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중구청
대구광역시 중구청
인문지리
지명
대구광역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
지명/행정지명·마을
면적
7.06㎢
인구
9만 7711명[2024년 12월 31일 기준]
행정구역
대구광역시 중구
구청 소재지
중구 동인동2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ung.daegu.kr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중구(대구광역시)는 대구광역시 중앙에 위치한 구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 북쪽이 각각 동구와 수성구, 서구, 남구, 북구와 접한다. 도매 · 소매업, 숙박 · 음식점업, 금융 · 보험업 등 3차산업 중심의 도심형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월당과 대구역 인근에 백화점과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서문시장 등 전통시장도 활발하다. 골목 투어 5개 코스를 조성하고 근대문화와 예술, 종교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6㎢, 인구는 9만 7711명이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동인동2가에 있다.

정의
대구광역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
개관

대구분지 중앙부에 위치한 중구는 동쪽은 신천을 경계로 대구광역시 동구 · 수성구와 접하고, 남쪽은 명덕로를 경계로 남구와 접한다. 서쪽은 달성공원로와 큰장로를 경계로 서구, 북쪽은 경부선 철도를 경계로 북구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34'~128˚38', 북위 35˚51'~35˚89'이다. 도매 · 소매업, 숙박 · 음식점업, 금융 · 보험업 등 3차산업 중심의 도심형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월당과 대구역 인근에 백화점과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서문시장 등 전통시장도 활발하게 운영된다. 교동귀금속거리, 전자골목, 패션주얼리타운 등 특화 거리가 발달했고, 골목 투어 5개 코스가 조성되어 근대문화 · 예술 · 종교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면적은 7.06㎢로, 대구광역시 자치단체 중 가장 작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9만 7711명이다. 행정구역은 12개 행정동[동인동 · 삼덕동 · 성내1동 · 성내2동 · 성내3동 · 대신동 · 남산1동 · 남산2동 · 남산3동 · 남산4동 · 대봉1동 · 대봉2동]과 57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동인동2가에 있다.

자연환경

대구분지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동쪽 경계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신천의 서쪽 범람원에 속한 충적 저지대이다. 이 일대에는 과거 연귀산(連龜山), 아미산(峨眉山: 45m), 절단고개 등 낮은 구릉지가 분포하였다. 연귀산은 해발 약 65m의 낮은 구릉으로 ‘거북바위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아미산은 남산2동에 있던 얕은 구릉지였다. 절단고개는 남산4동에 있던 구릉지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구릉지들은 도시개발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기후는 내륙성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2023년 연평균기온은 14.7℃이며,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0.9℃, 최난월인 7월의 평균기온은 27.5℃로 연교차가 크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연간강수량은 최근 6년간 581㎜~1,297.6㎜로 편차가 크다.

역사

대봉동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인 간돌검, 붉은간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인근 북구 침산(砧山: 121.4m)과 연암산(燕巖山: 135m)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홈자귀, 반달돌칼 등 청동기시대 유물로 미루어 볼 때, 이 일대에서는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대구현(大丘縣)으로 개명하였는데, 당시 중구 지역은 수창군(壽昌郡) 대구현(大丘縣)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의 주현(主縣)-속현(屬縣) 체제에서 대구현은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후기인 1143년(인종 21)에 대구현이 주현으로 승격하면서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대구현은 조선 전기인 1419년(세종 1)에 대구군(大丘郡)이 되었고, 1466년(세조 12)에는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중구 지역은 대구도호부의 대구본부(大邱本府)에 속했으며, 1896년(고종 33) 경상북도 대구군에, 1910년 대구부의 동상면(東上面)과 서상면(西上面)에 속하였다. 1911년 경상북도 대구부 동상면과 서상면이 대구면으로 통합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 대구부로 개편되었다.

