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울산광역시) (())

울산광역시 북구청
울산광역시 북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울산광역시 동북부에 위치한 구(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울산광역시 동북부에 위치한 구(區).
개관

동쪽으로는 동구, 서쪽으로는 울주군 범서읍, 남쪽으로는 태화강 하류 염포만을 경계로 중구와 남구, 북쪽으로는 경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9°17'∼129°28', 북위 35°30'∼35°40'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157.33㎢, 인구는 19만 106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8개 행정동(27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에 위치해 있다.

자연환경

북구의 지형지세는 동쪽의 태백산맥 말단부에 해당하는 동대산(東大山) · 무룡산(舞龍山) 등을 정점으로 동서 방향으로 경사가 낮아지는 구릉성 산지와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사면을 따라 흘러 동천강에 합류하거나 직접 울산만으로 흘러드는 소하천, 동천강에 의하여 형성된 곡저평야, 그리고 형산강구조곡을 중심으로 서부의 고도 200m 내외의 경사가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이 지역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동천강은 북구 서북단의 경주시 외동읍과의 경계를 이루는 천마산(天馬山)과 범서읍과의 경계를 이루는 상아산(尙牙山) 사이에서 발원하며, 중류에서 신천천(新川川) · 송정천(松亭川) 등의 소 지류와 만나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남류하면서 중구와의 경계를 지나 태화강에 합류된다.

태화강과 동천강의 합류지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울산평야는 침강해안의 만입부에 이루어진 비옥한 충적평야로 과거에는 울산 지역의 곡창지대였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공장용지를 비롯한 도시적 토지이용으로 전환되었다.

기후는 북서쪽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겨울의 찬 북서풍을 막아 기온은 따뜻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기온을 조절하여 온화한 편이다. 2007년 연평균 기온은 15.0℃이며, 1월 평균 기온은 4.8℃, 8월 평균기온은 27.5℃이다. 강수량은 1135.8㎜이고, 계절풍이 많이 부는 관계로 여름은 우기, 겨울은 건기로 뚜렷하게 구별된다.

역사

북구 지역은 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상안동과 창평동에서 발견된 고인돌이 있다.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부터는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한시대에서 신라시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의 중산동 고분군을 통하여 당시 이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정치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삼한시대 울산 지역은 진한에 속하였으며, 현재의 중구 다운동 일대를 중심으로 굴아화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굴아화현과 율포현에 속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757년(경덕왕 16)에 굴아화현은 하곡현(일명 하서, 동구의 효문 · 양정동 및 중구 일원)으로, 율포현은 동진현(북구의 농소 · 강동 · 송정 · 염포동 및 동구 일원)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일대에 있었던 임관군에 속하였다.

고려 태조 때 울산지역의 하곡 · 동진 · 우풍 3현이 통합되어 흥려부(일명 흥례부)로 승격되었고 이 지역도 흥려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3개 현이 단일 행정단위가 됨으로써 오늘날 울산 지역의 영역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995년(성종 14)에 흥려부가 공화현으로 강등되었고, 1018년(현종 9)에는 울주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울주가 울산으로 개칭됨에 따라 비로소 ‘울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1598년(선조 31)에는 임진왜란 당시 울산 의병들이 왜적을 무찌른 공이 컸던 점이 인정되어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후 1895년(고종 32) 도호부를 군으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다가, 1914년 부 · 군을 정리 · 폐합하는 지방제도 개편으로 울산군은 언양군을 병합하고, 19개면으로 개편되었다. 이때 오늘날의 북구 지역은 농소면(지금의 농소1·2·3동, 송정동 일원), 강동면(지금의 강동동 일원), 하상면(지금의 효문 · 양정동 및 중구 일원), 동면(지금의 염포동 및 동구 일원)으로 분리 · 개편되었다. 1931년에는 울산면이 울산읍으로, 1934년 현재 북구의 염포동을 포함하는 동면이 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62년 2월 1일 울산군의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전 지역과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 · 다운리 ,농소면 송정 · 화봉리가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일 울산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울산시로, 나머지 지역은 울주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때 현재 북구 관할인 농소면(지금의 농소1·2·3동)과 강동면(지금의 강동동)은 울주군에 편입되었다.

