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번에서 전통음악 교육을 받은 뒤 1934년에 신민요 가수로 데뷔하여 1940년대 초까지 음반과 무대를 통해 활동했다. 「조선팔경가(일명 대한팔경)」, 「태평연(일명 태평가)」, 「꽃을 잡고」, 「능수버들」 등 많은 인기곡을 발표했고, 온화한 미모로 기생으로서도 인기가 높았다.
1918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에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고, 평양 또는 인근 용강군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다. 기성권번에서 기생 교육을 받은 뒤 1934년 포리돌레코드에 발탁되어 「꽃을 잡고」로 데뷔해 단번에 인기 가수가 되었다. 이후 빅타레코드, 태평레코드에서도 음반을 발표했고, 1940년대에는 아세아가요단 같은 공연단체에서도 활동했다. 광복 당시 고향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남북분단 이후 북한에서 민요 관련 일에 종사하며 후진을 양성했다고 한다. 1990년에 타계했다.
데뷔곡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36년 전후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꽃을 잡고」와 대표작 「조선팔경가」는 모두 수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하며, 「태평연」이나 「능수버들」 등도 지금까지 신민요의 고전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 1935년에 잡지 『삼천리』에서 실시한 가수 인기투표에서는 왕수복에 이어 여자가수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량이나 작품, 인기도로 보아 이화자와 쌍벽을 이루는 신민요 가수였는데, 선우일선은 1930년대 중반, 이화자는 1930년대 후반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