜 문양을 시문하는 특별한 사례이다.
빗살무늬토기는 기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기종과 기형이 존재하며, 크게 보아 저장용, 자비용[조리용], 식기, 기타 의식[의례]용 특수용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기종에 따라서는 발형, 옹형, 호형, 완형, 접시형, 고배(高杯)형, 갈때기형, 귀때[注口]형, 시루형 토기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러한 토기류는 수렵과 채집, 농경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각종 동식물이나 어패류 등 식용 가능한 식료를 보관하거나 조리용으로 이용하였다.
빗살무늬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적 변이를 가졌지만, 신석기시대 전 기간을 통해 주류를 이루는 것은 발형토기이다. 발형토기는 저부가 납작한 평저 발형과 둥근 첨저 내지 환저 발형으로 양분된다.
평저토기는 초창기와 조기의 남부 지역과 서북 및 동북 지역에서 유행하며, 첨저 내지 환저 발형토기는 전기 영선동식과 중서부 지역 암사동식 토기 이래 신석기 말기까지 지속해서 사용된다. 발형토기는 음식을 끓이거나 보관하는 용도로, 목이 있는 호형토기는 저장용으로 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용도는 일정하지 않다.
오산리와 암사동 유적에서는 토기 바닥에 구멍이 뚫린 시루형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음식물을 찌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적색토기, 쇠뿔모양토기, 배모양토기, 사슴이나 멧돼지 등 동물 그림이 새겨진 선각(線刻)문토기는 의례나 의식용 등 특수한 목적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빗살무늬토기가 언제 출현하고 그 문화적 계통은 어느 지역과 연결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동아시아 초창기 토기문화의 양상을 고려할 때 적어도 서기전 1만 년 전후한 시기에는 빗살무늬토기가 출현하여 각 지역으로 확산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서기전 7500년 전후의 절대연대를 갖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유기질혼입토기[고산리식토기]이다.
한반도를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 서기전 15000년~서기전 10000년의 연대를 갖는 고식 토기가 분포하는 점을 참고하면 고산리식토기보다 빠른 새로운 토기가 발견될 것으로 예상된다.
빗살무늬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토기 기형과 문양의 형식[양식]적 특징을 중심으로 크게 압록강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 지역, 두만강 유역의 동북 지역, 대동강 및 한강 유역의 중서부 지역( 서울 암사동 유적), 강원 영동의 중동부 지역, 내륙과 남해안( 동삼동패총), 제주도를 포함하는 남부 지역의 지역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각자 지역색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교류 활동을 통해 타 지역의 토기 형식을 공유하면서 자체적인 변화 과정을 거친다.
빗살무늬토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지역적인 변화 양상에 불확실한 점도 많지만, 토기 변화상이 비교적 뚜렷한 남부 지역의 토기 연대와 형식[양식]적 특징이라는 큰 틀을 기준으로 볼 때 빗살무늬토기는 고산식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초창기 토기에서 융기문과 압날문토기를 표식으로 하는 조기, 자돌 · 압인[압날] · 구분(區分)문계 토기로 대표되는 전기, 침선문이 지표인 중기, 침선문의 퇴화, 무문양화, 이중구연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후 · 말기 토기로 변천해 간다.
초창기의 고산리식토기는 제주 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토기 중 가장 고식에 속한다. 제주고산리유적을 비롯하여 강정동, 삼화지구, 김녕리, 오등동 유적 등 제주도 전역에서 확인되며, 태토 속에 식물성 섬유질이 보강제로 혼입된, 무문양의 유기물 혼입 토기를 특징으로 한다.
고산리식토기에 무문양토기와 압날점열문토기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지만, 삼화지구 유적 등에서 출토되는 기하학적 압날점열문토기는 시기를 달리하는 형식일 가능성이 크다.
내륙 지역에서 초창기 토기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오진리식토기이다. 이 토기는 남부 내륙지역의 토기 형식 중에서 가장 이른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
조기 토기는 서북 및 동북 지역의 경우 지자(之字)문토기와 서포항유적 1, 2기층 압날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들 토기는 동북아시아 평저토기 계통에 속한다.
압록강 유역은 지자문토기문화권, 두만강 유역은 연해주의 보이스만토기문화권과 관련이 있으며, 남부 지역 토기문화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중동부 해안 지역의 오산리식토기와 남부의 죽변리식토기, 융기문토기[동삼동식토기]는 남한 지역의 대표적인 조기 토기이다. 지역적으로는 오산리유적 하층에서 출토된 적색압날문토기가 조기의 이른 시기에 속한다.
