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

구비문학
개념
전통 사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전되어 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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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민요는 전통 사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전되어 온 노래다. 향토민요·통속민요·신민요로 분류된다. 먼저, 향토민요는 노동요·의식요·유희요로 구분된다. 통속민요는 향토민요와 비교해 음역이 넓어지고 시김새가 추가되었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 향토민요의 특성이 있다. 신민요는 기존의 향토민요나 통속민요에서 여러 요소를 빌려서 작사가 및 작곡가에 의해 창작되었다.

정의
전통 사회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구전되어 온 노래.
민요(民謠)의 역사

민요와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14세기 인물인 박효수(朴孝修)의 시 작품 중에 “들바람은 때로 삽앙가(揷秧歌)를 보낸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통해 고려 말에 「모심는 소리」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강희맹(姜希孟)은 농서(農書) 『금양잡록』 소재 「농구 14장(農謳十四章)」에서 당시 「논매는 소리」의 ‘만조(慢調)’와 ‘촉조(促調)’, 해당 후렴을 각각 제시하고, 끝에 “다농다리호지리다리(多農多利乎地利多利)”라는 노랫말을 한다고 했다. 이미, 조선 전기의 「논매는 소리」가 오늘과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인조의 왕릉을 조성할 때 승군(僧軍)들이 묘를 다지며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을 통해 조선 전기 장례 의식요(葬禮儀式謠)의 존재도 확인된다.

조선 후기에는 수리 시설의 미비로 그동안 억제했던 이앙법(移秧法)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모심는 소리」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확산하였다. 기존 「논매는 소리」에 「모심는 소리」가 보완되어 논농사요가 한층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다. 영조 때 인물인 이사질(李思質)이 「모심는 소리」로 부른 「상사소리」를 「어난난곡(於難難曲)」이라는 한시(漢詩)로 남겨 놓았다.

민요(民謠)의 분류

민요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구전되어 온 노래이다. 현재 민요는 향토민요(鄕土民謠) · 통속민요(通俗民謠) · 신민요(新民謠)로 분류한다.

먼저, 향토민요는 노동요(勞動謠), 의식요(儀式謠), 유희요(遊戲謠)로 구분된다.

노동요는 생산 활동 또는 노동 내용에 따라 농사를 지을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農業勞動謠), 바닷가 어업과 관련된 어업노동요(漁業勞動謠),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나물을 캘 때, 혹은 들에서 풀을 벨 때 부르는 벌채노동요(伐採勞動謠), 부녀자들이 베 · 모시 · 명주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과정에서 부르는 길쌈노동요, 여성들이 맷돌을 돌리거나 방아를 찧어 곡식을 빻을 때 부르는 제분노동요(製粉勞動謠),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부르는 잡역노동요(雜役勞動謠)로 나뉜다.

농업노동요는 농사일의 각 과정에 따른 소리로, 여성들 중심의 밭농사노래와 남성들이 주로 부르는 논농사노래로 나뉜다. 「밭농사소리」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소리는 「밭매는 소리」로, 노동 강도 및 시간으로 인해 여성 가창자들의 생각이나 느낌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논농사노래는 각각의 농사일과 밀접하다. 논을 갈 때 쟁기를 끌고 있는 소를 부리는 「논 가는 소리」, 논에 모를 심기 좋게 논바닥의 땅을 고르면서 부르는 「논 고르는 소리」, 소를 이용하여 써레질할 때 소를 부리기 위해 부르는 「논 삶는 소리」, 모판에 있는 모를 뽑아서 손으로 한 묶음씩 만들면서 부르는 「모 찌는 소리」, 못자리에서 뽑아온 모를 논에 심으며 부르는 「모심는 소리」, 잡초를 호미로 매거나 손으로 뜯으면서 부르는 「논 매는 소리」, 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거나 묶으면서 부르는 「벼 베는 소리」, 볏단을 홀태에 훑거나 매통에 쳐서 낟알을 떨어내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벼 떠는 소리」, 키나 돗자리로 바람을 일으켜 낟알에 섞인 검불이나 먼지를 날려 보내면서 부르는 「검불 날리는 소리」 등이 있다.

