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

달성군청
달성군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대구광역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군.
정의
대구광역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경산시, 서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성주군·고령군, 남쪽은 청도군·경상남도 창녕군, 북쪽은 칠곡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21′∼128°42′,북위 35°36′∼35°56′에 위치한다. 면적은 426.67㎢이고, 인구는 26만 173명(2019년)이다. 행정구역으로는 6개 읍, 3개 면, 255개 행정리(9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에 있다.

자연환경

동부는 화산암 지대로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서부는 낙동강 연안을 따라 남북방향으로 길게 평야가 발달해 있고 곳곳에 구릉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동부산지는 비슬산괴(琵瑟山塊)와 용지산괴(龍池山塊) 및 최정산괴(崔頂山塊)로 나눠 볼 수 있다. 비슬산괴는 비슬산(琵瑟山, 1084m)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과 북쪽으로 청룡산(靑龍山, 794m)·산성산(山城山, 653m)·앞산(660m)·대덕산(大德山, 584m)에 이르는 산지이다. 최정산괴는 최정산(886m)을 비롯하여 그 동북쪽의 주암산(舟巖山, 846m)과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우미산(牛尾山, 636m)·삼성산(三聖山, 663m)·팔조령(八助嶺, 360m)에 이르는 산지이다. 그리고 가창면의 동쪽 경계의 용지산괴는 용지봉(628m)을 중심으로 남쪽방향으로 병풍산(屛風山, 571m)·동학산(動鶴山, 603m)·상원산(上院山, 670m)·팔조령으로 연결되는 산지이다.

서부에는 낙동강(洛東江)으로 흘러드는 하빈천(河濱川)·금호강(琴湖江)·진천천(辰泉川)·천내천(川內川)·기세곡천(奇世谷川)·금포천(金圃川)·현풍천(玄風川)·차천(車川) 등의 지류들이 있다. 그 하류 유역에는 하산(霞山)들·왕선(王先)들·쌀밋들·간경(干京)들·옥공(玉工)들·현내(縣內)들·구지(求智)들 등의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평야상에는 용산(龍山, 250m)·성산(城山, 274m)·박산(朴山, 218m)·와룡산(臥龍山, 300m)·궁산(弓山, 253m)·금계산(金溪山, 471m)·대방산(大方山, 378m)·대니산(戴尼山, 471m)등과 같은 잔구성 산이 솟아 있다.

기후는 대구와 유사하며 전형적인 내륙분지성 기후로서 한서의 차가 크며, 강수량은 적은 편이다. 연평균기온 15℃이고, 1월 평균기온 3.3℃, 8월 평균기온 27.6℃이며, 연강수량은 973.9㎜로 소우지역이다.

역사

청동기시대 구석기시대나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접지역인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과 화원읍 천내리 등지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무문토기·간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천내리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므로 청동기시대부터는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청동기문화가 발전하면서 주민의 수가 늘어나고 사회분화가 진행되면서 이 지역은 몇 개의 지역집단으로 나누어지고, 점차 소국(小國: 성읍국가) 단계로 성장하여 삼한시대는 변한에 속하였다. 현재 그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탁순국(卓淳國)을 화원일대에 비정하는 설이 나와 있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신라가 팽창하면서 이 지역의 소국들은 늦어도 5세기 말∼6세기 초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신라의 군현체제가 구축되면서 달성군일대는 위화군(喟火郡: 지금의 대구·가창면 일원)·다사지현(多斯只縣: 지금의 하빈면·다사읍지역)·설화현(舌火縣: 지금의 화원읍지역)·치성화현(雉省火縣: 지금의 공산동지역)·추량화현(推良火縣: 지금의 현풍읍지역) 등이 설치되어 상호 영속관계가 성립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전국적인 지명 개정에 따라 수창군(壽昌郡: 위화군의 개명)·하빈현(河濱縣: 다사지현의 개명)·해안현(解顔縣: 치성화현의 개명)·화원현(花園縣: 설화현의 개명)·현효현(玄驍縣: 추량화현에서 개명)으로 고쳐졌다. 또, 수창군이 하빈현·화원현을 영속하였으며, 해안현은 장산군(獐山郡: 지금의 경산)에 영속되었고, 현효현은 화왕군(火王郡: 지금의 창녕)에 속하였다.

특히, 현효현에는 지방군단인 10정(十停)의 삼량화정(參良火停)이 설치되어 군사적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839년(문성왕 1) 김우징(金祐徵)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 곳 달구벌전투에서 승기를 잡아 신무왕으로 즉위하였다.

후삼국시대 후삼국의 쟁패기에 달성군지역은 신라에 대해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고려와 후백제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유명한 공산전투(公山戰鬪)가 벌어져 김락(金樂)·신숭겸(申崇謙)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후삼국통일 후 태조 왕건(王建)의 지배체제 구축을 위한 전국적인 지명개정 때 수창군이 수성군(壽城郡)으로 고쳐졌고, 1018년(현종 9)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읍(屬邑)으로 되었으며, 해안현 역시 동경에 영속되었다. 또, 현효현은 고려 초에 현풍현(玄豊縣)으로 개명된 뒤 밀성군(密城郡)에 속하게 되었다. 또한 수성군의 속현이었던 화원현·하빈현은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에 내속되는 등 영속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고려 후기에는 각 행정단위에 수령(守令)이 파견되기 시작하면서 1390년(공양왕 2) 수성군에 감무가 파견되어 해안현을 겸장하였으며, 같은 해 현풍현에도 감무가 파견되어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을 예속하게 되었다.

