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는 대구광역시 동남부에 위치한 구이다. 동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남쪽은 달성군, 서쪽은 남구와 중구, 북쪽은 동구와 접하며,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형이다. 농업·제조업의 비중이 낮고 3차산업이 중심을 이루는 전형적인 도시형 지역으로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다. 범어네거리를 중심으로 금융·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관광은 지역문화와 연계된 특성이 두드러지며, 수성못 유원지와 들안길 먹거리타운이 랜드마크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6.54㎢, 인구는 40만 9107명이다. 수성구청은 범어동에 있다.
대구광역시 동남부에 위치한 수성구는, 동쪽은 경상북도 경산시, 남쪽은 달성군, 서쪽은 남구와 중구, 북쪽은 동구와 접한다.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8°35´128°43´, 북위 35°48´35°87´이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형의 특징이 나타난다.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낮고 3차산업이 중심을 이루는 전형적인 도시형 지역으로, 도 · 소매업 · 보건 · 교육 · 숙박 · 정보통신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달구벌대로, 대구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의 개통으로 교통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범어네거리를 중심으로 금융 ·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관광은 지역문화와 연계된 특성이 두드러지며, 대표적으로 수성못 유원지와 들안길 먹거리타운이 대구의 랜드마크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면적은 76.54㎢로, 동서 간 길이는 12.2㎞, 남북 간 길이는 9.8㎞이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40만 9107명이다. 행정구역은 23개 행정동과 26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성구청은 범어동에 있다.
수성구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남고북저형의 특징이 나타난다. 남쪽은 산성산(山城山: 653.4m), 용지봉(龍池峰: 633.8m), 대덕산(大德山: 603.7m), 병풍산(屛風山: 567.7m), 성암산(聖岩山: 472.3m) 등으로 이어지는 용제산괴(龍祭山塊)가 둘러싸고 있다. 북쪽 지역은 형제봉(兄弟峯: 190m), 모봉(母峰: 149.8m), 두리봉[212.8m], 고산(孤山: 92m) 등 낮은 구릉지와 완만한 지형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신천(新川)에서 동쪽으로 남부정류장까지는 신천의 범람으로 인해 형성된 충적평야가 도심지를 이루고 있고, 남부정류장을 지나 시지동까지는 해발고도 100~200m 전후의 구릉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시지동에는 대덕산의 곡구에서 부채꼴 모양의 평탄한 선상지가 펼쳐져 있다.
하천은 대부분 남쪽의 높은 산지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지류 하천으로, 신천과 범어천, 매호천 등이 있다. 이 지류 하천들은 동구와 경계를 지으며 동에서 서로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에 합류한다. 금호강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매봉산 기슭 문암지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며 달성군 강창 나루터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수성구 동쪽 지역을 흐르는 욱수천은 병풍산 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북동 방향으로 흘러서 남천에 합류한다.
수성구에는 수성못을 비롯하여 구천지, 욱수지, 연호지, 모산지, 망월지, 가전지, 구라지, 외지, 내지, 서당지, 내관지 등 다수의 크고 작은 저수지가 분포한다.
수성구는 대구광역시의 기후 특성과 유사하게 겨울에는 춥고 여름은 무더운 내륙 분지형 기후 특성을 가진다. 2021년 연평균기온은 14.6℃, 월평균기온은 7월이 26.9℃로 가장 높고, 1월이 0.5℃로 가장 낮다. 연평균강수량은 910㎜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연평균강수량의 편차가 큰 편이다.
파동 신천 변에 있는 바위그늘[암음(岩蔭)]은 크기가 높이 3m, 가로 8.5m 정도이며, 화강암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위쪽에 돌출부가 있고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생활 유적이다. 2000년에 발굴된 파동 바위그늘의 문화층 중 최하부층에서 구석기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하천 자갈이 발견되었다. 이는 2006년 달서구에서 발굴된 1만 3000점의 구석기 유물과 함께 구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상동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으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상동과 두산동, 그리고 욱수천 유역에서 발견되었고, 시지동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선사 유적은 대구광역시의 남쪽 경계인 팔조령에서 발원하여 대구분지를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금호강과 합류하는 신천 주변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위화군(渭火郡) 또는 상촌창군(上村昌郡)이었다가,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수창군(壽昌郡)으로 바뀌었으며, 가창(嘉昌)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
고려 전기에 수성군(壽城郡)으로 바뀌었고, 1018년(현종 9)에 수성군사(壽城郡司)로서 경주에 속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해안현(解顔縣)을 겸하여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전기인 1394년(태조 3)에 대구겸관으로 삼았다가 1414년(태종 14)에 다시 대구에 합속(合屬)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수성현사(水城縣司)로 대구임내(大邱任內)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달성군 수성면으로 편제되었다. 1938년 수성면 전체 14개 동이 대구부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효목동을 제외한 과거 수성면 지역과 파동을 동구에서 분리하여 수성구(壽城區)로 신설하였다.