조기의 대표적인 융기문토기는 동남 해안 지역을 주 분포권으로 하며, 문양은 융기문만 단독으로 시문된 경우와 침선문, 점열문, 두립문 등 여러 문양이 함께 시문된 복합문 형태가 있다.
오산리식토기는 구연부를 중심으로 압날계 문양을 시문한 토기이며, 저부에 비해 구연부가 넓게 벌어지는 기형과 더불어 옹형토기에 파수가 부착된 것이 특징이다. 죽변리식토기는 기종 구성, 파수부 등에서 남해안과 중동부 지역의 조기 토기와 구별되는 남부 동해안 지역의 독자적인 토기이다.
전기 토기는 지역 간 편년적 병행 관계와 형식(양식)적인 차이는 있지만, 크게 압인, 압날문계와 침선문을 주요 문양으로 시문된다.
서북과 동북 지역의 양상은 다소 불투명하나 중서부 지역에서는 압날[압인]문과 침선문이 결합한 궁산문화와 암사동식 토기문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첨저 포탄형 기형에 구연과 동체, 저부에 각각 다른 문양을 시문하는 구분문계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중서부 지역의 구분문계 토기는 어느 시점에 남부와 중동부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지역 토기에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궁산, 지탑리1지구, 암사동, 운서동, 대능리 유적 등이 있다.
남부 지역의 전기 토기는 남해안의 자돌 · 압인문토기를 지표로 하는 영선동식토기가 대표적이다. 시문수법에 따라 자돌문, 압인문, 압날문, 조압문, 세침선문, 세단사선(細短斜線)문 토기로 구분되며, 다양한 문양과 기형은 다른 지역 빗살무늬토기와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여 준다.
중기 토기는 기본적으로 전기 토기의 형식을 계승하지만 침선문을 중심 문양대로 한다. 서북과 동북 지역은 평저토기 전통을 바탕으로 횡주어골문, 격자문, 타래문 등 침선문계 토기 문양이 성행한다.
중서부 지역은 곡선계의 점열타래문이나 중호문이 새로운 문양으로 추가되고 동일계 횡주어골문 토기가 등장한다. 능곡동, 신길동, 삼목동 유적 출토 토기가 대표적이다. 중동부 지역 토기는 기본적으로 한강 유역의 첨저(尖底)구분문계 빗살무늬토기와 동일한 특징을 보인다. 이 같은 중서부계 토기에 뒤이어 남해안계의 태선(太線)침선문토기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양상은 지경동과 초당동 유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남부 지역 토기는 수가리 1식토기로 대표되는데, 태선침선문을 주요 문양대로 하며, 구연과 동체부에 서로 다른 문양을 시문하는 구분문계 방식이 일반적이다. 중서부 지역의 구분문계 토기와 구분하여 남해안식 태선침선문토기로 불린다.
신석기시대 후 · 말기 토기는 지역적으로 편차가 크지만, 대체로 앞 시기에 비해 문양이 조잡하고 침선문이 퇴화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서북과 동북 지역의 양상은 다소 불확실하며, 전체적으로 침선 문양이 퇴화되고 무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신암리식토기와 서포항 4기층의 뇌문(雷문)토기와 같은 새로운 토기 형식이 등장하면서 지역색을 띤다. 중서부 지역의 후기 토기는 구분계 문양이 쇠퇴, 소멸하고 서해안식 동일계 토기와 금탄리2식토기가 성행한다.
말기가 되면 전체적으로 문양 구성이 단순하고 조잡화, 무문화하는 경향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중동부 지역도 마찬가지다. 남부 지역은 태선침선문이 단순화하고 문양 부위가 축소되는 수가리Ⅱ식 및 봉계리식토기가 후기 토기로 출현하고, 말기에는 이중구연토기[겹아가리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율리식토기가 유행한다.
율리식토기는 남부 지역의 신석기시대 마지막 단계에 출현한 토기이며, 전체적으로 문양이 조잡하고 단순화되는 경향은 다른 지역과 동일하다. 빗살무늬토기의 종말기 양상과 소멸 시기는 지역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만, 대체로 문양이 사라지고 조잡한 토기로 변화하면서 서기전 1500년 무렵 북방으로부터 유입된 청동기문화의 무문(無文)토기 영향으로 소멸한다.
토기는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으며, 토기의 발명과 사용은 가식 식물의 범위 확대와 새로운 조리법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인류의 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다양한 문양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는 타 문화권의 신석기 토기와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계통과 편년, 나아가 사회 변화상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