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군사훈련을 하였다는 이 마을 앞들을 ‘진터’, 그 곳 논배미를 ‘진배미’라 부르고 있다.
1597년(선조 30) 7월 이순신은 합천군 초계에 주둔하고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었다. 그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7월 18일 원균(元均)의 수군이 대패하였다는 급보를 받고 도원수는 이순신에게 직접 현지사정을 파악한 다음 대책을 세우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군관 수 명을 대동하고 남해안을 돌아 23일 이 곳(당시의 지명은 雲谷)에 도착하여 손경례(孫景禮)의 집에 묵으면서 군사훈련을 하며 도원수를 기다렸다.
여기에서 이순신은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 교서를 받고, 즉시 수군 재건을 위하여 전라우수영으로 출발하였다.
원계리는 현재 하동 · 사천 · 진양 · 산청 등 4군의 접경지점이며, 임진왜란 당시는 영남과 호남 및 남해안 지방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불우하였던 시절 세 차례 이곳에 묵었으며, 수군 재건의 첫걸음도 여기에서 출발하였다. 1975년 지방유지들이 여기에 이충무공군사훈련유적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