논농사의 하이라이트는 논매기이다. 논은 마을에 따라 2~3회 매는데, 모심기를 하고 20여 일이 지난 후 초벌을 매고, 15일 전후가 지난 뒤 두벌을 맨다. 상황에 따라 10일 전후로 세벌을 매는 곳도 있다. 토질과 환경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초벌매기는 보통 호미로 매고, 두벌매기는 곳에 따라 호미를 사용하기도 하거나 손으로 훔치기도 한다.

어업노동요는 사람들이 어업 활동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로, 고기잡이노래와 해물채취요로 나뉜다. 이 소리들은 대부분 선후창(先後唱)으로 부르고, 주고받는 호흡 또한 매우 짧은 것이 많다. 이는 고기나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한 작업이 대부분 여럿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힘을 한꺼번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고기잡이노래는 앞서 살핀 논농사노래와 마찬가지로 작업 전 과정에 걸쳐 구연(口演)된다. 출항하기 전 부르는 「그물 싣는 소리」 · 「닻 감는 소리」, 어장으로 나가며 부르는 「노 젓는 소리」, 어장에 도착하여 부르는 「그물 내리는 소리」, 물고기를 뱃전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부르는 「그물 당기는 소리」 및 「고기 푸는 소리」, 그물에 남아 있는 고기를 털어내며 부르는 「고기 터는 노래」, 만선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귀항하는 소리」 등이다. 위 소리들 중 「고기 낚는 소리」는 제주도의 어부들이 야간에 연근해(沿近海)로 배를 타고 나가서 손줄낚시로 갈치를 낚으면서 부르는 노래로, 전승(傳承) 지역은 제주도의 제주시 건입동 · 조천읍 신촌리,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 온평리 · 삼달2리 등이다.

해물채취요는 해녀를 비롯한 여성들이 부르는 「노 젓는 소리」 · 「미역 싣는 소리」 · 「굴 캐러 가는 소리」 등이 있다. 이 소리들 중 「굴 캐러 가는 소리」는 바닷가 아낙네들이 굴을 채취하러 가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창 방식은 앞소리꾼이 앞소리를 주면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 방식이 일반적이다.

벌채노동요는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자르는 등의 벌목 과정에서 부르는 벌목노동요와 풀을 베거나 썰고, 나물을 캐는 일을 할 때 부르는 채취노동요로 나뉜다. 벌목노동요는 두 사람 이상이 낫 또는 톱으로 나무를 벨 때 부르는 「나무 베는 소리」, 도끼로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는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나무 찍는 소리」, 여러 사람이 나무를 쇠꼬챙이로 찍거나 줄로 묶어 산 아래쪽으로 끌어내리면서 부르는 「나무 내리는 소리」, 산에서 나무를 한 다음에 나무를 산 아래로 끌어 내리며 부르는 「나무 끄는 소리」, 여럿이 힘을 합쳐 나무를 운반할 때 부르는 「목도소리」가 있다.

이 소리들은 대부분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의 진행 상황에 맞추어 선소리꾼이 소리를 메긴다. 2음보 1행의 단음형 노랫말이 주로 사용된다. 예컨대, 「목도소리」는 베어낸 나무에 여럿이 함께 나르며 부르는데, 여럿이 함께 발을 맞춰야 하는 관계로, “허영차” · “여영차”와 같이 짧은 구령을 주고받는다.