1949년 경상북도 대구부가 대구시로 승격하였다. 1953년에는 동인1가 등 17개 동을 관할하는 중부출장소와 덕산동을 포함한 38개 동을 관할하는 종로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63년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두 출장소는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로 통합되었다. 이후 행정구역 명칭은 1981년 7월 1일 대구직할시 중구, 1995년 1월 1일 대구광역시 중구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물 · 유적

중구는 오래전부터 대구광역시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구광역시의 다른 구에 비해 근대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시대 유적과 유물은 달성과 신천 사이에 위치한 충적지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교동, 대봉동, 동문동, 삼덕동, 칠성동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신천 좌안의 고인돌’ 혹은 ‘신천 지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교동, 동문동, 삼덕동 고인돌은 도시개발 과정에서 소실되었다. 봉산동 월견산(月見山: 78m) 고인돌은 신천 유역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고인돌과 달리, 구릉 정상부와 산기슭에 분포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구릉 정상부에 있던 ‘구암(龜岩)’이라고 불린 가장 큰 고인돌 1기는 현재 대구제일중학교 교정에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사적으로 지정된 대구 달성(大邱 達城)[1963년 지정]으로,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삼국시대 성곽이다. 성벽의 아랫부분에서 초기 철기시대조개더미와 각종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이 지방의 중심 세력이 성장하여 초기 국가 형태를 이루면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측된다. 달성은 남부 지방에서 확인되는 초기 성곽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유적은 대부분 대구읍성(大邱邑城) 내에 있던 경상감영 및 대구부사와 관련된 공해 건물이나 관리와 일반 백성들이 살던 생활 유구의 흔적들이다. 대구읍성은 1591년(선조 24)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파괴된 후 1736년(영조 12)에 새로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축성비에 따르면 성의 동서남북 정문에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진동문, 서문은 달서문, 북문은 공북문, 남문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19061907년 당시 경상북도관찰사서리 겸 대구군수였던 친일파 박중양(朴重陽: 18741959) 등에 의해 불법

공해(公廨)주1 건물로는 사적으로 지정된 대구 경상감영지(大邱 慶尙監營址)와 감영을 구성하던 건물인 선화당(宣化堂), 징청각(澄淸閣)[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 관풍루(觀風樓)[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가 남아 있다. 이 중 선화당은 1982년 3월 4일 ‘대구 선화당’이라는 명칭으로 대구직할시 유형문화재[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2월 27일 지정이 해제되고, 같은 날 ‘대구 경상감영 선화당’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승격되었다.

대구 경상감영은 조선 후기 경상도를 다스리던 지방관청으로 관찰사가 거처하던 곳이었다. 경상도에는 조선 전기까지는 별도의 감영 없이 관찰사가 도내를 순력(巡歷)했으나, 1601년(선조 34)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이곳에서 정무를 보았다. 징청각은 경상도관찰사가 살림채로 쓰던 건물로, 선화당과 함께 대구광역시 시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선화당은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경상감영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시대 설치되었던 수많은 관청 건물 가운데서 현존하는 드문 사례로서 조선 후기에 다시 시작된 강우 측정 기구인 측우대, 깃대를 꽂았던 깃대 꽂이 등도 남아 있어 감영의 공간 구성과 운영 시설을 살필 수 있다. 관풍루는 경상감영의 정문이다. 원래 이름은 ‘폐문루(閉門樓)’로, 새벽 5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을 때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대구향교(大邱鄕校)는 남산동에 있다.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599년(선조 32)에 달성공원 근처에 다시 세웠다가 1605년(선조 38) 교동으로 옮겼고, 1932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 책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대구향교대성전(大邱鄕校大成殿)[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은 대구광역시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의 중심 건물로, 전체적으로 엄숙하고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중구는 과거 읍성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근대 건축물이 건축되면서 시가지가 점차 확장되었다. 따라서 현재 대구광역시의 원도심이자 구시가지인 중구에는 다수의 근대 건축물이 현존한다. 근대 건축물의 종류로는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지은 종교 건물들과 일제강점기 기관에서 지은 교육시설, 공공시설 등이 있다. 특히 계산동과 남산동 일대에는 천주교와 관련한 종교시설이 많고, 동산동과 대신동에는 개신교 관련 병원 및 사택, 학교 사택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대구 계산동성당(大邱 桂山洞聖堂)은 계산동2가에 위치한다. 1899년(광무 3) 한국식 목조 십자형 건물로 완공되었으나 1900년 소실되어, 1902년에 다시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양식 건물로 건립되었다. 대구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2개의 고딕식 종각이 솟아 있어 ‘뾰족집’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 건축물은 대구광역시의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중요한 종교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인 대구제일교회(大邱第一敎會)경상북도 지방에 처음 생긴 개신교 기독교회로 동산동에 있다. 1897년 안의와(安義窩: 1867~1929)[제임스 E. 아담스(James E. Adams) 선교사가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안의와 선교사는 1908년(융희 2) 전통 건축양식과 서구 건축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1933년에는 간결한 고딕양식의 교회당을 새로 지었으며, 1937년 초에는 높이 33m의 종탑을 세웠다.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코미넷관(샬트르聖바오르修女院코미넷관)[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은 프랑스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고아와 노인을 돌보는 의료사업을 담당할 수녀를 파견하기로 하면서, 1915년 남산동에 건설한 수녀원 건물이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샬트르聖바오로修女院聖堂)[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1927년 코미넷관을 증축한 성당 건물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당시 성당 건축양식의 특징과 한국 근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된다.

