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동 패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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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삼동 패총
부산 동삼동 패총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생활유적.
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생활유적.
개설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은 영도 동남부 하리마을에 있으며, 한국해양대학교로 들어가는 갈림길의 동남쪽일대이다. 1930년 일본인 요코야마[橫山將三郎] · 오이카와[及川民次郎] 등에 의해 부분적으로 발굴되었다. 1963∼196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모어(Mohr, A.) 및 샘플(Sample, L.L.)에 의해 시굴이 행해졌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1969∼1971년까지 3년간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시했으며, 2004년과 2005년에 1차와 2차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내용

이 유적의 층위는 발굴자에 따라 3∼5개층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장 최근에 조사한 국립박물관의 발굴조사에는 표토 아래에 ①갈색 토층, ②흑색토층(貝殼層 · 흑색토층), ③흑색토층(貝殼層), ④흑색토층, ⑤갈색점토층(기반토층). ⑥礫石層 등 6개층이 있고, 이들 가운데 ②흑색토층(貝殼層 · 흑색토층), ③흑색토층(貝殼層), ④흑색토층에는 각각 시기를 달리한 선사시대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출토유물로는 토기 · 석기 · 골각기(骨角器) · 패기(貝器) 등이 비교적 풍부하게 있으며, 유구(遺構)는 노지(爐址)와 분묘로 보이는 적석시설이 발견되었다.

토기는 둥근바닥[圓底] · 납작바닥[平底]의 원시민무늬토기 · 세선돋을무늬토기[細線隆起文土器] · 압날문토기(押捺文土器),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겹아가리[二重口緣]의 민무늬토기, 태선돋을무늬토기[太線隆起文土器], 변형빗살무늬토기 등 특징적인 것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 중 둥근바닥 및 납작바닥의 민무늬토기 · 세선돋을무늬토기 · 압날문토기는 가장 이른 시기인 신석기시대 전기에 편년되는 토기이다.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는 뾰족바닥[尖底] 또는 둥근바닥에 홑아가리를 가진 V자형 또는 U자형의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이다. 이 토기의 아가리부분에는 평행사단선문(平行斜短線文)이 있고, 복부에는 굵은 침선(針線)을 한 줄씩 그은 태선횡주생선뼈무늬[太線橫走魚骨文]가 있어 이 유적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토기 중의 하나이다. 이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의 시기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편년되며, 이 시기 토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변형빗살무늬토기는 아가리 주위에만 2, 3열 정도의 조잡한 선문(線文)을 두른 것이다.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와 비교해볼 때, 시문(施文)한 부위도 좁아지고 위치도 아가리 주위에만 한정해 놓은 것 등 문양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이 변형빗살무늬토기, 겹아가리의 민무늬토기, 태선돋을무늬토기 등은 모두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동삼동 후기 신석기문화의 특징적인 토기가 되고 있다.

석기는 규질암제(硅質岩製) 반간돌도끼[半磨製石斧] · 삼각형 석설(三角形石銛), 역석(礫石)의 박편(剝片)으로 만든 스크레이퍼(scraper), 간삼각형돌살촉, 흑요석제(黑曜石製) 석거(石鋸) · 인기(刃器) 등이 출토되었다. 시기적으로는 신석기시대 후기가 되면 흑요석제 석기가 성행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골각기는 골침 · 골촉 · 조침(釣針) · 시문구(施文具) 등이 출토되었다. 패기로는 패천(貝釧) · 패도(貝刀) · 패면(貝面) 등이 있다.

이 유적의 연대는 앞서 토기의 특징에 따라 그 시기의 대강을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거의 전기간에 걸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 최하층은 서기전 3230년, 서기전 2995년, 서기전 2930년, 상층은 서기전 1450년이라는 절대연대를 얻은 바 있다. 그리고 1999년 부산박물관 조사에서는 BC 6000년~BC 20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패총인들의 생활상은 그들이 남긴 인공유물 외에도 각종의 자연유물에서도 나타난다. 이 동삼동패총에서도 생활상을 반영하는 각종의 자연유물이 출토되었다. 조개류 31종, 도미 등 각종 생선뼈, 고래 · 사슴 등의 짐승뼈가 그것이다.

고래뼈의 존재는 실제로 이 동삼동패총인들이 원양에서 포경활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해안에 들어온 고래를 포획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큰 굴껍질은 깊은 바다에서의 잠수활동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의 승문토기(繩文土器)는 바다를 통한 생활이 주생업인 어로활동 외에 일본과의 교역도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승문토기는 바다를 통한 원격지에로의 교역 내지는 고대의 문화교류활동 등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삼동 조개무지유적은 여러 차례의 조사를 거쳐 성격이 규명된 신석기시대유적이다. 한반도 남해안 일대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로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또 여러 문화층이 겹쳐 있음이 밝혀졌으며, 우리나라 남해안지방의 신석기시대 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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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신동향』(이상균, 2005)
『한반도 남부지역 즐문토기 연구』(하인수, 2005)
『동삼동 패총』I(국립중앙박물관, 2005)
『동삼동 패총』Ⅱ(국립중앙박물관, 2004)
『동삼동 패총』Ⅳ(국립중앙박물관, 2002)
『한국고고학개설』(김원룡, 일지사, 1986)
「한국 신석기시대 묘제의 검토」(유태용, 『백산학보』8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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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하문토기문화의 연구」(김정학, 『백산학보』4, 1968)
『韓國の考古學』(金廷鶴 編, 河出書房新社,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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