1985년 7월 15일부터 울산시가 중 · 남구에 구청을 개청하면서 지금의 효문 · 송정 · 양정 · 염포동은 중구 관할구역에 편입되었고, 1991년 1월 1일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1995년 1월 1일 울산시 · 군이 통합되면서 울산군이 울주구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같은 해 3월 2일 농소면이 농소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중구의 진장 · 효문 · 송정 · 양정동과 울주구의 농소읍, 강동면을 합친 총 면적 151.46㎢를 관할구역으로 하는 북구가 탄생하면서 농소읍이 농소1·2·3동으로 분동되었고, 강동면이 강동동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후 1998년 3월 1일 동구 염포동이 북구에 편입되어 9개 동이 되었으나, 1998년 10월 1일 진장동이 효문동으로 통 · 폐합되면서 지금의 8개 동의 행정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2001년 6월 1일 구청은 정동 585-9번지에서 연암동 1004-1번지 신청사로 이전하였다.

유물 · 유적

북구 지역의 지정유산은 국가지정유산 1점, 시 지정 문화유산 11점 그리고 문화유산자료 2점 등 총 13점이 있다.

관문성(사적, 1963년 지정)은 구 중산동(동대산)에서부터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치술령망부석)까지 12㎞에 달하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장성(長城)으로, 서라벌의 남쪽과 동쪽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신라 722년(성덕왕 21)에 완공된 모벌군성(毛伐郡成)이다. 당초에는 산 중복을 따라 축성한 석성이었으나, 1300여 년의 세월을 겪으면서 대부분 퇴락되고 동쪽 부분에서만 부분적으로 원형을 볼 수 있다. 성의 축성법은 길이 40∼50㎝의 다듬은 돌과 평평한 자연석을 함께 사용하여, 물림쌓기방법과 내탁법, 내축법으로 높이 4∼5m 높이로 쌓았고, 문(門)은 중산리 이화 쪽과 두산리 쪽의 2군데가 있다.

우가산 유포봉수대(울산광역시 기념물, 1998년 지정)은 동해안에 위치하는 연안봉수의 하나로 기장 남산에서 임랑포-아리포-이길곳-하산-가리산-천내-남목천-유포를 거쳐 경주 하서지로 연결되는 울산 지역의 마지막 지점에 위치하는 봉수이다. 인접한 유포석보의 별망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자연석으로 축조한 원형 연대와 주위 방호벽, 봉수군 막사터가 현재까지도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있어 조선시대 해안지방의 봉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유포석보(울산광역시 기념물, 1998년 지정)는 조선 전기에 설치된 석보로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왜구 방비를 목적으로 1450년(문종 1) 처음 축조되었다. 목책으로 시작하였으나 1452년(단종 1) 석축으로 개축하자는 논의를 거쳐 1459년(세조 5) 완공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구릉기슭의 낮은 평지와 계곡을 성내로 삼고 그 주위를 협축한 포곡성 형태로, 둘레 880m, 높이 1.2m의 규모이다.

1997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은 ‘방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에 일광 · 월광보살이 협시(挾侍)하고 있는 약사삼존불을 높게 돋을새김 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본존인 약사불은 장방형의 양감으로 조각된 두상으로 이목구비가 약간 마멸되었을 뿐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며 일광 · 월광보살이 협시한 약사삼존불로서는 보기 드문 불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신흥사 구 대웅전은 본래 건흥사의 대웅전으로서 635년(선덕여왕 4) 명랑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울산 지역에서 승군 동원기록이 있는 유일한 사찰로서 구 대웅전은 1998년 새로이 대웅전을 신축함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이전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충팔각 조선 후기 양식으로 내부 천장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자는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송정동 355번지에는 박상진 의사 생가(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가 있다. 박상진은 1884년 밀양박씨 승지 박시규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비밀 결사대인 대한광복회를 조직, 총 사령관으로서 주권회복 및 조국광복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고, 1917년 음력 2월 김종국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8월 2일 대구에서 순국하였다. 본 유적은 전체 4동으로 이루어진 목조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ㅂ’자 형의 배치형태를 갖는 조선 후기 상류계층의 전형적인 가옥구조 형식을 갖추고 있다.