샬트르성바오르수녀원성당 바로 옆 성모당(聖母堂)[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1918년 안세화(安世華: 1875~1938)[플로리앙 드망즈(Florian Demange)] 주교가 프랑스의 성지인 루르드 성모굴을 비슷하게 본떠 만든 천주교 건물이다. 성모당은 병을 낫게 해 준다는 치유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교육기관으로, 남산동에 위치한 성유스티노신학교(聖유스티노神學校)[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는 1914년에 건설된 신학교 건물이다.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에 가까운 서구식 건물로 벽돌이 정교하게 쌓여진 우수한 건물이자, 프랑스인 신부들이 서구의 근대 건축양식과 함께 벽돌 제조 기술과 벽돌 쌓는 기술을 대구 사람들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계성학교 교사(校舍)인 계성학교아담스관(啓聖學校아담스館)[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1908년 미국 선교부로부터 건축비를 지원받아 건립한 영남지방 최초의 양옥(洋屋) 교사이다. 계성학교맥퍼슨관(啓聖學校맥퍼슨館)[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계성학교 제2대 교장이던 라이너(Reiner) 선교사가 미국에 있던 맥퍼슨(McPherson)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1913년 9월에 건립한 건물이다. 계성학교핸더슨관(啓聖學校핸더슨館)[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계성학교 제4대 교장이던 핸더슨(Henderson)이 블레어(Blair) 선교사가 미국에서 염출한 자금으로 1931년 건립한 건물이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안에는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 채의 선교사 주택이 있다. 선교사스윗즈주택(宣敎師스윗즈住宅)은 1906년(광무 10)부터 1910년경에 건축된 사택으로, 전통 한식과 서양식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1736년(영조 12) 대구읍성 축조에 사용된 성돌[城石]을 재활용하여 지은 점이 특징이다. 선교사챔니스주택(宣敎師챔니스住宅)선교사블레어주택(宣敎師블레어住宅)도 1910년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건물은 당시 한국에 거주한 미국 선교사의 주거 및 생활양식을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근대 문화유산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교육시설은 여러 곳이 남아 있다. 동인동4가에 있는 대구 동인초등학교 강당[국가등록문화유산]은 1935년에서 1937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덕동3가의 대구 삼덕초등학교 구 관사(大邱 三德初等學校 舊 官舍)[국가등록문화유산]는 1939년에 지어졌다. 남산동의 남산초등학교 강당(南山初等學校 講堂)[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1936년에 건립된 건물이다.

대봉동에는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舊 大邱師範學校 本館 · 講堂)[국가등록문화유산]이 있는데, 1929년에 세워졌다. 또 구 대구상업학교 본관(舊 大邱商業學校 本館)[국가등록문화유산]은 192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건축물은 모두 일제강점기 교육시설의 유형과 건축 기법을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공공건물로는 1928년 삼덕동2가에 2층의 붉은 벽돌[조적조] 건물로 지어진 구 도립대구병원(舊 道立大邱病院)[사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동산동에 위치한 대구 동산병원 구관(大邱 東山病院 舊館)[국가등록문화유산]은 대구 지역 최초의 서양의학 병원인 제중원(濟中院)[1899년 건립]을 전신으로 하여 선교사 플레처(Fletcher)가 1931년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포정동의 한국산업은행대구지점(韓國産業銀行大邱支店)[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되었다. 2011년부터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남성로의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大邱 舊 嶠南 YMCA 會館)[국가등록문화유산]은 1914년에 건립된 2층 붉은 벽돌 건물이다. 3·1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이 회합한 장소였으며, 이후 조선물산장려운동,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대구향교가 남아 있다. 대구향교는 1398년 교동에 창건된 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쳤다. 1599년 달성공원 근처로 이건되었고, 1605년 다시 교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에 현 위치로 옮겨졌다.