수성구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유적에서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유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분포하여, 오래전부터 사람이 거주해 온 곳임을 보여 준다. 1990년대 대규모 택지 개발 등 도시개발 과정에서 실시된 문화유산 조사에서도 다수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매호동과 사월동, 시지동 일대의 ‘고산지대 고인돌’을 비롯하여 가천동, 만촌동, 상동, 욱수동, 이천동, 중동, 파동 등지의 고인돌과 생활 유적이 있다. 옥산동 토기 가마, 가천동 돌덧널무덤, 주거지와 구상 유구도 확인되었다. 이 밖에 두산동에서는 집자리 1기, 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1기, 기둥구멍이 발굴되었고, 만촌동에서는 나무널무덤 유구가 조사되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인 상동지석묘군(上洞支石墓群)은 신천을 따라 형성된 주1 위에 나란히 분포해 있어 ‘신천 우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초기에는 신천의 좁고 긴 자연제방을 따라 동서 장축으로 무덤을 배치하였으나,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양쪽에 남북 장축의 무덤을 추가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의 구조는 구덩식[수혈식(竪穴式)]뿐 아니라 앞트기식[횡구식(橫口式)]도 확인되었으며, 시신을 안치하는 검받침[屍床]을 설치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사월동지석묘군(沙月洞支石墓群)[대구광역시 기념물]은 바둑판식으로 4기가 무리 지어 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1.72.37m, 너비는 1.11.6m이며, 받침돌 높이는 0.7m~1.27m 정도이다. 무리 지어 있는 고인돌을 이 지역 사람들이 ‘칠성바위’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모두 7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고분군이다. 가천동, 고모동, 노변동, 대흥동, 두산동, 만촌동, 성동, 시지동, 신매동, 욱수동, 파동, 수성구 삼덕동 등지에 삼국시대 고분군이 분포한다. 이 중 대구파동고분군(大邱巴洞古墳群)은 법이산(法伊山: 334.2m) 서쪽 구릉 말단부에 있다. 10여 기의 봉토분이 대체로 일렬로 분포한다. 대구파동고분군에서는 토도류와 금속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적 내에서 출토되는 토기로 보아 고분군은 5세기에서 6세기 초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욱수동과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에 걸쳐 삼국시대 토기 가마 유적이 확인되었다. 41기의 토기 가마가 조사되었고, 지하식, 반지하식, 지상식 구조의 토기 가마와 배수로, 폐기장, 채토장, 수혈, 기둥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욱수동, 경산시 옥산동 유적인 토기 가마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운영되었는데, 지역 최대 규모의 토기 생산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유적 중에는 성동토성(城洞土城)[고산산성]과 욱수동산성(旭水洞山城) 등이 있다. 성동토성은 성동에 있다. 성동토성의 둘레는 1.5㎞이며, 주2과 주3이 혼합된 형태이다. 성안에는 연못인 모산지와 함께 가마터 등이 확인되며, 구릉 내부 평탄지에는 여러 곳의 건물지 흔적이 확인된다. 욱수동산성은 욱수동 자양산 정상부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이다. 유사시 다수의 인원이 입보 항쟁할 수 있는 성곽이자 경산 지역을 포함한 금호강 유역을 관찰할 수 있는 거점 성이다.
조선시대 유적으로는 대구 법이산 봉수대(大邱 法伊山 烽燧臺)[대구광역시 기념물),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관리들의 공적을 기리는 여러 기념비가 있다. 이 가운데 법이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부터 사용된 군사 통신시설로, 낮에는 연기[晝煙], 밤에는 불빛[夜火]을 이용해 신속히 정보를 전달하였다. 방호벽의 외부 둘레는 106.5m에 달해 다른 봉수대에 비해 규모가 크며, 유구의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만촌동에 위치한 영남제일관은 대구읍성(大邱邑城)의 남문이다. 대구읍성은 1590년(선조 23)에 처음 축성할 당시에는 토성(土城)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무너진 뒤 1736년(영조 12)에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다. 읍성에는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정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북문은 공북문(拱北門), 남문이 바로 영남제일관이다. 이들 성문은 1906년(광무 10) 읍성이 철거될 때 함께 사라졌으며,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화유산 가운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에는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대구부수성비(大邱府修城碑),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李公制碑 및 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 등이 있다.
