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晋州) 지방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교방 계통의 무용극. 한량이란 양반 출신으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 또는 노상 놀고먹는 사람을 이른다.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으로 원래 이 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南寺黨牌) 중 무동들에 의해 놀았던 것인데 그 후 조선 말까지 계속해서 연행되었으나 남사당패가 분산되면서 1910년 이후 이 춤은 어른의 무용으로 기방에서 주로 추어지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각 지역마다 각기 이 한량무와 유사한 춤들이 행하여졌으나 거의 소멸되고 진주에서만 1979년도에 재연되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진주 한량무는 양산권번의 춤 선생이었던 김농주(金農宙)에게 사사받은 김덕명(金德明)에 의하여 현재 진주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진주는 옛부터 진주 감영의 관아에 교방에서 많이 추어졌다는 기록이 고종(高宗)때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敎方歌謠)』, 『진주의암별제지(晋州義岩別祭志)』 등에서 알 수 있으며 이 춤의 유래로는 교방가요의 승무(僧舞)의 내용과 구성이 지금의 한량무와 같으므로 승무의 유래설에 의한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을 소재로 삼은 춤이라는 설, 민속가면의 소무(小巫)와 노장(老長)의 대무(對舞), 포도대장(捕盜大將)과 소무의 애정장면과도 관련되었다는 설 등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있다.
이 춤은 부패한 양반과 파계승을 풍자한 무용극으로 7인 배역이 등장해서 얘기를 엮어가는 형태이다. 구성과 배역은 한량을 비롯해서 승려(僧侶) · 상좌(上座) · 별감(別監) · 색시(혹은 기생) · 주모 · 마당쇠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한량이 한 기생을 데리고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승려가 나타나 이 광경을 보고 기생에게 반하여 멋진 춤으로 기생의 환심을 끌자 기생은 한량을 배신하고 승려에게 간다는, 남녀의 애정관계를 그린 춤이다.
각 배역마다의 춤사위는 개성미가 뛰어나고 소박미가 있으며 해학적 요소와 무언극적인 요소가 합해진 시대상을 풍자한 춤으로 토속미가 넘치는 점이 돋보이는 춤이다. 이 춤의 특징은 궁중계의 춤도 아니고 또 순수한 민속춤도 아닌 교방계통의 무용극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복식 및 무구는 한량은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쓴다. 색시는 궁중여기의 복식으로 몽두리에 색 한삼을 끼고 족도리를 쓴다. 승려는 진회색 장삼에 홍가사를 입고 머리에는 방갓을 쓰고 지팡이를 든다. 상좌 · 마당쇠는 흰색 바지 저고리를 입으며 주모는 보통 흰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는다. 별감은 사령복에 전립을 쓴다.
춤 장단은 굿거리 장단-염불장단-타령(허튼타령)장단이 쓰인다.
1979년에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이 춤을 전승하고 있는 기능 보유자는 한량의 김덕명, 승려의 성계옥(成季玉), 상좌의 최금순(崔今順), 별감의 서정남(徐廷南), 색시의 정행금(鄭幸今), 주모의 김연이(金蓮伊), 마당쇠의 정필순(鄭畢順), 악사의 김정애(金正愛)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