대구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은 1899년 개교한 사립달성학교(私立達成學校)이다. 이 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학교라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의가 크지만, 일본인에 의해 근대 교육이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도 있다. 이후 심상과는 1905년(광무 9) 대구공립소학교 지금의 [대구초등학교]에, 고등과는 1907년 협성학교에 각각 흡수되었다. 협성학교는 1916년 대구보통고등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50년 경북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대구의 근대식 교육기관은 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00년(광무 4) 안의와 선교사의 도움으로 사립 대남학교가 세워졌고, 같은 해 그의 동료 선교사 마사 스콧 브루언(Martha Scott Bruen)은 신명여자소학교(信明女子小學校)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1926년 희도보통학교로 통합되었고, 이후 1955년 종로국민학교, 1996년 대구종로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안의와 선교사는 1906년 자택을 임시 교사로 삼아 영남 최초의 중등 교육기관인 계성학교를 개교하였다. 계성학교는 오늘날 계성초등학교, 계성중학교, 계성고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1902년 설립된 신명여자소학교의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1907년에는 이들을 위한 중등 여성 교육기관인 신명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이후 일제의 강요로 교명이 대구남산여학교로 변경되었으나, 광복과 함께 신명여자중학교로 복원되었다. 이어 1951년에는 신명여자고등학교가 분리되었고, 2004년부터는 신명고등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1914년에는 성유스티노신학교가 개교하였다. 이는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안세화 주교가 사제 양성을 위해 세운 대구 최초의 신학교였다.

전문 교육기관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었다. 1910년 설립된 대구자혜의원 내 의사 자격증 발급을 위해 1923년에 동문동에 설립한 사설 의학강습소가 전신이었던 대구의학전문학교(大邱醫學專門學校)와 1929년 교사 양성을 위해 대봉동에 설립한 관립 교육기관인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는 1952년 설립된 경북대학교에 편입되었다.

2024년 4월 1일 기준 중구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0개, 중학교 5개, 고등학교 4개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서관, 공연장, 전시장 등이 다수 분포해 있다. 중구에 위치한 도서관 중 공립 공공도서관 2곳과 작은도서관 26곳이 있다. 중구의 문화공간은 지역에 밀집해 있는 근대 건축물을 도시재생을 통해 활용한 공연장, 박물관, 문화 체험관, 갤러리 등이 입지해 있다. 중구는 다수의 문화시설뿐 아니라 도심의 특정 품목 상점이 집적하면서 조성된 특화 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 지정된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은 동인동2가에 있으며, 52만 5070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1919년에 개관한 대구부립도서관이 전신이며, 2023년 대구광역시시립중앙도서관에서 명칭을 변경하였다. 2·28민주운동기념회관은 2012년 남산동에서 개관하였으며, 5만 3326권의 장소를 보유하고 있다.

1975년 10월 중구 태평로2가에 개관한 대구시민회관은 대구 경상북도권의 유일한 종합 공연장이었으며, 2016년 대구콘서트하우스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284석 규모의 대공연장을 비롯해서 소공연장, 전시관, 근린생활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중구 봉산동에 위치한 종합 문화예술회관인 봉산문화회관 외에도, 연극 공연을 할 수 있는 소극장인 봉산동 예술마당솔, 예전아트홀, 하모니아 아트홀 등이 있다.

박물관으로는 대구근대역사관,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대구향토역사관 등이 있다. 2011년 개관한 대구근대역사관은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1931년에 이용되었던 건물에 조성되었다. 대구 근현대사 전시장 및 체험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달성공원 내에 위치한 대구향토역사관은 중구의 역사, 민속 등과 관련된 유물 자료를 통해 향토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5년 신설되었다. 2개의 전시실에 문화유산 및 대구광역시의 지형도를 비롯한 전시 소모형 등을 갖추고 있다. 그 밖에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의료박물관, 남산동 인쇄전시관,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교육역사박물관,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화폐전시실, 대구읍성거리박물관 등 특정 주제를 다루는 박물관, 전시관 등도 다수 분포해 있다.