중산동 고분군(울산광역시 기념물, 1997년 지정)은 삼한시대부터 신라시대에 걸쳐 형성된 대규모의 고분군이다. 1991년 발굴조사 과정에서 널무덤, 돌무지 덧널무덤, 구덩식 돌방무덤, 굴식 등의 다양한 고분의 구조가 확인되었고 굽다리 접시, 긴 목항아리, 짧은 목항아리, 오리형 토기, 고리 큰칼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이 지역의 생활문화를 밝힘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만화리 지석묘(울산광역시 기념물, 2000년 지정)은 1기의 바둑판식 고인돌로 신답마을의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땅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고 덮개돌 위에는 작은 돌로 문질러 둥글게 판 알 모양의 성혈이 10여 개 있다. 이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거나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 아래의 양쪽에는 받침돌이 있으나 내부 구조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외 창평동 난골마을 구릉과 논두렁에 각각 1기씩 위치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창평동 고인돌군도 2000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고인돌은 북구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이 지역 일대의 선사시대 정치 · 사회 · 문화 등의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001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곽암(藿巖, 미역바위)은 신학성 장군 박윤웅이 채지로 받았던 바위라 전해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때 박윤웅은 계변성 성주로 있었던 호족으로 태조 13년 고려에 항복하여 고려 건국을 도운 인물이다. 그 공으로 임관군(臨關郡), 하곡현(河曲縣), 동진현(東津縣), 동안군(東安郡), 우풍현(우風縣)등 신학성 장군의 세력기반을 통합하여 태조 13년 흥례부(興禮府)로 승격시켜 자치하도록 하였으며, 미역바위 12암과 농소 지방을 채지로 내렸다.

이후 조선시대인 1751년(영조 27) 균역법을 시행하면서 모든 종류의 어장 · 염분 · 미역밭이 국유로 환수되었는데 신학성 장군에게 채지로 내려졌던 미역바위도 국유로 귀속되었다. 그 후 어민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 중 한 바위만을 되돌려 준 것이 바로 미역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중산동 취락유적은 2003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한시대에서 삼국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취락유적으로 인근에 위치한 1997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중산동 고분군과 관련 있는 유적으로, 당시의 취락의 구조와 범위, 변천과정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또한 울산 지역의 대표적인 중심취락으로 취락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2003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북구 달천동 일원의 달천 철장은 삼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철광석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문화유산이다. 철광석 채굴은 삼한시대 이래국가의 기반산업으로 이 철장은 중요한 산업유적지이다.

특히 경주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철기의 비소(As)함량이 달천 광산의 철광석의 그것과 유사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달천을 중심으로 한 울산 인근 지역에는 수많은 쇠부리 터가 산재해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철 생산 과정을 민속놀이로 승화시킨 쇠불이 놀이도 전해오고 있다.

2003년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강동 화암 주상절리(江東花岩柱狀節理)는 북구 화암동 화암마을 화암(꽃바위) 해변 일대에 분포하는 유적이다. 우리나라 특히 동해안에 나타나는 주상절리 중 용암 주상절리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될 뿐 아니라 주상체들은 좁은 구역 내에서 거의 수평(대표적 방향) 내지 수직되게 가지런한 목재더미처럼 방향을 휘어가며 배열되고 있고, 횡단면은 꽃무늬를 보여주고 있다. 화암(花岩)이라는 지명이 시사해 주듯이 경관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 가치도 매우 크다.

교육 · 문화

북구 지역의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양정동에 위치한 학호서원(鶴湖書院)이 있다. 이 서원은 울산호도부사를 지냈던 청강(淸江) 이제신(李濟臣)의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나, 고종(高宗) 때에 철폐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일본에 개방한 국제 무역항이었던 염포(鹽浦)는 왜어(倭語)를 비롯한 왜학(倭學)을 교육하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이는 무과나 잡과(雜科) 계통에는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없고, 해당 관청에서 소정의 인재들을 각기 양성하였기 때문이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1개교, 특수학교 2개교가 있다. 초 · 중 · 고등학교 모두 국공립으로 사립학교는 전혀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문화공간은 총 5개로 공공 공연장과 민간 공연장, 영화상영관, 복지회관, 문화원이 있으며, 공공도서관은 2개소가 있다. 그리고 연암동 북구청 앞에 위치한 문화예술회관은 2003년 9월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제공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특히 지역 문화예술가와 순수 아마추어들이 문화예술회관의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 문화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쉼터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5년에는 공연 160건, 전시 28건, 207일에 달하는 공연 · 전시를 펼쳐 주민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또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체성을 살리는 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문화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하여 지역 주민들의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북구문화원은 쇠부리 보존회, 전통춤 연구소, 북구향토사 연구회를 조직하여 지역고유의 문화를 개발, 보급, 보존하고 향토사의 조사, 연구 및 사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울산 쇠부리 문화축제, 기박산성 의병축제, 정자해변 영화축제, 정자해변 해맞이 행사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을 주관하고 있다. 특히, 쇠부리 연구를 중점 사업으로 선정하여 철기문화의 메카로서 울산 및 북구의 중요성과 가치를 재인식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쇠부리 연구 및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