한편, 1143년(인종 21) 경산부의 속읍이었던 대구현(大丘縣)에 현령이 파견되자 하빈현이 이에 영속되었으며, 그 뒤 하빈지역은 대구와 같은 행정적 변화를 겪었다. 달성군지역은 그 뒤 1232년(고종 19) 몽고의 침입을 받았으며, 1382년(우왕 8)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조선 건국 이후 대구현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져 1414년(태종 14) 수성현과 해안현까지 이에 영속함으로써, 현감이 파견된 현풍현과 경산부에 예속된 화원현을 제외한 달성군지역 일대가 행정적으로 대구에 속하게 되었다.

1419년(세종 1) 대구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1466년(세조 12)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정치적·군사적 비중이 높아져가면서, 드디어 1604년(선조 37) 경상도감영이 설치되었다. 이리하여 달성군지역도 감영소재지로서 경상도의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나아가 감영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화원현까지 대구에 이속되었다.

한편, 현풍현은 1457년(세조 3) 진관체제(鎭管體制)의 확정 이후 대구도(大丘道)의 좌익에 편입되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편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 지역은 사림파의 중심인물인 김굉필의 문인이 다수 배출된 곳으로 그를 배향하는 도동서원(道東書院)이 1604년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가 현풍현 사족과 백성들을 규합하여 현풍성(玄風城) 밖에서 왜적을 대파하여 보급망을 끊음으로써 그 뒤 경상우도에서의 승리의 발판을 닦았다.

1895년(고종 32) 전국적인 지방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달성군지역은 대구부 대구군과 현풍군으로 나누어졌고, 이듬해 13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5년 성주군 노곡면(盧谷面)이 현풍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구의 시가지가 대구부로 승격되면서 대구군의 나머지 지역과 현풍군이 통폐합되어 달성군으로 되었다.

대구시가 날로 팽창하면서 달성군의 관할지역은 계속 축소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와 인접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독립운동의 한 근거지가 되었다. 1915년 서상일(徐相日) 등이 주도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도 이 지역에서 태동하였으며, 1919년의 3·1독립만세운동에서도 4월 26일과 28일 공산면일대에서 채학기(蔡鶴基)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된 바 있다.

또 1922년 가창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으며, 곧 군내 전역으로 확대되어 월배·논공·해안 등지에서 소작조합이 조직되는 등 농민이 중심이 된 민족운동이 일어났다. 민족실력양성운동의 한 갈래인 청년운동도 활발하여 11개의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1946년 좌익의 교묘한 선동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10·1폭동은 곧 달성군으로 파급되어 경찰서가 습격당하는 등의 혼란사태가 일어났으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안정을 되찾았다.

대구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1958년 동촌·공산·가창·성서·월배면이 대구로 편입되었다가 1963년 동촌을 제외한 4개 면이 환원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성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7월 1일 대구시의 직할시 승격으로 월배읍·성서읍·공산면이 다시 대구로 편입되었다.

1989년 4월 3일 논공면 직할 공단출장소가 신설되었고, 1992년 3월 1일에는 화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3월 1일 군 전체가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으며, 1996년 9월 1일에 논공면이 읍으로, 1997년 11월 1일에 다사면이 읍으로 각각 승격되었다. 이 군은 대구시의 근교지역으로서 공단이 조성되고 농작물의 특수재배가 활발해지면서 날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낙동강변의 화원읍의 천내리지석묘군(대구광역시 기념물, 2006년 지정), 냉천리 지석묘군(대구광역시 기념물, 2006년 지정)와 성산리 민무늬토기산포지가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는 다사읍 죽곡리고분, 화원읍 설화리고분·성산리고분, 하빈면 봉촌리고분군, 현풍읍 성하리고분군 등이 있다.

삼국시대 성터로는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수로상의 요지에 있는 죽곡산성(竹谷山城)·문산산성(汶山山城)·노고성(老姑城)·구라동성지(九羅洞城址) 등이 있다. 와우산성(臥牛山城)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가 쌓았다고 한다.

불교문화재로는 가창면 우록리의 남지장사에는 남지장사청련암(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을 비롯하여, 오리의 운흥사(雲興寺)가 있으며, 옥포읍 반송리의 용연사의 경내에는 용연사극락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용연사석조계단(보물, 1971년 지정), 유가읍 양리의 유가사(瑜伽寺)경내에는 유가사의 도성암삼층석탑(道成庵三層石塔) 등이 있다. 그리고 용봉리의 달성용봉동석불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대견사지삼층석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현풍읍 상리의 현풍석빙고(보물, 1980년 지정), 유가사 석조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소재사 대웅전(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소재사 목조지장보살좌상(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2006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현풍읍 상리의 현풍향교와 현풍향교대성전(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를 비롯하여 구지면 도동리의 도동서원강당사당부장원(보물, 1963년 지정), 유가읍 가태리의 예연서원(대구광역시 기념물, 1995년 지정), 현풍읍 대리의 이양서원(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하빈면 묘리의 낙빈서원(洛濱書院), 다사읍 서제리의 용호서원(龍湖書院), 가창면 우록리의 녹동서원(鹿洞書院) 등이 있다.

사당과 비각으로는 하빈면 묘리의 육신사(六臣祠)·삼충각(三忠閣), 현풍읍 지리의 현풍곽씨12정려 등이 있고, 옥포읍 강림리에는 이철견신도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가 있다.

구지면 내리의 이노정(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옥포읍 기세리의 소계정(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하빈면 묘리의 태고정(보물, 1971년 지정)·달성 삼가헌 고택(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도곡재(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하산리의 달성하목정(보물, 2019년 지정), 가창면 정대리의 달성 조길방 고택(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 구지면의 관수정(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2004년 지정)이 유명하다.