민족시인이었던 이상화(李相和: 19011943)의 고택 및 민족운동가였던 서상돈(徐相敦: 18511913)의 고택을 활용한 전시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김원일(金源一: 1942~)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을 재구성한 문학 체험 전시 공간 등도 있다.

중구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로는 1990년부터 시작하여 매해 5~6월경 젊은이들의 거리로 인식되는 동성로에서 개최되는 동성로축제를 비롯하여 10월경에 봉산문화거리에서 열리는 봉산미술제와 봉산조형페스티벌, 조선시대 한약재가 집산했던 특설 시장인 약전골목 일대에서 5월에 개최되는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근대 화교들의 중심 거점이었던 종로를 중심으로 한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 교동귀금속거리 일대에서 매년 10월에 개최되는 대구패션주얼리위크 등이 있다.

민속 · 설화 · 민요

남산동과 동인동, 봉산동에서는 정월 초에 농악지신밟기를 행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거주가 많아지고 인구 이동도 잦아지면서, 지역 사정을 잘 아는 토박이가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농악계도 점차 쇠퇴하여 전통적인 농악과 지신밟기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중구 지역의 설화는 구릉지에 얽힌 이야기, 호랑이 · 봉황 · 잉어 등 동물 관련 이야기, 그리고 인간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특히 경상감사와 임금, 양반과 관기 등 관직자나 지배층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상감사의 아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경상도의 한 과부가 딸을 경상감사의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절에서 빌었다. 이를 엿들은 중이 부처의 음성을 가장해 딸을 뒤주에 가두었으나, 길을 지나던 경상감사가 이를 발견해 딸을 구하였다. 감사는 뒤주에 호랑이를 넣어 두었고, 중은 모르고 뒤주를 메고 가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감사는 과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달성공원과 잉어샘」 설화는 지명유래담이다. 달성공원은 대구 토착 세력인 달성 서씨의 세거지였다. 식수가 부족하자 주인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샘을 알려 주었고, 그곳에서 맑고 맛좋은 물이 솟아 ‘영천(靈泉)’이라 불렀다. 이후 귀한 손님이 올 때마다 샘에서 잉어가 나와 ‘잉어샘’으로 불리게 되었다.

「약령시와 강원도 산삼 장사」는 기지담 · 계략담 · 복수담에 속한다. 동성로에 살던 인색한 갑부 서창규가 약령시에서 강원도 산삼 장수를 속여 산삼을 헐값에 사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장수는 산삼을 스스로 달여 마셨고, 3년 뒤 건강해진 모습으로 서창규를 찾아가 조롱하였다. 서창규는 얕은 꾀를 부리다 귀한 산삼을 놓친 것을 후회하였다는 내용이다.

산업 · 교통 · 관광

중구는 농업제조업에 비해 3차산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아 도심형 산업구조를 보인다. 거주 인구에 비해 사업체 · 유통업체 ·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종사자는 도매 · 소매업, 숙박 · 음식점업, 금융 · 보험업,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한다. 도매 · 소매업은 업체수가 늘고 있으나 종사자 수는 줄어 중소 규모화되고 있으며, 숙박 · 음식점업은 정체 상태를 보인다. 반면 부동산업과 전문 · 과학 · 기술 서비스업은 사업체와 종사자 수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이다.

또한 중구는 대구광역시의 도심 기능을 수행하여 대형 백화점과 전통시장이 집중되어 있다. 반월당역 인근에 현대백화점 더현대 대구와 동아백화점 쇼핑점, 지하상가 메트로센터가 있고, 신천과 대봉교 인근에는 대구백화점 프라자점이 위치한다. 대구역 민자 역사 개발로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들어서 교통의 요지에 대형 백화점이 입지하였다.

한편, 도심 지역인 북성로 남쪽에 특화 거리로 조성된 교동귀금속거리, 교동전자골목, 패션주얼리전문타운, 수제화골목 등은 대구광역시 전역을 대상으로 상업 및 위락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중구는 이러한 특화 거리를 활용하여 특화산업육성지구로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는 서문시장을 비롯한 8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대신동 일원에 자리한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전국 3대 장터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부터 대구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큰 장’으로도 불린 이 시장은 생활필수품을 모두 구할 수 있는 대형 장터였다. 1677년(숙종 3) 대동법 시행으로 현물 납부가 포와 쌀로 바뀌면서 시장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경상도 내 5일장을 연결하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주요 거래 품목은 주단 · 포목 등 섬유 관련 품목으로, 전국적인 원단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시장은 6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4,500여 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또한 성내동에는 떡집으로 알려진 염매시장과 약전골목으로 유명한 약령시 그리고 교동시장이 있다.