민속

북구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울산 달내 쇠부리놀이가 있다. 이것은 북구뿐만 아니라 울산 지역의 상징적인 민속놀이로 현재는 울산 쇠부리 문화축제를 통해 전승 · 보전되고 있다.

울산 지역의 철 생산은 삼한시대부터 이루어져 왔다. 영남의 여러 지역은 조선 초기까지 철의 세공지(歲貢地)로 지정되었으며, 이들 철 세공지에는 각기 철장이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울산 지역에서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생철 1만 2500근이 세공되었다.

울산 달천(達川)에서 생산된 철을 가공하였던 야철장, 즉 쇠부리는 울산뿐만 아니라 경주, 청도, 밀양에 이르는 넓은 지역(북구 대안동 쇠부리터를 비롯, 100개소 이상)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철을 가공하는 과정 즉 ‘쇠부리’ 과정을 놀이로 재구성한 것이 쇠부리놀이이다. 쇠부리 과정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 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풀무를 밟아 바람을 내는 불매꾼(풀무꾼의 경상도 사투리)의 역할은 대단했다. 8명씩 1조가 되어 선거리(선조) 후거리(후조) 모두 16명의 불매꾼이 불매질을 하면서 힘을 돋우고, 피로를 잊는 한편, 불매꾼의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소리를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불매소리’이다.

쇠부리터의 불매소리는 20자 이상의 큰 불매판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박자는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박자보다도 소리 자체가 울산 특유의 거친 듯 매겨지는 듯이 독특하다. 쇠부리놀이는 부리꾼들이 쇠부리를 위해 토철과 숯을 싣고 불매꾼들과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때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금줄도 등장 한다. 두 번째는 고사의 장으로 쇠부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기원제가 열린다. 세 번째는 쇠부리 장으로 불매소리를 부르며 토철을 녹인다. 이 때 부리꾼들은 분업하여 작업하고 숯쟁이들은 숯을 용광로에 붓고 쇠쟁이들은 토철을 붓는다. 그리고 불매꾼은 불매를 밟는다. 네 번째는 금줄을 소각하는 장(정화의 장)으로 금줄을 용광로에 넣어 태운다. 마지막은 놀이의 장(뒤풀이 장)으로 쇠가 많이 나와 모두가 한마당 신명나게 노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설화 · 민요

북구 연암동(蓮岩洞)에는 탄광골이라는 큰 골짜기가 있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석탄을 생산하였으나 질이 좋지 못하여 이후 폐광되어 지금은 인적이 드문 산골로 변해 버렸다. 이 탄광골의 동측에는 ‘남목사람 잘루기’로 불리는 개미허리 같이 짤룩한 지역이 있는데 이곳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어느 한 해에 큰 비가 며칠동안 내려 ‘잘루기’가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이에 남목 사람들은 이 잘루기가 무너져서 단절된다면 태백산의 성스러운 정기가 그만 끊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남목의 지기(地氣)를 잃게 되는 것을 염려하였다. 남목 사람들의 이러한 근심에 마침내 목민관(木民官)은 관하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대역사(大役事)를 함으로써 그 잘루기는 유지되고 태백산의 정기를 계속하여 받음으로써 남목 사람들은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잘루기는 ‘남목사람 잘루기’로 불려지게 되었다.