채취노동요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며 부르는 「나무하는 소리」, 나무를 쪼개며 부르는 「나무 쪼개는 소리」, 나무나 풀을 쌍작두에 넣으면서 부르는 「풀 써는 소리」, 늦가을에 한 해 동안 산간에 있는 꼴밭에서 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을 베면서 부르는 「꼴 베는 소리」, 봄철에 여성들이 산이나 들에서 나물을 캐며 부르는 「나물 캐는 소리」, 잣을 따면서 부르는 「잣 따는 소리」 등이 있다. 채취노동요 가운데 가장 넓게 분포하는 소리는 「나무하는 소리」이다. 지역별로 보면 경상도 지역 「어사용」, 전라도 지역 「산야」, 강원도 지역 「아라리」, 충청도 지역 「어사용」 계열 및 「아리랑」 계열이 있다.

길쌈노동요는 부녀자들이 베 · 모시 · 명주(明紬)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과정에서 부른다. 목화나 고치 등 길쌈에 필요한 재료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르는 「목화 따는 노래」 · 「뽕 따는 노래」, 목화송이에서 씨를 분리시키고 면섬유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부르는 「씨 앗는 노래」, 솜 · 고치 및 기타 재료를 활용하여 실을 뽑아 내는 과정에서 부르는 「물레노래」, 삼 째기 한 삼을 전지에 걸어놓고 한 올씩 빼내어 삼 뿌리 부분과 끝부분을 이어가며 부르는 「삼 삼는 노래」, 솔에 좁쌀 풀을 묻혀 도투마리와 끄싱개에 고정한 후 풀을 묻히면서 부르는 「베 매기 노래」, 베틀에 실을 걸고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 짜는 노래」 등이 있다.

이 소리들 중 베 짜는 노래는 베틀 구조 각각의 명칭과 관련된 비유, 베를 짜는 현재 상황 및 베 짜는 이에 대한 묘사 등이 노래된다. 특히, 베틀을 차린 후 앞다리부터 시작하여 북 · 바디집 · 눈썹노리 · 잉앗대 · 눌림대 · 용두머리 · 도투마리 등 베틀 구조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비유가 특징이다.

제분노동요는 여성들이 맷돌을 돌리거나 방아를 찧어 곡식을 빻을 때 부르는 소리이다. 맷돌질하면서 부르는 「맷돌질하는 소리」, 두 사람 이상이 공이를 가지고 절구통에 들어 있는 곡식을 빻을 때 부르는 「절구 방아 찧는 소리」, 디딜방아의 발판을 밟아 곡식을 빻을 때 부르는 「디딜방아 찧는 소리」, 말이나 소를 이용하여 방앗돌을 움직일 때 부르는 「연자방아 찧는 소리」 등이 있다. 이 소리들 중 맷돌질하는 소리는 한두 명이 일할 때는 독창(獨唱)으로, 인원이 많을 때는 교환창(交換唱)으로 부른다. 개인적 경험을 반영한 신세 한탄 관련 사설(辭說)이 길게 노래되는 것이 특징이다.

잡역노동요 안에는 흙 뜨기 · 땅 다지기 · 말뚝 박기 · 달구질 및 상량(上樑) 얹기 등 토목 공사 과정에서 부르는 토목노동요(土木勞動謠), 여성들이 집안일을 하면서 부르는 가사노동요(家事勞動謠),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생활필수품이나 농기구 등을 만들면서 부르는 수공노동요(手工勞動謠), 손님을 불러 모으는 장사 행위에서 주로 불리는 상업노동요(商業勞動謠)가 포함된다.

흙 뜨기 · 땅 다지기 · 말뚝 박기 · 달구질 및 상량 얹기 등 토목 공사 과정에서 부르는 토목노동요에는 3인 혹은 5인 1조로 가래로 흙을 뜨면서 부르는 「흙 뜨기 노래」, 여러 명이 지경석 · 지경목 등을 이용하여 땅을 다지며 부르는 「땅 다지는 소리」, 다리를 놓는 작업에서 불리며 힘을 일제히 내기 위해 부르는 「다리 놓기 노래」, 집을 새로 지을 때 기둥 위에 마룻대를 올리면서 부르는 「상량 얹는 노래」가 있다.