또 화원읍 본리리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대구광역시 민속자료, 1995년 지정)는 동족마을로서 조선 말기의 민가 9동과 별당양식의 정자 2동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흙담에 의해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지면 내리의 제일강정(第一江亭)은 낙동강을 굽어보는 절경에 자리하여 유명하다.

가창면 대일리의 효종어전희우시회인물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가태리의 망우당선생문집책판(부)창의록책판(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존재선생실기책판(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이 있다. 또한 화원읍 본리리의 명심보감판본(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이 있으며, 현풍읍 지리의 서흥김씨(瑞興金氏) 세거지유물 등이 있다.

달성비슬산암괴류(천연기념물, 2003년 지정)은 다양한 종류의 지형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중요한 학술적 연구대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논공 천왕당(대구광역시 민속자료, 2006년 지정)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하향주(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가 있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현풍향교와 도동서원·이강서원(伊江書院) 등의 서원이 있었다. 현풍읍 상리에 있는 현풍향교는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후 중건되어 영조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고 현감 허고(許估)에 의해 중수되었다.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도동서원은 1604년(선조 37)에 설립, 사액되었으며 김굉필을 향사해왔다. 그 뒤 다사면 이천리의 이강서원이 1639년(인조 17)에 설립되었다. 또, 다사면 서제리의 용호서원이 1708년(숙종 34)에, 가창면 우록리의 녹동서원이 1791년(정조 15)에, 가창면 대일리의 옥계서원(玉溪書院)이 1798년에 각각 설립되었다.

이 밖에 낙빈서원·인흥서원(仁興書院)·이양서원(尼陽書院)·예연서원(禮淵書院) 등의 많은 서원이 있었다. 이들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도동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훼철되었다가 후대에 복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민족항일기에 화원초등학교가 설립되었을 뿐, 광복 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초·중등학교가 건립되었다. 2018년 기준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32개교,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9개교가 있다. 국립 특수 4년제 대학교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대구시립 달성도서관, 달성군민 독서실, 달성문화원이 있다. 대구시립 달성도서관은 약 7만 3,000권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달성군민들을 위한 휴식과 교양을 함께 제공하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달성군민 독서실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달성군민 모두에게 평생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제공된 문화공간이다. 2004년현풍읍 상리에 개관안 달성문화원은 문화정보습득, 문화예술활동, 문화동호회 활동 등 군민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규모 복합 문화체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민속

이 고장에서는 세시에 따라 민속놀이가 벌어지는데, 그 가운데 정월대보름의 달집사르기와 2월 초하루의 영등맞이가 대표적이다.

달집사르기는 청소년들이 산에 올라 고목과 솔잎 등으로 노(櫓)를 만들어서 달 뜨기를 기다려 불을 질러 태우는 놀이이다. 노 전체가 끝까지 고르게 타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중도에서 꺼질 때는 흉년이 든다고 한다.

영등맞이는 풍신(風神)인 영등할미를 맞아 부엌이나 장독대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며 소지를 올리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이 때 동네에 농악이 벌어져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 마당씩 밟아주는 ‘구걸’을 하면서 태평을 기원한다. 이 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이밖에 추석에는 줄다리기·지신밟기·농악 등이 벌어졌고, 농한기에는 머슴들이 호미자루를 모아 가마를 만들어 대장을 태우고 농악을 치며 돌아다니는 농부놀이를 벌였다.

이 고장의 동제는 대개 음력 정월에 지내며 제관은 예의바르고 단정한 40세 이상의 남성이 선출되어 일정기간 대문에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한다. 제일(祭日) 며칠 전부터 신성기간으로 하여 동네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임산부는 출타시키며 동구·신목에도 금줄을 치고 상고(喪故)가 나면 진행을 중지한다.

가창면 상원리는 음력 정월보름에 제사를 지내는데 5일에 제관을 선정한다. 선정방법은 다른 면과는 달리 천왕대를 쥔 사람이 신이 내려 찾아가는 집의 가장을 제관으로 삼는다.

제관은 11일부터 정문에 솔잎을 꽂은 새끼줄을 치고 잡인의 출입을 막으며 저녁마다 목욕재계하고 1년간 남의 집 밥을 먹지 않고 다른 집에 불이 나도 불끄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 14일 당 주위를 소제하고 금줄을 쳐서 잡인의 근접을 금하며 15일 자시에 마을의 무고함과 태평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설화가 풍부하게 전할 뿐 아니라, 주로 경상도일대에 퍼져 있는 이여송설화·지명유래담·사찰연기설화·효자설화·열녀설화·자연물관련설화 등도 전하고 있다.

이 고장이 달성이라고 이름지어진 데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 이 곳에 나무꾼 달성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좋지 않은 꿈을 꾼 달성이 아버지에게 문밖 출입을 삼가도록 권하였다. 이를 듣지 않은 아버지가 약초를 캐러 나갔다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몸져 누웠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다. 달성은 묘자리를 잘 쓰기 위해 절에 들어가 10년을 공부한 끝에 풍수지리에 통달하게 되어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시체를 지고 여기저기 다니다가 어느 집 장독 밑에 묻었는데, 이를 눈치 챈 집주인이 자기 아버지 시체로 바꿔 묻고 말았다.

그 묘자리는 3년 안에 후손들이 벼슬을 하게 되는 명당인데 3년이 지나도 아무 좋은 일이 없어 그 집으로 가보니 그 집은 번성하여 대갓집으로 변모하여 있었다. 달성은 시체가 바뀐 줄도 모른 채 장독 밑의 주인집 시체를 파내어 그 날 밤으로 일 년 안에 부자가 되는 다른 명당에 묻었다. 다음해 추석에 성묘하러 갔다가 그 집주인이 자기 아버지 묘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을 보고야 그 때까지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이에 주인남자는 자기 재산의 반을 나누어 드릴 터이니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달성은 또 다른 명당에 아버지 시체를 묻었다. 그러자 그는 과연 벼슬을 하고 자손이 번성하게 되니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고 달성영감이 유명해졌으며, 영감이 사는 마을을 달성골로 부르게 되었고, 뒤에 지명화되었다고 한다.