영영축성비는 수성구 만촌1동에 위치한다.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민응수(閔應洙: 16841750)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대구읍성을 복원한 후, 그 규모와 공사 과정을 기록하여 1737년(영조 13)에 세운 것이다. 대구부수성비는 영영축성비와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고종(高宗: 18521919) 때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 1806~1884)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비문에는 공사 내용과 유공자 포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관리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로, 조선 후기 지역 사회의 정치 · 사회적 상황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중 오천서원(梧川書院)은 파동에 위치한다. 조선 성종(成宗: 14571494) 때 대사헌을 지낸 대봉(大峰) 양희지(楊熙止: 14391504)를 추모하기 위하여 1744년(영조 20)에 건립되었다. 만촌동의 독무재(獨茂齋)[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는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夏時贊: 17501828)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들이 건립한 것이다. 성동의 고산서당(孤山書堂)은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講)을 했다는 기록을 볼 때 1500년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24년 4월 1일 기준 수성구의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4개, 중학교 23개, 고등학교 17개가 있고, 기타 특수학교로 대구남양학교, 전문대학으로 수성대학교가 있다.
대구남산고등학교는 1907년(융희 1)에 신명여학교로 개교하였다.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는 1910년에 대구공립농림학교로 개교하였다. 경북고등학교[1916년], 대륜중학교 및 대륜고등학교[1921년], 능인중학교 및 능인고등학교[1939년]는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학교들이다. 수성구에 위치한 여러 교육기관은 1980년대 이후 수성구 신규 도시개발과 함께 개교한 학교들이다.
대구남산고등학교는 1907년 미국의 기독교 선교사 마샤 스콧 브루언(Martha Scott Bruen)[한국 이름: 부마태]이 설립한 신명여학교가 전신이다. 1950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었고 1953년 학제 변경으로 대구남산여자고등학교로 개칭하였다. 개교 당시에는 여학교였으나 2003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였다.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는 1910년 대구공립농림학교로 출발하였다. 학제 변경에 따라 여러 차례 교명을 변경하였고, 2015년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2017년 2월 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로 변경하였다.
경북고등학교는 1916년 관립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25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이후 교명을 대구고등학교로 변경하였다가 1953년 경북고등학교로 바꾸었다. 1967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야구의 명문이 되었다.
대륜고등학교는 1921년 설립된 교남학원을 전신으로 한다. 1924년 교남학교로, 1942년 대륜중학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1950년에는 대륜고등학교를 병설하였다. 이후 1979년에 중 · 고등학교가 분리되어 현재의 대륜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능인고등학교의 전신은 1939년 경상북도 영천 은해사(銀海寺) 경내 백련암(白蓮庵)에서 개교한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오산불교학교이다. 이 학교는 1945년 오산농림실수학교로, 1946년 능인중학교로 개편되었고, 1951년 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능인고등학교로 개칭되었다.
수성구에 위치한 전문대학인 수성대학교는 1967년 3월 학교법인 제남학원의 설립으로 비롯되었다. 1974년 제남간호전문학교로 개교한 뒤, 교명은 1979년 신일여자전문대학, 1981년 신일실업전문대학, 1990년 신일전문대학, 1997년 대구산업전문대학, 1998년 대구산업정보대학으로 차례로 변경되었으며, 2012년에 현재의 수성대학교로 확정되었다.
수성구에는 공공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체육시설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입지해 있다. 공공도서관은 총 8개소가 있는데, 특히 대구광역시립수성도서관, 수성구립범어도서관, 수성구립용학도서관, 수성구립고산도서관은 보유하고 있는 장서 규모와 좌석 수가 많은 대형 도서관이다. 1989년에 개관한 대구광역시립수성도서관은 296만여 권의 장서와 437개 좌석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에 개관한 수성구립범어도서관은 차별화된 글로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수성구립용학도서관은 다양한 인문학 강좌 등을 통해 지역 밀착형 도서관을 지향한다.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황금동에 입지한 국립대구박물관은 1994년에 개관하였으며,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문화유산을 보존, 전시, 교육하는 문화시설이다. 문화체험실에서부터 전시실, 야외전시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공연, 전시, 아카데미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수성아트피아는 2007년 지산동에서 개관하였다. 오페라와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1,147석 규모의 초대형 공연장을 비롯해, 전시실 등이 있다.