토목노동요는 일정한 리듬에 동작을 맞추어 동작을 통일하고, 흥을 내어 일하기 위해서 부른다. 힘든 일을 하는데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며, 노동 권유 · 현재 상황 묘사 등 일과 관련된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예컨대, 「다리 놓기 노래」는 선후창 방식으로 힘을 일제히 내기 위한 여음(餘音) 중심으로 노래된다.

여성들이 집안일을 하면서 부르는 가사노동요는 살림요와 양육요로 나뉜다. 살림요에는 「바느질하는 소리」 · 「다듬이질 소리」 · 「빨래하는 소리」가 있다. 양육요에는 「아기 어르는 소리」 · 「아기 재우는 소리」 · 「배 쓸어주는 소리」가 있다. 옷을 만들고 손질하는 작업은 밤에 이루어지고, 비교적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잠을 쫓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소리를 많이 불렀다.

손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생활필수품이나 농기구 등을 만들면서 부르는 수공노동요에는 주철(鑄鐵)을 녹여 무쇠솥이나 보습 등을 만드는 주물(鑄物)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풀무질하는 소리」, 「흙덩이 바수는 소리」, 말총이나 대오리를 이용하여 망건(網巾)이나 탕건(宕巾) · 양태 · 갓모자 등을 만들면서 부르는 「망건 짜는 소리」 · 「탕건 짜는 소리」 · 「양태 겯는 소리」, 초가지붕을 얽어맬 새끼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래, 「톱질하는 소리」, 「집줄 놓는 소리」가 있다.

상업노동요는 「떡 파는 소리」 · 「생선 파는 소리」 등 손님을 불러 모으는 장사 행위에서 주로 불리는 호객요(呼客謠), 「고기 세는 소리」 · 「말질하는 소리」 등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셈할 때 부르는 산술요(算術謠)가 있다.

의식요는 구연 목적 및 상황에 따라 한 해 중 주요 절기(節氣)나 명절에 행하는 의식에서 부르는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 사람이 죽어 장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 부르는 장례의식요, 불교(佛敎) · 무속(巫俗) · 속신(俗信) 등의 의례(儀禮) 과정에서 부르는 신앙의식요(信仰儀式謠)로 나뉜다.

세시의식요는 신(神)을 즐겁게 하고, 기원하는 내용이 중심 내용이다. 정초(正初) 지신밟기 때 대문 앞 · 부엌 · 대청마루 · 창고 · 화장실 · 우물 등 집안의 여러 곳을 돌며 농악대(農樂隊) 상쇠가 부르는 「고사(告祀)소리」, 배를 진수(進水)하거나 첫 출어(出漁)에 나설 때 혹은 풍어(豐漁)를 기원할 때 부르는 「배고사 지내는 소리」, 바다로 일을 나간 어부의 부인들이 용왕을 향해 선원들의 안전을 기원을 하면서 부르는 「용왕제(龍王祭)소리」, 굴 · 조개 · 미역 등 해산물을 많이 채취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부르는 「굴 부르는 소리」 등이 있다.

장례의식요는 사람이 죽어 장례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 부른다. 출상(出喪)하기 전날 밤 상여꾼들이 빈 상여(喪輿)를 메고 행상(行喪) 연습 겸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부르는 「장례놀이소리」, 상여를 장지(葬地)로 운반할 때 부르는 「상여소리」, 장지에 도착하여 시신을 매장하는 과정에서 광중(壙中)을 파거나 분묘(墳墓)에 흙을 덮을 때 부르는 「가래질소리」, 광중에 흙을 덮고 다질 때 부르는 「묘 다지는 소리」가 있다.