비슬산에는 전설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 중 「사효굴전설(四孝窟傳說)」이 유명하다. 유가면에 살던 곽노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네 아들을 데리고 비슬산 중턱의 사효굴로 피신을 하게 되었다. 평소에 기침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곽노인은 쉴 사이 없이 기침을 했는데 왜병이 굴 앞을 지날 때도 기침이 터지고 말았다. 왜구들이 굴속에 있는 사람은 빨리 나오라고 호통을 치자, 맏아들이 대신 나가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런 일이 네 번이나 거듭되어 마침내 곽노인만 남게 되었다. 다섯 번째는 곽노인이 직접 나가 왜병에게 아들 넷을 잃은 사연을 말하였다. 잔악한 왜구도 감동하여 곽노인의 등에 ‘효자의 아버지’라고 써 붙여 누구도 노인을 다치지 못하게 보호하라 하였다. 그 뒤 이 굴을 사효굴이라 하였으며 효자비를 세워 이들의 효성을 칭송하였다.

하빈면의 베틀바위에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은 여인의 애타는 심정이 얽혀 있다. 병자호란 때 남편이 의병으로 나가 소식이 없자 부인은 큰 바위 위에 베틀을 설치하고 남편을 기다리며 베를 짰다. 어느 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던 날 남편이 손짓하는 환영을 보게 되었다. 부인은 남편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뛰어가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낙동강에 빠져죽고 말았다. 그 뒤 이 바위를 베틀바위라고 하였다.

이 밖에도 남편을 따라 죽어서도 남편과 같이 묻히기를 열망한 열녀설화, 동생을 구하려다 타죽은 누이설화, 쌀이 나오는 구멍을 망친 상제설화 등 많은 설화가 전한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와 의식요가 많다. 농업노동요로 「모내기노래」는 교환창으로 부르면서, “모시적삼 속적삼속에/어이/분통겉은 젖을보소”라고 중간에 ‘어이’를 넣어 부르기도 한다. 사설은 보편적인 것들이 많고 “찰박찰박 찰수지비/사우야판에 다올랐네//요녀너할마니 어디로 가고/딸에동자 시겼던고.”라는 사설은 「수제비타령」이라 하여 따로 부르기도 한다.

「논매기노래」는 “(앞소리) 에∼헤 헤∼야∼조호∼호호∼야/에∼헤 헤∼야 (뒷소리) 조∼호∼호호∼이//에∼나락좋고∼논도짓네 …….” 등과 같이 풍부한 여음으로 부르며, 보리타작노래로는 「방아타령」을 쓰기도 한다.

산에 나무하러 가서 혼자 부르는 「어사용」은 “날같은 사람은/날만새면 지게지고/어느누가 날말리리 …… 내 팔자가 와 이렇노.”라고 신세한탄하는 사설이 중심을 이루기도 하고, “에∼에이∼야/이후후후∼/니러간다∼니러간다∼/지리산 갈가마구야 …….”라고 길고 구성지면서 여음을 위주로 부르는 것도 있다.

여성노동요로는 「베틀노래」가 있고 여러 노동에 두루 불리는 「진주낭군」·「시집살이노래」 등이 있다.

의식요 가운데 장례의식요는 하빈면·화원면에서 거의 완형으로 불린다. 「상여노래」는 평지를 갈 때, 오르막이나 위험한 곳을 지날 때, 쉬어가자고 권유할 때마다 알맞은 노래가 있고, 가락과 여음이 각기 다르다.

평지를 갈 때 하빈면에서는 “(앞소리) 어홍 어홍 어화넘차 어허어/(뒷소리) 어홍 어홍 어화넘차 어홍//(앞소리) 에∼간다 가네 나는 가네 어화넘차 에헤헤/(뒷소리)//에∼ 정든 집을 고만 두고 어화넘차 에헤헤/(뒷소리) ……”라고 한다.

화원면에서는 비슷한 사설에 뒷소리로 “어홍 어홍 어화넘차 어허허”를 사용한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앞소리) 앞방틀은/(뒷소리) 오호시야//낮차주고/오호시야//뒷방틀은/오호시야//어깨미고/오호시야//고이고이/오호시야//잘 모시소/오호시야 …….”라고 하여 작업지시와 함께 가락이 단조롭고 힘차게 변하며 여음도 단순해진다.

“천지가 진동해도/쉬어쉬어 재촉해도/그곳까지 가자시면/쉬어갈곳 전혀 없다 …….”라고 앞소리를 하면서 쉬어가자고 할 때 뒷소리는 “오∼호∼오시∼오”로 바뀐다.

봉분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래질과 달구질을 세 번씩 하는데 「가래질노래」는 「상여노래」와 같이 선후창으로 부르나 리듬이 빠르고 힘차다.

“(앞소리) 에이여차/(뒷소리) 에이여차//여차소리/에이여차//참 잘하지/에이여차//무얼 먹고 …….”라고 부르면서 흙을 넣고 난 뒤 다지는 작업이 달구질인데, 잘 다지자는 사설을 앞소리로 하고 “오호∼오 달이여”나 “오∼호∼오 다래야” 등으로 뒷소리를 제창한다.