무룡산(舞龍山) 서쪽에는 하나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오봉산(五峯山)이다. 이 산의 서쪽사면에는 시여골(詩余谷)이 있고, 이곳이 옛 백련암(白蓮巖)이 있던 자리 연암동(蓮巖洞)이다. 이 시여골에는 사람처럼 우뚝 선 바위가 하나 있다. 1228년(충렬왕 14년) 어느 날 그 바위에는 흰 연꽃(白蓮) 무늬가 피어났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수도 송도까지 알려지게 되어 시인 묵객들이 줄을 이어 찾아오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그 바위를 백련암(白蓮巖)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계동에서 동천강을 건너 상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고개를 ‘과부고개’라 부른다. 옛날 한 처녀가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 처녀는 시집에 가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자상한 지아비와 아들, 딸과 함께 오순도순 살기를 기원하였다. 혼례를 치룬 후 신부는 농서면에 있는 시집으로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가던 길이었다. 이 고개가 하도 높고 험준하여 고개 마루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그 때 시집에서 신랑이 병을 얻어 급사하였다는 급한 기별이 왔다. 그 기별을 받자 신부는 고개에서 녹의홍장을 벗고 소복으로 갈아입은 뒤 시집으로 갔다고 해서 이 고개를 과부고개로 불렀고, 그 이후로는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 이 고개를 넘지 않고 다른 길로 피해 다녔다고 전해진다.

북구에서 전해오는 민요는 쇠부리놀이와 관련이 있는 불매가이다. 이 불매가는 대장간에서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어 쇠를 달구면서 부르던 노동요이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시원선생 조작으로 만든 불매 / 불매는 있건마는 시원선생 어디갔나

태고때 시절이 언제라고 시원선생 있을소냐 / 어열시구 불매야 어열시구 불매야

저열시구 불매야 잘도분다 불매라 / 쇠는 어디 쇠냐 달래골 토철이라

우리조선 현종때에 구충당 의립선생 / 10년 세월 쇠를 찾아 백두서 지리까지

헤매다가 찾았다네 찾고보니 달내토철 / 삼한 때도 났다더라 이쇠녹여 솥만들고

또한 녹여 쟁기떠서 농사짓고 부모봉양 / 숯은 어디 숯이고 도독골 참숯이라

톱으로 베고 도끼로 쳐서 정성들여 구었다네 / 어열시구 불매야 저절시구 불매야 쿵적쿵적 불어주소

무룡산에 산신령님 용달골에 용왕님요 / 이 쇠부리 잘도되면 반달 같은 논배미 사서

장가도 가고 지고 어열시구 불매야 저절시구 불매야 / 도편수 거동보소 부지갱이 거머지고

갈팡질팡 하는구나 산지 조종은 곤륜산이요 / 수지 조종은 황해수로다 불매 조종은 도불매

국태는 민안하고 시하연 풍하니 아니놀고 무할소냐 / 어열시구 불매야 저절시구 불매야

천중세월 인중수요 천만건곤 복만가다 / 배가고파 밥을 먹고 목이 말라 술마시고

일심동체 불러주소 쿵덕쿵덕 불러주소 / 어열시구 불매야 저절시구 불매야“로 되어 있다.

산업 · 교통

북구 지역은 기능적으로 도시 및 농촌의 성격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격은 지역적으로도 주거중심(농소, 송정), 공업중심(효문, 양정, 염포), 해안관광 및 어업중심(강동) 지역의 3개 생활권역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이 지역은 동천강을 끼고 그 주변에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신흥 배후도시로서 교통이 편리하고 도농복합적인 쾌적한 주거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메카로서 수출과 산업발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중소기업단지로 조성된 미포국가공업단지의 효문지구, 신개발 공업단지인 달천농공단지를 중심으로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집적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양정 · 염포 지역에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하이스코 등의 대기업이 미포국가공업단지 내에 소재하고 있다. 강동 지역은 천혜의 수려한 해안 자연경관과 잘 조화된 관광휴양 · 해양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2008년 현재 북구의 총 산업체 수는 7626개이고, 종사자는 7만 8828명이다. 산업별로는 농소1동 · 효문동에 주로 집중분포하고 있는 도 · 소매업이 사업체수(1449개)와 종사자수(4984명)에 있어서 그 비중이 가장 크다. 그 다음으로는 1363개 업체(17.8%), 종사자 3232명의 숙박 및 음식점업이며, 제조업은 978개 업체에 종사자수는 4만 1588명이고 제조업은 양정동 · 효문동 · 농소3동에 걸쳐 집중되어 있다.

기타 공공 · 수리 및 개인서비스업은 758개 업체, 종사자는 2288명이다. 이들 대부분의 사업체는 중 · 남구와 인접한 효문동과 농소1·2동에 집중되어 이 지역이 북구 경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북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시설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양정 · 효문동을 중심으로 총 부지가 5.19㎢이다. 이는 여의도의 1.5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단일 공장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1968년 영국 FORD 모델인 CORTINA 조립 생산을 시작으로 1975년에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PONY)를 생산하였으며, 1991년에는 최초의 국산 엔진인 알파엔진을 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공장 내에 폐수처리장을 갖추고 있으며, 총 38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등 조경 사업을 통해 쾌적한 작업환경을 이루고 있다. 1996년 5월 환경부로부터 업계 최초로 환경친화기업으로 지정되었다.