범어공원에 자리한 대구어린이세상은 1977년부터 문화전당 건립을 위한 ‘백만인 모금걷기 운동’을 통해 조성이 추진되었으며, 1983년 개관하였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행사와 자연학습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구 지하철 3호선의 어린이세상역이 개통하며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대구미술관은 2011년 5월 삼덕동에서 개관한 시립미술관으로, 다양한 전시와 함께 전시 연계 특강 · 심포지엄 등을 운영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외 저명 작가들의 전시도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24년에는 인근에 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열어 두 미술관 간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서울 간송미술관의 지역 분관으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수집한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대표적인 체육시설로는 2001년에 준공한 대구스타디움(Daegu Stadium)이 있다. 노변동에 위치한 이 다목적 경기장은 ‘블루 아크(Blue Arc)’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보조 경기장과 수변 건물, 야외무대, 자동차극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수성구에서는 고모령 가요제, 고모령 효 예술제, 상화문화제 등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특색 있는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축제는 2014년부터 이어져 온 ‘수성못 페스티벌’이다. 이 축제는 원래 2004년 대구 최초의 먹거리 타운인 들안길 먹거리타운을 알리기 위해 시작된 ‘수성 들안길 맛축제’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더위’를 주제로 한 ‘수성폭염축제’로 바뀌었고, 다시 예술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수성페스티벌’로 발전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생태 복원이 이루어진 수성못과 결합하여 오늘날의 ‘수성못 페스티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역의 민속놀이 및 세시풍속으로 고산농악(孤山農樂)과 욱수농악(旭水農樂)이 있다. 고산농악은 대흥동에서 자생하여 전승되고 있다. 1984년 7월 대구직할시 무형문화재[지금의 대구광역시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예능 보유자는 정창화(鄭昌和)이다. 고산농악의 특징은 고유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향토색 짙은 농악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농악놀이에는 없는 닭쫓기 마당이 있다는 점이다.
욱수농악은 1988년 5월 대구직할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승지는 수성구 욱수동이다. 고(故) 김호성(金浩星) 보유자의 뒤를 이어 손석철이 예능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욱수농악은 동제 때 동제당에서 신내림을 기원하는 천왕받이굿, 이어지는 판굿과 보름달에 올리는 지신풀이, 달불놀이 때의 마당놀이가 결합된 종합적인 민속놀이이다. 또한 경상북도와 대구광역시의 경계에 위치한 특성상 두 지역 농악의 전통이 함께 반영되어, 단순하면서도 박력 있는 경상도 특유의 장단과 정교한 쇠가락이 어우러지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다.
수성구에서 전해 오는 설화는 자연 지형보다는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주요 내용으로는 효자와 효부의 효행담, 은혜를 갚는 보은담, 첩 · 부부와 관련된 계략이나 정치담, 치정담과 복수담, 행운담, 지명유래담 등이 전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려각에 얽힌 하광신의 효행」이다.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일원에서 가장 오래된 효자비 가운데 하나이다.
전승에 따르면, 하광신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늦겨울에 복숭아를 찾았으나 구할 길이 없었다. 이에 하광신이 자신의 불효를 한탄하던 중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우고 산속 제사 막 끝난 집으로 데려가 제사상에 있던 복숭아를 얻게 하였다. 하광신은 복숭아를 어머니께 드렸고, 이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충숙왕(忠肅王: 1294~1339)이 정문을 내리게 하였으며, 그의 자손들은 부역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수성구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로는 「모심기노래」, 「어사용」, 「장타령」 등이 전하며, 주로 노동요 또는 유희요의 성격을 띤다.
「모심기노래」는 모심기 과정에서 시간과 작업 환경에 따라 다양한 사설을 구사하며 부르는 노동요이다. 아침에 모심기를 시작할 때, 점심을 기다릴 때, 저녁 무렵 등 상황에 따라 다른 노래가 불린다. 수성구에서 채록된 저녁 사설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우얀 처녀 울고 가노 / 어린 동생일랑 앞세우고 잘 데 없어 울미 가네 / 해 다 졌네 해 다 졌네 수양산 그늘에 해 다 졌네.”