세시의식요로는 정월보름 농악과 더불어 지신밟기에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대개 「성주풀이」 사설에 풍물을 잡히기도 하고 “에헤로 지신아”라는 여음을 뒷소리로 부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청춘가」·「노랫가락」등이 많이 불린다. 「정노래」·「권주가」·잡가 등은 대부분 「청춘가」·「노랫가락」의 가락에 얹어서 많이 부르는데 「모심기노래」 사설이 섞여 있는 것도 있다.

산업·교통

전체 면적 426.67㎢ 중 임야는 256.91㎢를 차지하며, 경지면적은 79.6㎢로 그 가운데 논·밭의 비율은 72 : 28로 논농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낙동강 연안에 발달한 넓은 평야를 이용해 벼농사가 활발하며, 그 밖에 보리·콩 등의 재배도 이루어진다.

군은 대구의 근교농업지역으로서 일찍이 작물농업과 비닐하우스 농업이 발달하여 배추·무·참외·수박·마늘·고추·양파·토마토 등의 채소류 외에도 특히, 참깨와 같은 특용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축산업도 근교농업의 일환으로 한우는 구지면, 젖소와 염소는 가창면, 돼지와 닭은 하빈면 등을 중심으로 많이 사육되고 있다.

달성군의 산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2008년 현재 총 1만 803개 업체 중 제조업이 2,822개 업체(26.1%)로 가장 많고, 도·소매업이 2,123개 업체로 19.7%, 숙박 및 음식점업이 1,685개 업체로 15.6%, 운수업이 1,264개 업체로 11.7%의 비중을 차지한다.

광업은 현재 3개 업체가 행해지고 있으며, 2000년부터 매년 7억∼8억 원 정도의 생산을 올렸으나 2004년에 약 12억 8000만 원의 생산을 올려 과거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업은 달성1·2차산업단지와 현풍기계공단으로 3개의 지방산업단지과 옥포농공단지·구지농공단지인 2개의 농공단지가 조성돼 있다. 지방산업단지는 총 7.079㎢ 면적에 334개 업체가 입주해있고, 농공단지는 64개 업체가 입주해있다. 그 밖에도 성서4차산업단지가 달서구와 달성군에 걸쳐 현재 조성 중이고, 대구테크노폴리스도 대규모의 면적에 조성중이다.

상업에서는 1960년대까지는 전통적인 정기시장(5일장)이 상업활동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했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유통구조의 근대화로 현대적인 상설시장·백화점·쇼핑센터·전문상품점·슈퍼마켓·각종 연쇄점·농협공판장·농협직매점 등과 같은 다양한 현대적인 유통기관이 개설되고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5일장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1970년대에는 8개의 5일장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1·6일에 화원읍 천내리에서 열리는 화원시장, 3·8일에 논공읍 금포리에서 열리는 금포시장, 4·9일에 옥포읍 기세리에서 열리는 옥포시장, 5·10일에 현풍읍 원교리에서 열리는 현풍시장, 3·8일에 구지면 창리에서 열리는 구지시장 등 총 5개 시장이 열리고 있다.

이에 비해서 그 동안에 현대적인 상품유통기관이 크게 발달되어 온 곳은 인구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화원읍과 논공읍 및 현풍읍이다. 금융기관·의료기관·음식점 등과 같은 각종 서비스업체도 이들 3개 읍·면에서 집중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교통은 대구시가지에 인접해 있는 관계로 매우 편리하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광주대구고속도로 등이 통과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 고속도로들은 인접한 대구의 금호인터체인지를 통해서 경부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로 쉽게 연결된다.

관광

낙동강과 비슬산을 배경으로 곳곳에 명승지가 많아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화원읍의 화원동산, 논공읍의 달성공단·약산온천, 가창면의 에코테마파크 대구숲(옛 냉천자연농원)·남지장사·정대리 숲, 다사읍의 다사8경·강정유원지, 하빈면의 육신사 및 태고정·하목정·하산유원지, 옥포읍의 용연사, 현풍읍의 현풍휴게소, 유가읍의 비슬산과 자연휴양림·유가사, 구지면의 도동서원·제일강정 등이 유명하다.

특히,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곳은 화원동산·스파밸리(옛 냉천자연농원)·용연사, 비슬산과 자연휴양림이다. 화원동산은 화원읍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낙동강변에 있는 성산의 기슭에 조성된 관광·유희시설이다. 본래 이 곳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그 물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된 성산의 서단(西端)절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부터 유원지로 개발·이용되었으나, 근년에 민간기업에 의해 성산의 기슭에 식물원·운동시설·유희시설 등을 갖춘 관광·레저시설 단지가 개발되어 화원동산으로 불리고 있다. 이 곳에는 특히 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스파밸리(옛 냉천자연농원)은 가창면 냉천(冷川) 유원지 인근의 최정산 기슭에 개인이 조성한 10만 평 규모의 사설(私設)공원이다. 이곳에는 동물원·민속촌·유희시설·휴양시설·운동시설·각종 편익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대구시민이 주말에 즐겨 찾고 있는데, 특히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이 이용한다.

용연사와 유가사는 모두 비슬산군립공원내 비슬산자락에 있는 고사찰이다. 이 두 사찰은 주변에 수려하고 울창한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비슬산군립공원 개발계획으로 조성된 유가읍 용리에 있는 비슬산 자연휴양림과 비슬산의 정상에 있는 대견봉·대견사지(大見寺址)·조화봉 등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기 위해서 연중 많은 탐방객과 등산객이 줄을 잇고 있다.

