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전에는 전문 작사가로 활동하기보다 습작 형태로 몇몇 작품을 발표했고, 1940년대 말에 「귀국선」을 발표해 성공한 뒤로 당대를 대표하는 작사가가 되었다. 열 개가 넘은 필명을 사용했고, 「홍콩 아가씨」처럼 이국취향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을 많이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성장기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초등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문학과 무대장치, 포스터 등 공연 관련 미술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미술 작업으로 대중예술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1930년대에 이미 작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작사가로 본격적인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49년에 오리엔트레코드에서 「귀국선」 등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반야월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활동했으나, 반야월과 달리 단체 활동에는 그다지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았다. 대단한 애주가로 유명했으나, 사적인 삶에 관한 자료나 증언은 거의 없는 편이다. 1973년에 타계했다.
몇 가지로 특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많이 발표했지만, 1950년대 초중반에 비현실적이고 과시적인 이국취향 가사를 유독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예로는 「경상도 아가씨」, 「에레나가 된 순희」 등 전쟁 관련 작품이 유명하며, 서정적인 작품으로는 「봄날은 간다」, 「고향의 그림자」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