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음악을 익혔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피아노 연주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5년에 정식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작곡가로 데뷔했고, 자신의 곡에 직접 가사를 붙여 작사 활동도 병행했다. 약 40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면서 수많은 인기곡을 탄생시켰고, 이미자 · 패티김 · 남진 등 스타 가수를 양성했다.
본명은 박의병이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했다고 하며, 현재 확인되는 최초의 활동 기록은 1949년 서울스윙킹밴드 참여이다. 1955년에 「황혼의 엘레지」 등을 발표한 이후 오아시스레코드 · 지구레코드 · 대도레코드 등에서 전속 작곡가로 활동했고, 1980년대 이후로는 태양음향 · 거성레코드 등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다.
1987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까지 계속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으나, 1994년에 뇌졸중이 발병한 이후로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투병하다가 2010년에 타계했다.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힌 작품은 1956년에 발표한 「비 내리는 호남선」이다. 작곡 외에 백호라는 필명도 사용하며 작사 활동을 병행했고, 외국 대중음악 편곡에도 능해 번안곡 「검은 상처의 블루스」 등을 히트시켰다. 피아노 연주가로 1950년대 재즈 보급에 기여했고,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악단을 이끌며 밴드마스터로도 이름을 날렸다.
1966년에는 10년 가량 전속으로 있던 오아시스레코드를 떠나 경쟁사인 지구레코드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이른바 ‘박춘석 사단’이 형성되기 시작해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가수 이미자 · 남진 · 문주란 · 하춘화 등으로 대표되는 박춘석 사단의 활동에 따라, 재즈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박춘석의 음악 활동 영역은 「섬마을 선생님」이나 「가슴 아프게」 등 트로트로까지 대폭 확장되었다.
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성 면에서 당대 다른 어떤 대중가요 작곡가보다도 뛰어났으며, 패티김이 부른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같은 곡은 박춘석 음악의 폭과 깊이를 확인시켜 준 작품으로 꼽힌다.
1995년에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10년 사후에 은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