가창면 오리부터 정대 비슬산 헐티재까지의 주변경관은 산세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으로 대구시민들의 일일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청정미나리와 참꽃이 싱그러운 봄, 맑고 청정한 물이 흐르는 여름 정대계곡은 장관을 이루며 특히 가을철에는 계곡 전체가 오색 단풍이 어우러져 정겨운 연인과 함께 또는 가족들이 가볼 만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또한 정대리에 있는 대구미술광장에서 미술창작체험활동을 함께 맛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창면 용계리에 만들어진 힐크레스트는 국내 최대 규모 (약 3,000평)의 허브가든을 중심으로 숲, 물, 계곡, 조명, 음악과 체험, 문화시설이 결합된 종합 Well·being Park로 다양한 지역 문화 개발 및 육성 사계절 Season Event 실시에 따른 새로운 자연테마공원이다.

읍·면
  1. 논공읍(論工邑)

군의 서부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 43.87㎢, 인구 2만 1680명(2015년 현재)이며, 읍 소재지는 금포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현풍현(玄風縣)과 현풍군 논공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풍군이 달성군으로 통폐합됨에 따라 논공·노장(蘆長)·걸산(乞山) 등 3개 면이 논공면으로 개편되었다.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96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2005년에 달성군청이 논공읍 금포리로 이전하였다.

지형은 동부와 중앙부가 구릉성 산지이고, 나머지 지역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동북부의 옥포읍 경계에 금계산(金溪山, 471m)이 읍에서 가장 높은 만큼 저산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북부와 서부 및 남부에는 각각 금포천 하류 유역에 형성된 옥공(玉工)들(속칭 마갯들), 위천(渭川)들, 그리고 남리·북리·본리리 일대 평야 등의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돼 있다.

임야의 비율은 49%에 지나지 않고, 경지(23%) 및 기타 용도로 이용되는 토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수박·참외·오이 등의 비닐하우스 재배가 많이 행해지며 특히 논공 토마토는 대구 근교에서 최초로 토마토를 재배한 지역으로서 특산물로 각광받고 있다.

논공읍의 산업은 달성지방산업단지(124만평)를 중심으로 상리공단 등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공업 및 상업·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달성군의 최대 공업단지를 이루고 있다. 공업은 1983년에 조성된 달성 지방공업단지가 있어 군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이다. 상업 및 서비스업은 공단주변의 남리·북리와 읍 소재지인 금포리를 중심으로 발달돼 있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과 광주대구고속도로가 통과하고, 대구∼창원간 국도5호선과 대구∼군산간 국도 26호선이 위천에서 교차하며, 여기에 여러 지방도와 군도가 연결되어 있다.

행정구역은 금포(金圃)·노이(蘆耳)·삼리(三狸)·위천(渭川)·상(上)·하(下)·남(南)·북(北)·본리(本里) 등 9개의 법정리 및 26개 행정리가 있다.

  1. 다사읍(多斯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6.65㎢, 인구 6만 3742명(2015년 현재)이며 읍 소재지는 매곡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대구도호부의 속현인 하빈현의 하동(河東)·하남(河南)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이 다사면으로 통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9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2001년에 서재리에 서재출장소를 설치하였으며, 2003년에는 다사읍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였다.

지형은 동부와 서북부에 구릉성 산지가 발달돼 있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이 평야로 되어 있다. 동부에는 와룡산(臥龍山, 300m)·궁산(弓山, 253m)이 있고, 서북부에는 칠곡군 지천면에서 뻗어 나온 마산산령(馬山山嶺)의 남단부에 용산·성산(城山, 274m)·박산(朴山, 217m) 등이 있다. 남부 낙동강변에는 낮은 취모봉(醉帽峯, 일명 죽바위산, 137m)이 솟아 있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호강의 하류가 면의 중앙부와 남부를 흐르고 있어 각각 세천(世川)들과 왕선(王先)들로 불리우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돼 있다.

임야면적은 다사읍 전체 면적의 52%를 차지하는 반면, 경지 비율은 26%에 그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와 함께 근교농업으로 수박·참외·오이, 기타 채소류의 재배가 성하고 축산업으로는 양계업이 다소 행해지고 있다.

공업은 섬유업이 중심업종이고, 그 밖에 비금속, 금속·기계, 화학, 기타 등의 제조업도 다소 입지하고 있다. 최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서지구에 이어 아파트 단지 건립이 많아져 상업·서비스업도 발달 추세에 있다.

교통은 대구∼성주간의 국도가 동서로 통과하고, 여러 군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달성군에서 유일하게 경부선다사방천∼대구 상리동 경계까지 1.8㎞의 철도가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죽곡리에 고분·죽곡산성, 문산리에 성지, 세제리에 용호서원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매곡(梅谷)·이천(伊川)·달천(達川)·박곡(朴谷)·방천(坊川)·서제(鋤齊)·세천(世川)·죽곡(竹谷)·부곡(釜谷)·문양(汶陽)·문산(汶山) 등 법정리 11개와 행정리 46개가 있다.

  1. 화원읍(花園邑)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 27.67㎢, 인구 5만 2386명(2015년 현재)이며 읍 소재지는 천내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대구도호부의 화원내면(花園內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새로 생긴 달성군의 화원면으로 개편되었고, 1992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동부는 비슬산줄기의 산사면에 해당돼 산지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비해, 서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흘러드는 진천천과 천내천의 하류 주변에 쌀밋들이라는 넓은 충적평야로 되어 있다.

토지이용에서는 임야가 전체 면적의 61%를 차지하고, 경지는 18%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지역과 인접하고 있는 관계로 공업과 상업·서비스업이 주가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가을배추와 무이다. 공업은 대부분이 섬유업이고, 그 밖에 화학·식료·금속기계·비금속 등의 업체도 상당수 입지해 있다. 상업 및 서비스업은 최근의 인구증가와 함께 읍 소재지인 천내리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교통은 남북 방향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과 광주대구고속도로의 대구진입도로와 국도가 통과하며, 동서로 포장된 군도에 의해 낙동강의 사문진교를 통해 고령군과 성주군으로 연결되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천내리에 지석묘, 설화리에 고분, 성산리에 민무늬토기산포지, 본리리의 인흥서원에는 명심보감판본·남평문씨본리세거지도 있다.