신앙의식요는 불교 및 무속, 그리고 속신 관련 의식요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전국적으로 조사된 노래는 속신의식요로, 집안에서 흙 · 쇠 · 나무 등을 잘못 다룸으로써 야기되는 각종의 탈을 푸는 과정에서 하는 「동토잡이노래」, 모질고 사나운 운수가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물리치기 위해 부르는 「액막이 하는 노래」, 눈에 들어간 티를 꺼내기 위해 부르는 「눈티 없애는 노래」, 살(煞)이 사람 몸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아프게 한 경우 이를 낫게 하려고 부르는 「살 내리는 소리」, 학질(瘧疾)을 떼어내기 위해 부르는 「학질 떼는 소리」, 몸에 든 객귀(客鬼)를 쫓아내기 위해 부르는 「객귀 물리는 소리」 등이 있다.

유희요는 놀이의 주기성(週期性)에 따라 세시풍속(歲時風俗) 때 세시유희요(歲時遊戱謠)와 일상적으로 부르는 일상유희요(日常遊戱謠)로 분류한다. 일상유희요는 놀이 도구를 사용하여 놀며 부르는 도구유희요, 무용이나 몸짓이 위주의 놀이에서 부르는 무용유희요(舞踊遊戲謠), 그리고 사설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아 진행되는 언어유희요(言語遊戲謠)로 나눌 수 있다.

명절과 같이 특정한 날에 놀이와 함께 부르는 세시유희요는 「그네 뛰는 소리」 · 「널뛰는 소리」 · 「윷놀이하는 소리」 · 「줄다리기하는 소리」 · 「고싸움 하는 노래」 등이 있다. 예컨대, 「그네 뛰는 소리」는 5월 단오(端午) 때 여자들이 그네를 뛰면서 부르는 노래로, 외그네 뛰기를 할 때는 혼자서 부르고, 둘이 쌍그네 뛰기를 할 때는 같이 노래를 부른다. 남녀 간의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일상유희요 중 도구를 사용하여 부르는 노래는 「장기노래」 · 「화투노래」 · 「투전노래」, 여럿이 춤추며 하는 노래는 「쾌지나칭칭나네」 · 「강강술래소리」 · 「월월이청청소리」 · 「놋다리밟기소리」 · 「대문노래」 · 「돈돌날이」, 한글 · 숫자 · 성명 · 지명 등의 풀이가 일정한 방식에 따라 나열되는 「한글풀이노래」 · 「숫자풀이노래」 · 「천자풀이노래」 · 「성명풀이노래」 · 「요일풀이노래」 · 「지명풀이노래」 · 「간지풀이노래」 등이 있다.

다음으로 통속민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생활상의 기능과 더불어 전승되던 향토민요가 본고장을 떠나 널리 전파되고 고정된 기능으로부터 이탈하여, 노래 자체로 불리는 데에는 전문적인 놀이패 의 역할이 컸다. 직업적인 소리꾼에 의해 불리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한 노래가 통속민요이다. 통속민요는 대부분 음절 형식으로 되어 있고, 메기는소리와 받는소리로 되어 있다. 향토민요와 비교해 음역이 넓어지고 [시김새가 추가되었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 본래 민요의 특성이 있다. 창자가 전문 소리꾼이라는 면에서 향토민요와 구분되나, 소리의 원천이 향토민요에 있고 그 향유층이 기존의 향토민요 향유층과 큰 차이가 없다. 통속민요는 1910년대 이후 소리판의 변화, 유성기(留聲機) 음반의 등장으로 꾸준히 유통되었다.

통속민요 가운데에는 기존의 민요를 각색한 예도 있고 민요풍으로 창작한 예도 있다. 초기의 통속민요는 편곡된 노래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작곡가나 작사가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지만, 후대로 갈수록 창작된 곡이 늘어나면서 작곡가나 작사가가 알려진 곡들이 생겨났다. 편곡이나 창작의 경우 작사 · 작곡자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점, 서양식 악곡 및 연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민요와 구분된다.