울산미포산업단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를 공업화를 위한 기반조성과 수입대체산업의 육성에 중점을 둠으로써 1962년 국가경제개발계획의 실시에 따라 우리나라 공업화의 핵심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정부계획주도형으로 건설된 국내 최초 최대의 임해국가공업단지로서 1962년에는 ‘울산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 1월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울산미포국가공업단지’가 되었다. 이 공업단지는 울산광역시 남구 · 동구 · 북구의 효문 · 연암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석유화학, 자동차 및 조선공업과 연계한 산업단지로 총면적 46.185㎢에 중소기업체 606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8만 6037명의 종사자가 있다.

규모가 방대하여 공단조성 개발과정 및 계열공장의 집적과정, 업종의 특성에 따라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여천지구, 매암지구, 용연지구, 효문지구 그리고 미포지구 등 일반적으로 6개 지구로 구분되어 있다. 이 외에도 북구 지역에는 매곡지방산업단지와 달천농공단지가 있다.

2006년 7월 준공된 매곡지방산업단지는 울산지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하고 대규모 공장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선해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 발전시킬 목적으로 북구 매곡동에 총 면적 55만 3000㎡ 규모로 조성되었다. 자동차부품 제조 업종과 기계장비 제조 업종 등 52개 업체가 분양을 완료했으며, 현재 31개 업체가 입주하여 가동 중이다.(2008년 현재)

달천농공단지는 중소기업의 부지난 해소, 농촌의 농외소득 증대, 중소기업의 집단화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재의 달천동에 1997년 지정 고시되었으며, 1997년 7월 착공되어 1999년 9월 17일에 준공되었다. 총 면적 28만 9860㎡ 중에서 공장용지 19만 3303㎡는 83개 업체에 분양 완료되었으며, 대부분의 입주업체는 자동차 관련 조립금속 제조업체로 저공해 업종을 유치하여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였다. 2008년 현재 88개 업체가 입주하여 100% 가동율을 보이고 있다.

북구의 농업은 농소동의 동천강 및 그 지류 연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8년 현재 2083호의 농가가 논 1190㏊, 밭 800㏊, 과수원 156㏊에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재배작물은 쌀을 비롯한 식량작물이 중심이고, 배 등 과수재배와 채소 · 화훼 등의 근교시설농업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농소 호접란, 농소 국화, 해돋이 농소 신선딸기와 산전딸기, 농소 미나리, 장등 찰토마토, 친청 청결미 등이 있다. 특히 2002년에는 정부에서 화훼수출 전문단지로 지정된 농소화훼단지에서는 1만 6927평 규모의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농소국화와 농소 호접란, 풍란 등을 생산하여 일본 미국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수산업은 북구 신명동과 남으로는 어물동에 이르는 13.83㎞의 해안선에 8개 항 · 포구를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 2008년 현재 8개 어촌계를 중심으로 732가구 2196명이 종사하고 있다.

한편 정자항을 중심으로는 연근해어업과 양식어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정자항은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대변항과 더불어 멸치잡이로 유명하며 이곳에서 잡히는 ‘왕멸치’는 멸치액젓으로 주로 가공된다. 또한 자연산 미역인 돌미역은 예로부터 질과 맛이 좋기로 유명한 ‘울산미역’의 맥을 잇고 있다. 현재 북구 지역의 어촌은 어업노동력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하여 양식어장 활용도가 저하하고 있어 도시와 소득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북구는 유통시설로 3개의 대규모 소매점과 5개 재래시장이 있다. 그 중 호계장은 1922년 정기시장으로 개설되어 2000년에 상설시장인 호계공설시장이 되었다.