행정구역은 천내(川內)·구라(九羅)·성산(城山)·설화(舌化)·명곡(椧谷)·본리(本里) 등 6개 법정리와 46개 행정리가 있다.

  1. 가창면(嘉昌面)

군의 최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111.16㎢, 인구 8,483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용계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대구도호부의 상수남면(上守南面)과 상수서면(上守西面)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이 가창면으로 통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다. 1958년 대구시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다시 환원되었다. 이후 1995년에 달성군과 함께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지형은 거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는데, 동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높이 500∼600m의 여러 산봉우리로 이어져 있는 용지산괴(龍池山塊)의 서사면(西斜面)을 이룬다. 서부는 비슬산(1,084m)의 북부 산줄기 동사면에 해당하며, 중앙부와 남부는 높이 600∼900m사이의 여러 산으로 연결된 최정산괴와 팔조령(八助嶺)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야로는 용지산괴와 최정산괴의 사이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新川)의 주변에 좁게 발달한 곡저평야뿐이다.

토지이용은 임야가 전 면적의 85%를 차지하고, 농경지는 8%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은 농축산업과 소비성 서비스업이 중심적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수·채소류이며 젖소·한우와 염소의 사육도 활발하다.

공업은 비금속·섬유·기계·기타업종이 다소 행해지고 있다. 상업은 대구시가지와 인접하고 구매인구가 적어서 시장도 없을 만큼 취약하다.

교통은 대구와 청도간의 지방도가 통과하고 있어 대구로의 접근이 양호하고, 청도로의 관문인 팔조령 밑으로 팔조령터널이 개통되어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정대리에 조길방가옥, 대일리에는 옥계서원과 달성서씨문중의 효종어전희우시회 인물도, 우록리에 녹동서원·남지장사청련암, 오리에 운흥사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용계(龍溪)·오(梧)·정대(亭垈)·냉천(冷泉)·행정(杏亭)·상원(上院)·단산(丹山)·대일(大逸)·주(蛛)·옥분(玉盆)·삼산(三山)·우록(友鹿) 등 법정리 12개, 행정리 26개가 있다.

  1. 구지면(求智面)

군의 최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9.83㎢, 인구 7,503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창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현풍현, 1895에는 현풍군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풍군이 폐지되고 구지(求智)·사동(沙洞)·오설(烏舌)·산전(山田) 등의 면이 구지면에 병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달성군과 함께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북부의 현풍읍과의 경계에 대니산(408m)의 산줄기가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지만, 그 외 지역에는 낙동강 연변의 오설(烏舌)들과 응암(鷹巖)들 및 차천(車川)중류 유역의 평촌(坪村)들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돼 있다.

토지 이용은 임야와 농경지의 비율이 각각 39%와 38%로 비슷하게 나타날 정도로 농경지가 상대적으로 넓다. 산업은 농업이 중심적인 산업이다. 전 가구의 60%, 전 인구의 58.6%(1995년 현재)가 농업에 종사할 만큼 농업의 비중이 높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감자·배추·무·수박·오이·양파·마늘·토마토·참깨·땅콩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축산업도 발달하여 한우는 군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양계와 양돈도 활발한 편이다. 공업은 구지농공단지와 더불어 목단, 유산, 응암, 내리등에 걸친 82만평의 달성2차 산업단지 조성으로 제조업의 발달이 활성화되고 있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과 지방도가 통과하고, 여기에 여러 군도가 이어져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도동리에 도동서원의 강당과 사당부 장원, 내리에는 제일강정과 이로정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창(倉)·응암(鷹巖)·고봉(高峰)·가천(加川)·평촌(坪村)·예현(禮峴)·유산(柳山)·목단(牧丹)·대암(臺巖)·내(內)·화산(花山)·수리(修里)·징(迲)·오설(烏舌)·도동(道洞) 등 법정리 15개와 행정리 29개가 있다.

  1. 옥포읍(玉浦邑)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48.93㎢, 인구 1만 3,936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본리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대구도호부 현풍현 관내의 옥포면(玉捕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포면·법화면(法化面)·성평곡면(省平谷面) 등이 옥포면(현 옥포읍)으로 통합돼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에 달성군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최동부는 비슬산(1,084m)의 북부산지 서사면에 해당돼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고, 이 산지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기세곡천(奇世谷川)의 상류유역에는 높이 100∼200m의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중앙부에는 대방산(大方山, 378m)·금계산(金溪山, 475m)과 같은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서부에는 기세곡천의 하류에 형성된 간경(干京)들(또는 한밭들)과 그 남쪽의 옥공(玉工)들과 같은 넓은 충적평야가 있다.

토지 이용은 임야가 55%이고, 농경지는 34%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수박·참외·토마토·오이·무 등의 비닐하우스 재배가 활발하며, 한우 사육도 많은 편이다. 공업은 옥포농공단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섬유와 금속·기계업이 주요 업종이다. 그밖에 서비스업(숙박·음식점업)도 발달돼 있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 및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같이 통과하고, 또한 국도와 군도가 연결되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반송리에 용연사 극락전·석조계단, 강림리에 이철견신도비, 기세리에 소계정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본리(本里)·신당(新塘)·교항(橋項)·강림(江林)·송촌(松村)·간경(干京)·기세(奇世)·반송(盤松)·김흥(金興) 등 법정리 9개, 행정리 18개가 있다.