경기민요(京畿民謠)는 가창 형태에 따라 앉아서 부르는 소리와 서서 부르는 소리로 나뉜다. 「노랫가락」 · 「오봉산타령(五峯山打令)」 · 「양류가(楊柳歌)」 등이 좌창(坐唱)에 속하고 「양산도(陽山道)」 · 「방아타령」 · 「경복궁타령(景福宮打令)」 등이 입창(立唱)에 속한다. 좌창은 경기 긴잡가, 입창은 경기 산타령과 같은 노래와 서로 통한다. 경기민요는 대개 5음 음계의 평조(平調) 선법(旋法)으로 노래된다. 장 3도와 단 3도의 음 진행이 많고, 5음이 골고루 쓰이면서 주요 음의 선율 골격은 완전4도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장단은 굿거리장단 · 타령장단(打令長短) · 세마치장단이 많이 쓰인다. 창법에서도 급격히 떨거나 꺾거나 흘러내리는 음이 별로 많이 쓰이지 않고 있어, 명쾌한 맛을 풍기며 부드럽고 유창하면서 서정적이다. 「창부타령」 · 「방아타령」 · 「긴아리랑」 · 「구조아리랑」 · 「양산도」 · 「태평가(太平歌)」 · 「청춘가(靑春歌)」 · 「담바귀타령」 · 「노랫가락」 · 「도라지타령」 · 「늴리리야」 · 「금강산타령」 · 「매화타령」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서도민요(西道民謠)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민요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황해도 지방의 민요는 비교적 밝고 서정적이며 흥겹고, 평안도 지방의 민요는 애끓는 듯한 처절한 분위기가 강하다. 서도민요는 미묘한 시김새를 사용하여 끙끙 앓는 듯하면서 흐느끼는 듯하고, 높이 질러냈다가 밑으로 슬슬 내려오는 하행 선율 진행(旋律進行)이 많다. 그래서 기악 반주와 함께 부르기보다 주로 장구 하나만으로 반주하는 경우가 많다.

황해도 지방의 「산염불(山念佛)」 · 「난봉가」 · 「몽금포타령(夢金浦打令)」 · 「배꽃타령」 등과 평안도 지방의 「수심가(愁心歌)」 · 「긴아리」 · 「영변가(寧邊歌)」 등은 사설이 길고 후렴구가 없어서 잡가(雜歌)와 비슷하다. 또한 「배따라기」처럼 장단이 없거나 일정하지 않게 불규칙한 장단으로 불리는 노래들도 있다. 짧은 사설과 규칙적이고 고정된 장단으로 불리는 노래들은 보통 도드리장단이 쓰인다.

강원도민요(江原道民謠)의 가락은 5음 음계로 구성된 메나리조이다. 강원도민요에서 많이 쓰이는 장단은 3박자 계통의 중중모리장단 · 중모리장단이지만 자유리듬으로 연주되는 민요도 많다. 강원도에는 「정선아리랑」 · 「한오백년」 · 「강원도아리랑」 등이 있다.

경상도에는 「쾌지나칭칭나네」 · 「성주풀이」 · 「옹헤야」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리들 중 「성주풀이」는 조선 후기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창우집단(倡優集團)의 광대고사 중 뒷고사소리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남도민요(南道民謠)의 창법은 굵고 극적(劇的)인 소리를 목을 누르며 꺾어서 낸다. 이 같은 독특함으로 인해 남도민요는 다른 지방의 민요와 쉽게 구별된다. 선법은 대부분 육자배기토리이다. 서양음악의 계명 창법에 의하면 ‘미 · 라 · 시 · 도 · 레’의 구성음으로 이루어졌으며, ‘미’는 굵게 떨고, ‘시’는 꺾어내고, ‘라’는 떨지 않고 안정된 음으로 내며, 하행할 때는 ‘솔’ 음도 거치며 끝날 때는 ‘미’ 혹은 ‘라’로 마치게 되는 선율의 토리이다. 「육자배기」 · 「진도아리랑」 · 「흥타령」 · 「개고리타령」 · 「새타령」 · 「농부가(農夫歌)」가 유명하다.