그 외 중요한 시장으로는 1932년 정기시장으로 개설된 정자시장이 있다. 현재의 시장을 경쟁력 있는 시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호계공설시장 건물의 재건축과 도시가스 공급, 정자시장 장옥보수, 시장 진입도로 개설공사, 재래시장 박람회 참석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뿐만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호계공설시장 천정텍스 설치공사, 가로등 설치를 통하여 시장을 찾는 고객들이 쾌적한 공간속에서 쇼핑을 할 수 있는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구의 교통시설은 2008년 현재 일반국도 2개 노선, 광역시도 81개 노선, 구도 969개 노선, 비법정도로 1개 노선으로 총 연장은 49만 7878m이고, 총 면적 774만 8891㎡이다. 간선도로로는 7번 국도가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남북으로 지나고, 31번 국도가 남부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그 외 남부 지역은 동쪽 및 서쪽 해안선을 따라 동구의 방어진까지 연결되어 외부 지역과의 교통도 편리하다. 또 동해 남부선이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남북으로 지나고, 송정동의 울산비행장에는 서울과 제주를 잇는 국내 항공선이 개설되어 있다.

관광

북구의 정자관광특구는 북구 정자동을 중심으로 정자동 일대의 해안과 전원마을을 말하며 통상적으로 ‘정자’라고 불리고 있다.

정자해변은 북구 정자동과 북쪽으로 산하동, 신명동 일대, 남쪽으로 당사동, 어물동 일대 해안에 고운 자갈 해변과 몽돌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정자동에서 산하동, 신명동에 이르는 해안의 고운자갈 해변은 일반적인 몽돌해변과는 달리 그 크기가 작고 고른 편이라 백사장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정자해변은 전국에서 유일한 고운자갈 해변으로 울산 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매년 찾고 있다.

강동 해변은 어물동에서 신명동까지 길이 12㎞, 폭 40m로 동구의 주전에서 북구의 강동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이며, 울산 12경 중 하나이다. 청정해역과 바위절경, 몽돌, 흑자갈 등 수려한 해안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국도 31호선을 따라 경주, 포항과 지리적으로 연계돼 신라문화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합관광지이다. 특히 정자해변 해맞이축제, 정월대보름 달집살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려 문화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강동 해변 중 어물동 구암마을에는 몽돌해변이 있다. 동해의 푸른 바다 일출 광경과 더불어 깨끗한 몽돌 자갈 구르는 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신비감을 안겨주는 곳이다. 새알같이 둥글고 크기가 일정한 작은 몽돌들이 해변에 늘어져 맨발로 밟으면 지압 역할을 해 건강산책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화암동에 위치한 강동화암 주상절리는 화암 해변 일대에 분포하는 유적으로 동해안에 나타나는 주상절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역사적 ·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좁은 구역 내에서 거의 수평 · 수직 방향으로 가지런히 배열되고 있고 단면은 화암(花岩)답게 꽃무늬를 나타내고 있어 경관적 가치가 높아 관광지로서 인기가 높다.

울산시 북구에는 시설 조성이 잘 되어 관광지로도 큰 몫을 하는 유명한 체육시설이 있다. 강동축구전용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총 사업비 53억 원을 투자하여 건립한 축구 전용구장으로 총 면적 55193㎡이며, 겨울엔 기온이 따뜻해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연습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시민들과 각종 단체들의 경기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잘 관리된 천연 잔디와 강동 해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구 중산동에 있는 약수 자전거도로는 동천을 따라 약 10㎞ 구간에 걸쳐 조성된 자전거도로로서 동천변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약수천을 횡단하는 약수 자전거도로교는 흔히 볼 수 있는 아치교가 아니라 노면에 굴곡을 주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자전거도로 조성으로 북구청은 2004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자전거 이용 활성화 사업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정월대보름 달맞이 행사는 강동 해변 등에서 ‘달집살이 행사’와 ‘대동놀이 한마당행사’가 이루어진다. 매년 12월 31일∼1월 1일 동안 이루어지는 ‘정자해변 해맞이 축제’는 강동동 정자해변에서 전야제 행사 · 해맞이 행사로 나누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 개최하고 있다.

‘기박산성 축제’는 임진왜란 당시 의사들의 숭고한 호국충정 정신을 제향 추모하여 후손만대에 충의지교의 정신문화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매년 4월 23일 기박산성에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구민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고 건강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구민 한마음 생활체육대회’와 ‘구민화합 건강달리기대회’를, ‘정자해변 영화축제’ 등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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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백서』(울산광역시 북구, 2005)
『구정현황』(울산광역시 북구,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울산광역시사』(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2)
『울산의 전설과 민요』(울산문화원, 1996)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울산광역시(www.ulsan.go.kr)
울산광역시 북구(www.bukgu.uls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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