  1. 유가읍(瑜伽邑)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57.26㎢, 인구 6,987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금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현풍현 관내의 유가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풍군이 폐지됨에 따라 유가면이 인근의 우만면(雩滿面)·말적면(末赤面)·동부면(東部面) 등의 관할에 있는 일부 지역과 병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으나,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동부는 비슬산괴의 남부지역에 속해 비슬산과 조화봉(1,058m)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서사면 산지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 서부는 낙동강의 지류인 현풍천과 차천의 상류유역으로 각각 쌍계(雙溪)들과 금리(琴里)들로 불리는 소규모의 평야로 되어 있다.

임야로 이용되는 토지가 72%인데 비해 농경지는 19%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를 비롯하여 양파·고추의 생산이 많으며, 가축으로는 한우·젖소·닭·염소의 사육도 활발하다. 그러나 공업은 취약한 편이다. 최근에 비슬산 등산로 입구를 중심으로 숙박·음식점업이 발달하고 있다.

교통은 대구∼창원간의 국도가 통과하고, 여기에 여러 군도가 연결돼 있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양리에 유가사, 용봉리에 석불입상·대견사지삼층석탑, 가태리에 망우당선생문집책판부창의록책판(忘憂堂先生文集冊板附倡義錄冊板)과 존재선생실기책판(存齋先生實記冊板) 및 예연서원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금(琴)·음(陰)·양(陽)·용봉(龍鳳)·쌍계(雙溪)·초곡(草谷)·상(上)·유곡(油谷)·도의(道儀)·가태(佳泰)·한정(寒亭)·본말(本末) 등 법정리 13개, 행정리 20개가 있다.

  1. 하빈면(河濱面)

군의 최서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 36.70㎢, 인구 4,360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현내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대구도호부의 속현인 하빈현의 하북(河北)·하서(河西)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빈면으로 통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입되었고,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동부와 서북부에 300m 미만의 구릉성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은 평야로 되어 있다. 동부에는 다사읍과의 경계지대에 마천산령(馬川山嶺)의 낮은 산(용산·성산)이 남북 방향으로 산줄기를 이루고 있고 서북부에는 역시 마천산령에서 뻗어 나온 구봉산(九峯山, 191m)이 있다. 이 두 산지 사이에 북쪽에서 남쪽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빈천의 유역에는 상류에 대평(大坪)들, 하류에는 하산(霞山)들과 같은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토지이용은 임야가 50%, 농경지가 33%에 달한다. 벼를 비롯한 배추, 참외, 고추등의 생산량이 많으며, 특히 하빈 참외는 서울 농산물 시장에서도 알아주며, 닭, 돼지, 젖소 사육농가가 많다. 공업은 비금속제품의 기와·도자기·벽돌 위주로 약간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변산∼대구간의 국도, 적중∼해평간의 지방도, 이천∼현내 간의 이현도, 하빈∼신리간의 군도가 대구, 성주, 왜관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봉촌리에 고분, 묘리에 도곡재를 비롯하여 낙빈서원·태고정과 전통가옥인 삼가헌(三可軒), 하산리의 하목정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현내(懸內)·하산(霞山)·묘(竗)·기곡(基谷)·대평(大坪)·무등(武等)·감문(甘文)·동곡(桐谷)·봉촌(鳳村) 등의 법정리 9개, 행정리 19개가 있다

  1. 현풍읍(玄風邑)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 24.56㎢, 인구 1만 3670명(2015년 현재)이며 면 소재지는 부리이다. 본래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현풍현(玄風縣)에 속했으나 1895년에 현풍군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풍군이 폐지되고 종전의 현내면(縣內面)·마산면(馬山面)·서부면(西部面)·모로촌면(毛老村面) 등이 현풍면(현 현풍읍)으로 병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지형은 대부분이 평야로 되어 있다. 북부에는 비슬산 산줄기의 동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200∼400m 의 낮은 산지가 있고, 남부에는 구지면과의 경계지대에 대니산(戴尼山, 408m)이 있다. 그 나머지 지역은 낙동강에 흘러드는 현풍천과 차천(車川)의 하류유역으로서 현내들(현풍들)이라고 부르는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토지이용은 임야가 33%, 농경지는 39%이다. 산업은 농업과 상업·서비스업이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이외에 마늘·양파의 생산도 많고, 가축으로는 한우와 닭의 사육도 활발하다. 공업은 현풍기계산업단지, 구지농공단지, 달성산업단지 조성으로 이 지역의 산업 뿐만 아니라 상업·서비스업 및 교통 등 많은 분야가 함께 활성화되었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이 북에서 남으로 향해 뻗어 있는데 낙동강변 성하리에는 현풍휴게소가 1977년 구마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세워졌고 구마 5번 국도는 4차선으로 역시 북에서 남으로 현풍소재지를 관통하고 있으며, 진주로 가는 지방도로는 차천(원교리)의 구마국도에서 서쪽으로 향해 뻗어 있다. 문화유적은 성하리에 고분, 상리에 석빙고·현풍향교와 대성전, 대리에 이양서원, 지리에 현풍곽씨12정려 등이 있다.

행정구역은 부(釜)·상(上)·중(中)·하(下)·성하(城下)·원교(院橋)·자모(自慕)·오산(午山)·지(池)·대(大)·신기(新基) 등의 법정리 11개, 행정리 25개가 있다.

참고문헌

『달성군통계연보』(대구광역시 달성군, 2008)
『문화유적분포지도』(대구광역시·재단법인 영남문화재연구원, 2006)
『군정백서』(대구광역시 달성군,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향토사교육연구회, 2002)
『대구시사』(대구광역시, 1995)
『대구행정구역변천사』(대구광역시, 1995)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대구광역시(www.daegu.go.kr)
달성군(www.dalseong.daeg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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