「어사용」은 영남지방 산간에서 나무꾼이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던 노래로, 노동요이자 유희요의 성격을 지닌다. 범물동에서 채록된 「어사용」은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토박이가 구연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사설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바늘 같이도 약한 몸이 / 태산 같은 병을 실어 / 약을 쓰니 약발 받나 / 돈을 쓰니 돈발 받나 / 약발 돈발 아니 받고 / 병은 점점 깊어진다.”
「장타령」은 본래 장터에서 물건을 팔 때 부르던 노래였으나, 이후 언어유희를 바탕으로 한 유희요로 전승되었다. 범어동에서 채록된 「장타령」은 각 장터의 이름과 특성을 익살스럽게 엮어 부르는 대표적 유형이다. 그 사설 일부는 다음과 같다. “얼시구시구 나온다 / 줄줄이도 나온다 / 울 갔다 울산장 / 숨질이 가퍼도 몬 가고 / 훌쩍 뜄다 건네장 / 다리가 짤라도 몬 가고 / 울 갔다 울산장 / 미끄러워도 몬 가고.”
수성구는 농업과 제조업보다 3차산업 종사자 비중이 훨씬 높은 전형적인 도시형 산업구조를 보인다. 산업 대분류별로는 도 · 소매업,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숙박 및 음식점업, 건설업, 교육 서비스업 등의 비율이 높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는 3차산업 가운데 정보통신업, 전문 ·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의 종사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도 · 소매업 등 전통적인 업종은 사업체 수는 증가했으나 종사자 수의 증가는 미미해 중소 규모 기업이 많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2006년 개통된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동구에서 출발해 수성구 동쪽을 통과하여 부산광역시까지 이어지며, 이로써 부산과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관내 도로망을 보면, 서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대로와 연결되고, 동서 방향으로는 달구벌대로가 수성구를 가로지른다. 달구벌대로는 동대구로와 범어네거리에서 교차하여 동대구역을 비롯한 도심과 직접 연결된다. 또한 동쪽에서는 범안로와 범안대교를 통해 동구와 이어진다.
수성구는 대구 지하철 2호선[문양–영남대]과 2015년 개통된 대구 지하철 3호선[칠곡경대병원–용지]이 지나면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현재 법원 · 교육청 · 경찰청 · 검찰청 · 방송국 등 주요 공공기관이 위치하며, 특히 범어네거리를 중심으로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다.
관광은 다수의 문화시설과 연계한 문화관광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명소로는 수성못 인근의 수성유원지(壽城遊園地)와 주변 문화시설, 들안길 먹거리타운, 대구스타디움 인근의 미술관 등이 있다.
수성유원지는 두산동 수성못에 조성된 호수 공원으로, 대구광역시의 랜드마크이자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수성못은 1927년 일본인 농부 미쓰사키 린따로[水崎林太郞]가 축조한 저수지였으나, 이후 농업용수 기능을 상실하고 도시 근린 유원지로 개발되었다. 1983년 동대구로와 연결되는 진입로 확장, 상가 및 불량 건물 정비를 계기로 정비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이때 가로등과 벤치, 체력 단련장 등 편의시설과 보트장, 놀이기구 등 다양한 유희 시설을 갖추어 가족 나들이 중심의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이어 2010~2013년에는 수성못 생태복원사업을 통해 수변 무대, 전망 덱, 덱 로드 등이 새롭게 조성되었다. 현재는 ‘수성못 페스티벌’을 비롯해 상시적인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들안길 먹거리타운은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음식 관광지이다. 수성구 들안길네거리에서 수성못 방향으로 T자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대구 지하철 3호선 황금역에서 도보로 약 10~20분 거리에 있다. 1980년대 후반, 도심지의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피해 음식점들이 외곽이었던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현재 들안로 양측에는 약 150개의 음식점이 밀집하여 다양한 먹거리 문화를 제공한다.
수성구는 23개 행정동과 26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행정동은 범어1동, 범어2동, 범어3동, 범어4동, 만촌1동, 만촌2동, 만촌3동, 수성1가동, 수성2·3가동, 수성4가동, 황금1동, 황금2동, 중동, 상동, 파동, 두산동, 지산1동, 지산2동, 범물1동, 범물2동, 고산1동, 고산2동, 고산3동이다.