교통은 북구와의 경계에 경부선 철도역인 대구역이 있다. 대구역은 경부선 철도가 개통된 1905년에 정식 개통하였다. 대구역 인근에는 상권이 밀집해 있고 도시개발을 통한 주택공급이 이루어졌으며, 대구 지하철 1호선의 대구역과 교동시장, 대구콘서트하우스, 롯데백화점 대구점, 칠성시장 등이 인접하여 일반 시민들의 왕래도 빈번한 지역이다.

중구 지역의 정중앙에는 중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대구 지하철 1호선과 동서로 관통하는 대구 지하철 2호선의 환승역인 반월당역이 있어서 결절지로서 기능을 한다.

도로망은 격자 형태로 이루어져 접근성이 높다. 남북 방향으로는 달성로 · 서성로 · 중앙대로 · 공평로 · 신천대로가, 동서 방향으로는 태평로 · 국채보상로 · 달구벌대로 · 명덕로가 조성되어 있다. 1907년 대구읍성 성벽이 철거되면서 그 자리에 동성로(東城路)와 서성로(西城路), 남성로(南城路), 북성로(北城路) 등 4개의 간선도로가 개설되었다.

중구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지역특화산업이 도심의 중심 상권과 결합하여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중구의 다양한 관광자원을 주제별로 연결하는 골목 투어 프로그램은 관광객이 도보로 구석구석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골목 투어는 5개의 코스로 나뉜다. 제1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이다. 이 길은 북성로와 서성로를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의 옛 지명 ‘달구벌’의 기원, 조선시대 행정 중심 도시로서의 모습, 근대 상업 발전의 근간 등 시대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제2코스는 ‘근대문화골목’으로,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길이다.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 3·1만세운동길, 대구 계산동성당, 대구제일교회, 민족시인 이상화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 약령시,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 에코한방웰빙체험관, 옛 대구의 번화가 종로, 화교소학교, 진골목으로 이어진다.

제3코스는 ‘패션한방길’로 동성로, 남성로를 중심으로 엮은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약령시가 있었던 약전골목, 교동귀금속거리, 주얼리 관람과 체험, 쇼핑이 가능한 패션주얼리전문타운, 동성로, 서문시장으로 연결된다.

제4코스는 ‘삼덕봉산문화길’로,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자원을 엮어 젊음과 예술의 거리를 주제로 한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담장 허물기 운동으로 유명해진 삼덕동 거리, 예술가들이 터를 잡은 방천시장, 가수 김광석(金光石: 1964~1996) 주제 벽화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갤러리와 공동품, 표구사가 밀집해 있는 봉산문화거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제5코스는 ‘남산100년향수길’로, 이국적인 건축물과 불교 · 기독교 · 천주교 · 유교 등 다양한 문화를 주제로 한다. 동구에 자리한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인 보현사(普賢寺), 천주교 순교 사적지인 관덕정순교기념관, 대구제일교회의 전신인 남성정교회에서 분립한 대구남산교회, 경상도관찰사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석을 보존하고 유학을 강학하던 상덕사(尙德祠)[문우관], 유럽풍 건축물인 성유스티노신학교, 프랑스 루르드 성모굴을 본떠 만든 성모당,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을 절충한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성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읍 · 면 · 동

중구는 57개 법정동과 12개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동은 동인동, 삼덕동,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대신동, 남산1동, 남산2동, 남산3동, 남산4동, 대봉1동, 대봉2동이며, 이 중 인구 규모가 큰 동은 남산4동과 성내3동 순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중구통계연보』(대구광역시 중구, 2023)
박진관, 『대구 지오그라피』(보물섬, 2018)
『중구 균형발전을 위한 마스터플랜: 대구 중심구의 선택』(대구광역시 중구, 2016)
향토사교육연구회,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 역사 인물 지명 전설 1』(영한, 2002)

논문

손병철, 「구한말 대구달성학교 설립과 운영의 실제」(『역사문화연구』 71,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9)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관가(官家)의 건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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