제주민요(濟州民謠) 중 창민요(唱民謠)는 경기도와 서도 쪽 민요에 가까운 세마치장단이 많다. 「오돌또기」 · 「이야홍타령」 · 「봉지가」 · 「산천초목(山川草木)」 · 「용천검(龍泉劍)」 · 「서우젯소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신민요는 넓은 의미의 신민요와 좁은 의미의 신민요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신민요는 근대에 새롭게 등장한 민요를 범박하게 지칭한다. 좁은 의미의 신민요는 일제강점기, 특히 1930년대에 트로트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던 민요풍의 대중가요(大衆歌謠)를 의미한다.

신민요가 대중음악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34년 「꽃을 잡고」 · 「처녀총각」 · 「노들강변」 등 연속적인 음반 흥행에 따른 것이었다. 1930년대 콜럼비아 · 빅타 · 오케 등을 필두로 유성기 음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전통민요 어법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당시 트로트의 반주 및 편곡 양식을 계승한 일종의 퓨전 가요가 만들어졌다. 이때의 신민요는 특정 작사자와 작곡자를 가지고 있었고, 가수에 의해 노래로 불리게 할 요량으로 창작되었다. 작곡가들은 대부분 대중가요를 작곡했던 이들로, 편곡 역시 전통악기와 양악기가 혼합되거나 양악기로만 이루어진 편성이 많았다. 1930년대 초반부터 민요풍으로 창작된 가요들이 라디오 방송 및 유성기 음반을 통해 확산되면서 신민요가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급부상하였다. 신민요는 1930년대에 트로트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부용 · 왕수복 · 선우일선(鮮于一扇) · 이화자(李花子) · 이은파 · 김옥진 등 기생 출신의 신민요 가수들이 활약하였다.

신민요는 기존의 향토민요나 통속민요의 여러 요소를 빌려서 창작되었다. 먼저, 음악의 측면에서는 많은 신민요가 악곡에서 경기민요의 선율 양식을 빌리거나 리듬에서 전통 장단을 수용하였다. 음계나 가창에서 경기민요나 서도민요에 능통했던 기생 가수들은 시김새를 살렸다. 반주에서는 전통 악기의 선율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경토리에 기반을 둔 선율이 굿거리 · 자진모리장단의 리듬 반주로 창작된 스타일이 다수를 차지했다. 그 가운데 메나리토리 · 육자배기토리 및 일본의 요나누끼 장단 음계로 된 소수의 곡들도 유행하였다. 이 때문에 신민요는 당시 트로트와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조선적 내음새’를 풍김으로써 큰 인기를 누렸다. 사설의 측면에서 보면, 기존 민요의 제목과 가사 또는 후렴을 차용하였다. 신민요의 가사는 크게 결핍 의식과 충족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 중 충족 의식은 다시 ‘국토 예찬’ · ‘봄맞이’ · ‘풍년맞이’를 드러낸 노래로 나눌 수 있다. 광복 이후에 「노들강변」 · 「태평가」 등 경토리적 특성이 강한 신민요 노래들이 전통민요 창자들에게 수용되어 전통민요의 하나로 흡수되기도 했다. 동시에 대중가요의 하나로 자리 잡아 김세레나 · 김부자 등 대중가수로서 활동하는 신민요 가수들에 의해 가창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등학 외, 『한국구비문학의 이해』(월인, 2002)
장유정, 「신민요와 대중가요」(『근대의 노래와 아리랑』, 소명출판, 2009)
『한국민속문학사전』 민요(국립민속박물관, 2013)

논문

김혜정, 「민요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음악학적 논의」(『한국민요학』 7, 한국민요학회, 1999)
이소영,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혼종성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7)
최은숙, 「한국 근대민요에 대한 연구 경향과 쟁점」(『한국민요학』 27, 한국민요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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